‘수요명화’라는 이름에 걸맞는지 약간은 주저하게 됩니다만, 이번주 ‘수요명화’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대표작 2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의 팬이라면 당연히 보았을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이 그 작품들입니다. 신작 <너의 이름은>이 지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전 작품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네이버에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신카이 마코토의 초기작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먼저 살짝 언급할 단편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1999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게임제작사인 팔콤에 근무하던 회사원 시절에 만든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입니다. 연출, 작화, 더빙 등 음악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부분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 혼자 제작한 이 애니메이션은 채 5분이 안 됩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작품을 소개하는 건 이후 발표된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을 비롯한 거의 모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메이션의 특징적인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흑백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 볼 수 있는 대략적인 특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내레이션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 화자는 그녀의 고양이입니다. 목소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직접 더빙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내레이션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둘째, 극한의 디테일을 강조한 배경. 신카이 마코토 감독 애니메이션의 배경 혹은 풍경은 실제와 거의 똑같습니다. 이런 특징 역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전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라든지, 집안의 작은 소품들, 눈이 오는 날의 타워크레인 풍경 등이 생각납니다.

셋째,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남녀 주인공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서는 아예 종(種)이 다른 여성과 그녀의 고양이(수컷)가 등장합니다. 신작 <너의 이름은>에서는 도쿄에 사는 남학생과 시골에 사는 여학생이 주인공이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런 고유한 색깔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남녀 주인공이 현실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동시에 혹은 번갈아가며 내레이션을 하는 장면일 겁니다.

<초속 5센티미터>

<초속 5센티미터>: 아련함의 끝판왕
자, 이제 본격적으로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을 얘기해봅시다. 먼저 2007년작 <초속 5센티미터>부터. 이 애니메이션은 3개의 단편이 묶여 있는 형태입니다. <벚꽃 이야기> <우주비행사> <초속 5센티미터>로 이뤄져 있습니다. 옴니버스라기보다는 연작입니다. 주인공은 아카리와 타카기입니다. 물론 소녀(아카리), 소년(타카기)이죠.

1부 <벚꽃 이야기>에서는 두 사람의 중학교 시절을 그립니다. 도쿄에 살던 둘은 초등학교 때 친했으나 아카리가 이사를 가면서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멀어지게 됩니다. 중학교에서 적응을 잘 못하던 아카리는 타카기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쓰고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아카리보다 훨씬 더 멀리 일본 남쪽 큐슈의 가고시마로 이사하게 된 타카기는 아카리와 오랜만에 만나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의 설렘과 달리 열차가 폭설 때문에 점점 늦어집니다.

2부 <우주비행사>는 타카기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입니다. 가고시마에 사는 타카기는 아카리를 그리워하며 메일을 썼다 지웠다 반복합니다. 그런 타카기를 마음에 둔 소녀가 있습니다. 카나에입니다. 그녀는 파도타기에 성공하는 날 타카기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습니다.

3부 <초속 5센티미터>에는 성인이 된 아카리와 타카기가 등장합니다. 아카리는 약혼을 한 상태이고 지금 행복해 보입니다. 타카기는 인생의 공허함을 느낍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타카기는 어린 시절 아카리와의 추억이 있는 옛동네를 찾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두 사람은 스쳐지나갑니다.

<초속 5센티미터>

첫사랑의 아련함이 절절한 <초속 5센티미터>는 어떻게 보면 로케이션 취재에 의한 극사실적인 배경(실제 장소를 찾아가는 성지순례를 하는 팬들도 있습니다)과 인물의 내레이션이 주인공인 첫사랑 이야기입니다. 전개도 느린 편이라 취향이 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는 서로 다른 단편들의 옴니버스로 기획됐다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연작처럼 이야기를 이어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초속 5센티미터>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특징들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못 본 분들은 도대체 ‘초속 5센티미터’가 무슨 속도인가 궁금하실 텐데요. 벗꽃이 떨어지는 속도라고 합니다.
▶<초속 5센티미터> 바로보기

<언어의 정원>. 남녀 주인공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의 정원>: 어른스러운 성숙함
<언어의 정원>은 2013년 공개한 애니메이션으로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작 <너의 이름은> 바로 직전에 나온 작품이니까요.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타카오와 유키노입니다. 타카오와 유키노는 역시나 서로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타카오는 15살 고등학생이고 유키노는 27살 직장인이죠. 두 사람은 공원(실제로는 신주쿠 공원)에서 만납니다. 그날은 비가 왔습니다. 유키노는 “또 비가 오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을 하고 사라집니다. 또 비가 오는 날 타카오는 공원의 그 정자를 찾습니다. 유키노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녀는 맥주와 초콜릿을 먹고 있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타키오는 그녀의 구두를 만들어주기로 합니다. 타키오는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고 있었거든요.

45분으로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의 <언어의 정원>은 중편 애니메이션에 가깝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조금 결이 다른 느낌도 있습니다. <초속 5센티미터>가 약간은 ‘중2병’스러운 첫사랑 이야기라면 <언어의 정원>은 좀더 어른스럽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은 빠지지 않습니다. 도쿄 신주쿠 거리의 풍경이 그렇고, 남녀 주인공의 설정이 그렇습니다. 내레이션 역시 중요합니다. 2011년에 발표한 <별을 쫓는 아이: 아가르타의 전설>이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 것에 비해 <언어의 정원>은 확실히 달라진 신카이 마코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기세는 신작 <너의 이름은>에서 폭발합니다.
▶<언어의 정원> 바로보기

<언어의 정원>. 극강 디테일의 배경들.

2007년 <초속 5센티미터>의 예고편에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신세대 천재감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2016년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뒤를 이를 사람’이라는 표현을 봤습니다. 원래 그 자리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 등을 만든 호소다 마모루의 것이였죠. 어쩌다 보니 두 사람은 경쟁 관계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초속 5센티미터>로부터 9년. 길면 긴 시간이겠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장인이 됐습니다.

언어의 정원 '예고편'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