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의 열풍이 지나간 지 1년 남짓 지난 무렵, 드디어 퀸(Queen)이 오는 1월 18일, 19일 양일간 내한공연을 갖는다. 1991년 세상을 떠난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는 없지만, 그 자리를 애덤 램버트(Adam Lambert)가 채워 퀸의 주옥 같은 명곡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공연 예습 차원에서, 퀸의 음악이 사용된 영화들을 소개한다. 작년 1월에 올린 기사의 속편격이니 아래 링크의 기사를 먼저 읽어주시길 :)


"We Are The Champions"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2000)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롭(존 쿠삭)은 오랫동안 사귄 애인 로라(이벤 예일레)에게 이별을 통보 받고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전 애인들을 만난다. 관객들은 롭의 문제를 알 수밖에 없다. 영화 내내 꼴사나운 짓거리만 하니까. 여타 작품에서 극도의 환희에 터져나오던 'We Are the Champions'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좀 다른 방식으로 쓰인다. 롭은 다른 남자의 집에 살고 있는 로라에게 나보다 그 사람이랑 자는 게 더 좋냐고 묻고, 로라도 당황하지 않고 같이 자긴 하지만 섹스는 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집 밖으로 나온 롭이 신나서 섀도복싱을 하는 모습 위로 'We Are the Champions'가 붙는다. 이미 헤어진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랑 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게 그렇게 좋더냐, 하며 비웃는 것 같은 선곡. 이 한심한 사내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기운이 펄펄 넘쳐서" 다른 여자를 찾아간다.


"The Show Must Go On"

<물랑 루즈> (2001)

<로미오와 줄리엣>(1996)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바즈 루어만은 5년 만에 뮤지컬 영화 <물랑 루즈>를 발표했다. 20세기가 막 시작하던 시기의 파리가 배경이지만, 음악은 197~90년대 팝을 음악감독 크레이그 암스트롱이 편곡한 노래들로 채워졌다. 퀸의 'The Show Must Go On'은 물랑 루즈의 업주 해롤드(짐 브로드벤트)가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과의 사랑에 괴로워 하는 사틴(니콜 키드먼)에게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상처를 줘서 그의 생명을 구하라고,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대목에서 쓰인다. 키드먼과 브로드벤트의 음성 위로 앙상블들의 합창에 더해져 클라이막스 직전의 폭발적인 감정을 담아냈다. 'The Show Must Go On'은 HIV 투병 중이던 프레디 머큐리가 살아생전 발표한 마지막 퀸 앨범 <Innuendo>(1991)의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노래다.


"Under Pressure"

<해피 피트 2> (2011)

<매드 맥스>와 <꼬마돼지 베이브>의 세계를 만든 조지 밀러의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 역시 <물랑 루즈>처럼 기존의 팝을 뮤지컬로 리메이크해 만든 노래들에 힘입어 큰 성공을 거뒀다. 4년 만에 나온 속편도 어김없이 그 방향을 유지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록 뮤지션 퀸과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함께 한 트랙 'Under Pressure'을 선보이는 신은 <해피 피트 2>의 클라이막스에 배치돼 단연 가장 강력한 인상을 안긴다. 펭귄들은 바다코끼리들의 도움을 받아 'Under Pressure'의 리듬에 맞춰 몸을 밀쳐서 산맥을 무너트리려고 한다. 보위가 만든 베이스 리듬에 아카펠라의 합이 돋보이는 원곡에 맞춰, 멈블은 베이스 라인을 부르고 물개의 코러스가 더해지면 공간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노래하고 쿵쿵 대기 시작한다. 펭귄과 바다코끼리가 어우러진 가운데 눈 덮인 산이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


"Another One Bites the Dust", "Fat Bottom Girls"

<아쿠아리우스> (2016)

브라질의 아트하우스 영화 <아쿠아리우스>는 퀸의 음악을 2개나 사용했다. 오프닝 속 한밤의 해변가를 달리는 청춘들은 카스테레오로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듣는다. 보다 특별한 인용은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Fat Bottom Girls'다. 집에서 혼자 해먹에 누워 TV로 클래식 공연을 보던 주인공 클라라는 요란하게 집에 들어온 윗집 사람들이 쿵쾅쿵쾅 음악을 틀고 뛰어놀자 참지 못하고 퀸의 일곱 번째 앨범 <Jazz> (1978)를 꺼내 들어 'Fat Bottom Girls'를 크게 틀어놓는다. 프레디 머큐리와 코러스가 확 등장해 강렬한 록 사운드가 터지면서 이웃의 소음도 가려지는데, 클라라는 계속 윗집에서 나는 소리에 관심을 끊지 못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Bohemian Rhapsody"

<수어사이드 스쿼드> (2016)

모든 소동이 마무리되고 '수어사이드 스쿼드' 일당들은 감옥에 갇힌다. 'Bohemian Rhapsody'가 흐르는 감옥의 풍경은 나름 평화롭다. 할리 퀸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몰리 오키프 책을 읽고, 킬러 크록은 햄버거를 손에 들고 뮤직비디오를 보고, 부메랑은 CCTV에 대고 꺼내달라고 핏대를 높이고, 딸의 편지를 읽은 데드샷은 샌드백을 치다가 침울한 채 그걸 끌어안는다. 'Bohemian Rhapsody'와 함께 이런 모습들이 1분 남짓 이어지던 중 감옥에는 폭탄이 터지면서 음악도 갑자기 멎어버린다. 누가 벌인 짓인지는 뻔할 뻔자. 뭐 그렇게 대단한 등장도 아닌데 'Bohemian Rhapsody'나 좀 더 들려주지 싶은 결말이다.


"Don't Stop Me Now"

<샤잠!> (2019)

하루아침에 수퍼히어로 샤잠(재커리 커비)이 된 빌리(애셔 엔젤)는 친구 프레디(잭 딜런 프레이저)와 초능력을 시험하면서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올린다. 웬만한 영화들이 엔딩곡이 아니라면 특정 노래를 풀로 쓰는 경우가 없는 반면, 퀸의 'Don't Stop Me Now'가 흐르는 이 시퀀스는 3분 넘게 이어지고 노래도 거의 통째로 다 쓰였다. 공터에서 초능력을 하나하나 테스트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바깥에 나와 길거리 사람들의 휴대폰을 충전해주고, 자판기를 조작해 음료수를 마음껏 마시는 등 유쾌한 한때가 이어진다. 프레디 머큐리의 힘찬 보컬과 브라이언 메이(Brian May)의 기타 솔로 등이 어우러진 'Don't Stop Me Now' 덕에 그 순간이 더 즐겁게 보인다. 허나, 마냥 즐거움만 계속될 순 없는 법. 이 시퀀스 이후에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펼쳐진다.


"Love Kills"

<메트로폴리스> (1927)

<메트로폴리스>의 제작연도에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메트로폴리스>는 독일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추앙 받는 프리츠 랑의 무성영화다. 1980년대 디스코/신스팝 열풍에 주역이었던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는 이 작품의 판권을 사서 러닝타임을 84분으로 재편집하고, 자기가 만든 트랙들로 음악을 대체한 버전을 1984년에 발표했다. 전체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이 담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위시한 기획일 터. 모로더 자신뿐만 아니라 보니 타일러(Bonnie Tyler), 싸이클 V(Cycle V), 빌리 스콰이어(Billy Squier)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존재는 뭐니뭐니 해도 프레디 머큐리다. 머큐리는 <메트로폴리스> 사운드트랙에 '첫' 솔로곡 'Love Kills'를 발표하면서 솔로 활동의 물꼬를 텄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