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은 1860년대 남북전쟁 시기, 저마다의 꿈과 이상을 지닌 네 자매가 현실의 벽을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 담아낸다. 그들의 곁엔 그들의 꿈을 응원해주는 남성 캐릭터들이 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작은 아씨들>이 “남녀 관계의 위계질서를 없애나가는 이야기라 훨씬 더 인간적이라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존재만으로도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나타내던 보통의 시대극 속 남성 캐릭터들과 달리, <작은 아씨들> 속 남성 캐릭터들은 네 자매가 꿈꾸던 목표에 가까워지도록 지지하고, 그들과 끈끈한 연대를 맺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작은 아씨들>을 더 따스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던 마치 자매의 지원군, 그를 연기한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들의 이력을 간단히 짚어보자.


로리 로렌스 | 티모시 샬라메

<작은 아씨들>

티모시 샬라메를 아는 관객보다 모르는 관객을 찾기 더 어려울 터. 몇 년 새 할리우드의 대표 스타가 된 티모시 샬라메가 마치 자매의 이웃이자 조(시얼샤 로넌)에게 사랑에 빠지는 부잣집 소년, 로리를 연기했다. 그레타 거윅이 <작은 아씨들>을 구상할 때부터 티모시 샬라메는 로리 역 캐스팅 1순위에 있던 배우였다. 패셔너블한 데다 낭만적이고, 멜랑꼴리한 분위기까지 동시에 지닌 사교계 명사, 로리의 이미지에 티모시 샬라메만큼 잘 맞는 배우가 없었던 것. 그도 그럴 게, 티모시 샬라메는 이미 그레타 거윅의 전작에서 로리와 비슷한 포지션의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레이디 버드>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의 마음을 단번에 뒤흔들어놓았던 교내 옴므파탈 카일을 연기했다.

<레이디 버드>

연극으로 기본기를 쌓은 후, 애절한 로맨스 연기를 선보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22살의 나이로 오스카 시상식의 세 번째 최연소 남우주연상 후보가 된 티모시 샬라메는 곧바로 할리우드의 가장 핫한 스타가 됐다. 약물 중독자 닉을 연기한 <뷰티풀 보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고뇌의 나날을 이어가는 헨리 5세를 연기한 <더 킹: 헨리 5세> 등을 통해 커리어를 확장시킨 그는 올해 또 다른 두 편의 기대작으로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얼마 전 예고편이 공개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에선 프랑스 68 운동에 가담한 대학생 제피렐리를 연기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대서사시 <듄>은 현재 후반 작업에 들어선 상태. 티모시 샬라메는 주인공 폴 아트리데스 역을 맡았다.


프리드리히 | 루이 가렐

<작은 아씨들>

원작 속 프리드리히는 매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40대 독일인으로 등장한다. 그간 개봉했던 <작은 아씨들> 영화 속에서도 프리드리히는 조보다 훨씬 인생 경험이 많은 신사 캐릭터로 등장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그런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본인의 상상대로 프리드리히를 재창조해냈다. 그래서 탄생한 게 루이 가렐의 프리드리히다. 그는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 작가의 꿈을 키우는 조를 응원하고 지지한다. 참견의 선을 넘지 않되 결정적인 순간 단호한 말을 건넬 줄 아는 캐릭터. 백 마디 칭찬이나 조언 대신, 조를 향한 믿음만으로, 그녀가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기란 쉽지 않다.

<몽상가들>

프랑스 영화를 즐겨 보는 이라면 루이 가렐의 이름을 모를 수 없다. 누벨바그의 거장 필립 가렐과 프랑스 배우 겸 감독 브리짓 시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 산업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몽상가들>에서 이사벨(에바 그린)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쌍둥이 남매, 테오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이후 <내 어머니> <평범한 연인들> 등의 작품을 통해 종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 프랑스 청춘의 얼굴을 여럿 연기해왔다. <질투> <생 로랑> <이스마엘의 유령> 등 프랑스 영화에 줄곧 출연해왔던 그였기에, 할리우드 중심에서 제작된 <작은 아씨들>은 그의 필모그래피 속 색다른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루이 가렐의 트레이드 마크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무심한 표정. 덕분에 순간순간의 감정이 그대로 얼굴 위로 드러나던 프리드리히의 캐릭터가 더 색다르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존 브룩 | 제임스 노턴

<작은 아씨들>

로리(티모시 샬라메)의 가정 교사 존 브룩은 성실하고 상냥하다. 그의 깊은 속내에 반한 메그(엠마 왓슨)는 그와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들의 앞엔 가난이라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어수룩하고 귀여운 가정 교사의 모습부터 피로함이 덕지덕지 묻은 가장의 얼굴까지. 존 브룩은 <작은 아씨들>의 인물들 중에서 과거와 현재 사이, 외형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선보이는 캐릭터다. 중요한 건 내면이 늘 올곧다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그는 선량한 얼굴, 신뢰감 있는 말과 행동으로 마치 집안에 큰 힘을 보탠다.

<해피 밸리>

비열하거나 잔인한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운 배우. 그러나, 존 브룩을 연기한 배우 제임스 노턴의 얼굴을 알린 캐릭터는 희대의 악역이었으니. 단역, 조연으로 드라마, 영화, 연극을 오가며 폭넓은 연기 활동을 펼치던 그는 범죄 드라마 <해피 밸리>에서 악랄한 살인마 토미 리 로이스 역을 맡아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2015년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 부문 남우조연상에 이름을 올린 그는 이후 드라마 <그랜트체스터> <전쟁과 평화> 등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여나갔다.


미스터 로렌스 | 크리스 쿠퍼

<작은 아씨들>

말 수가 별로 없고 무뚝뚝한 부잣집 노인 같아 보이지만, 속내는 누구보다 따스한 마치 집안의 이웃. 자식과 손녀를 멀리 떠나보낸 채 손자 로리(티모시 샬라메)와 커다란 저택에 살고 있는 미스터 로렌스는 가족 많은 집안 특유의 소란함을 누구보다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마치 자매의 아버지와 친한 사이였던 그는 조(시얼샤 로넌)에겐 책을, 베스(엘리자 스캔런)에겐 피아노를 내어주며 마치 집안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아메리칸 뷰티>

미스터 로렌스가 베스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계단에 주저앉아 가슴을 부여잡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완고한 인상을 지닌 배우가 마음의 바닥을 보여주는 연기를 펼칠 때 그 여운은 배가 된다. 크리스 쿠퍼 역시 그런 연기를 자주 선보이는 배우 중 하나다. 크리스 쿠퍼는 1980년 브로드웨이에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연기를 시작했으니 다른 배우들에 비해 데뷔가 늦은 셈이다. 매서운 인상을 지닌 초기작 대부분에서 고지식한 중년 남성 역할을 자주 맡아 관객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가 평단으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건 <아메리칸 뷰티>에서부터. 이후 그는 <어댑테이션>을 통해 오스카, 골든글로브의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의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올랐고, 이후 <본> 시리즈, <더 컴퍼니 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데몰리션> 등에 출연해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