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캐릭터 포스터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바뀌긴 하는 모양이다. 항상 말끔한 얼굴로 자신만의 이미지를 유지한 배우가 최근 출연작에서 매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걸 보면 말이다. 2월 26일 개봉하는 <젠틀맨>에서 플레처 역을 맡은 휴 그랜트는 또 한 번 덥수룩한 수염 스타일로 돌아왔다. 한때 ‘로맨틱 가이‘였던 휴 그랜트는 어느 순간부터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모습이나 자신의 젠틀한 이미지를 덮듯 파격적인 분장을 자주 하곤 했다. 최근 출연작에서 보여준 휴 그랜트의 수염, 그리고 분장을 한 번 만나보시라.


휴 ‘더 로맨틱 가이’ 그랜트 시절

먼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휴 그랜트의 모습을 보자. 휴 그랜트는 그동안 수많은 멜로, 로맨틱 코미디의 영화에서 활약하며 영국 로맨틱 가이의 상징 같은 존재로 기억됐다. 사실 사생활이나 스캔들을 알면 그 이미지가 파사삭 부서지곤 하지만, 어쨌든 영화에서만큼은 그 처진 눈매로 슬그머니 미소만 지어도 여자 주인공과 관객을 설레게 하는 배우 중 하나. 최근 재개봉한 그의 주연 데뷔작 <모리스>나 로맨틱 코미디의 바이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신데렐라 스토리 남성 버전의 <노팅 힐> 등 그의 말끔한 이미지는 로맨스 영화의 서브 장르처럼 느껴질 정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젊은 시절의 화보,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모리스>, <플로렌스>


수염·분장 강도 하

샴페인 찰리 Champagne Charlie, 1989

<샴페인 찰리>

휴 그랜트가 수염 기른 모습을 최근에야 보여준 건 아니다. <모리스>의 일부 장면에서처럼 1989년 TV영화 <샴페인 찰리>에서 콧수염(머스타치)을 보여준 적 있다. 휴 그랜트는 이 영화에서 최초로 미국에 샴페인을 수출한 찰스 하이직을 연기했다. 이 작품이 190분이나 되는 전기 영화에 극장에서 상영한 것도 아니라 그렇게 유명하진 않다. 그래서 휴 그랜트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리스>


젠틀맨 The Gentlemen , 2020

<젠틀맨>

이번 <젠틀맨>의 플레처 역을 위한 스타일은 서클 비어드. 콧수염과 턱수염이 이어져 입을 감싸는 형태로 기른 수염이다. 여기에 선글라스로 처진 눈매를 가려서 돈이 되는 정보만 찾아다니는 파파라치 설정을 부각시켰다. 얼마나 돈벌레면 극중 마약 유통에 몸담고 있는 레이먼드(찰리 허냄)마저 플레처를 피하는 기색이 역력할까. 이렇게 얼굴을 많이 가렸지만 입을 여는 순간, 휴 그랜트의 영국 억양과 목소리에 금방 친숙함이 들기도 한다.

기자간담회 때는 또 깔끔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


수염·분장 강도 중

패딩턴 2 Paddington 2, 2017

<패딩턴 2> 포스터

휴 그랜트의 '즐기는 자' 마음가짐이 가장 잘 드러난 배역이 아닐까? 피닉스 뷰캐넌은 극중 왕년에 잘 나갔던 배우이자 팝업북을 손에 넣기 위해 범죄도 마다않는 인물. 피닉스 뷰캐넌이 배우라서 다양한 분장으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장면이 다수 있는데, 시나리오에 그걸 보고도 출연을 결정한 걸 보면 휴 그랜트 또한 이런 배역을 기다렸던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영국인답게 패딩턴을 사랑하거나. 아무튼 그 분장 속에서도 빛나는 그랜트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패딩턴>의 니콜 키드만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패딩턴 2>


수염·분장 강도 상

어 베리 잉글리쉬 스캔들 A Very English Scandal , 2018

<베리 잉글리쉬 스캔들>

이상하다. 휴 그랜트인데, 휴 그랜드가 아닌 것 같다. 최근 상영했던 <남산의 부장들>의 이성민처럼 그 사람 같은데 아닌 것 같은 기분. 드라마 <베리 잉글리쉬 스캔들>는 1970년대 영국을 떠들썩하게 한 정치인 제레미 소프의 실화를 다룬다. 휴 그랜트는 이 작품에서의 연기로 많은 호평을 받았는데, 연기의 80%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한 다니엘 필립스의 몫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분장에 자부심을 보였다. 휴 그랜트는 일단 제레미 포스의 체형을 따라가기 위해 체중을 감량했고, 다이넬 필립스는 갈색 콘택트렌즈를 사용하고 헤어 라인, 메이크업 등을 손보면서 휴 그랜트를 제레미 소프로 탈바꿈시켰다. 다른 것보다 이마의 주름이 정말 기막히다. 이런 티나는 듯 안나는 듯한 분장이야말로 배우의 연기와 극의 몰입도를 돕는다고 생각해 강도 상으로 소개해본다.

<베리 잉글리쉬 스캔들>


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 2012

<클라우드 아틀라스>

휴 그랜트 분장쇼의 끝판왕이자 시발점.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주요 인물들이 윤회를 통해 다른 시간대에서 인연이 이어진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주연 배우들은 모두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했는데, 휴 그랜트도 호록스 목사, 호텔의 경비원, 로이드 훅스, 데니 캐번디쉬, 시어 리, 코나 족장까지 1인 6역을 소화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논란이었던 동양인 분장도 소화했다.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니 휴 그랜트의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미래 세계의 코나 족장만큼은 기억에서 쉬이 지우지 못할 것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