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92회 오스카 여우주연상은 <주디>의 르네 젤위거에게 돌아갔다. <콜드 마운틴>으로 이미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고, '브리짓 존스' 삼부작으로 흥행에서도 정점을 찍어본 바 있는 그녀는, 그러나 이번 <주디>에 출연하기 전까지 다소 부침을 겪었다. 연기에 지쳐 2010년부터 2106년까지 긴 휴지기를 가졌고,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에 출연하기 전까지 성형에 대한 가십에 시달렸으며, 한물갔다는 오해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더욱 말년을 힘들게 보낸 주디 갈랜드의 심정에 이입이나 한 것 마냥 르네 젤위거는 연기를 넘어 마치 영혼이 빙의된 것 같은 열연을 <주디>에서 보여준 건지 모른다. 르네는 주디가 죽은 1969년에 태어난 인연을 갖고 있기도 하다.

<주디>

2005년 초연돼 2019년까지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올리비에상과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등 굵직한 시상식들에 후보로 오른 연극 <엔드 오브 레인보우>를 각색한 이 영화는 무대 버전보다 판타지 요소나 노래들을 줄이며 보다 주디 갈란드의 생생한 후반기 삶에 집중하려 했다. 물론 1930년대 아역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과거와 교차하며 어떤 트라우마와 폐단을 가져다줬는지, 자식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었는지 대비를 살리며 영화만의 인장도 남긴다. 하지만 이런 전기류 영화들이 그렇듯 작품적인 성과보다 전설에 근접한 압도적인 연기의 임팩트만이 더 진하게 각인돼 버린다. 주디의 자식들인 라이자 미넬리와 로나, 조이 러프트 남매는 이런 엄마의 안타까운 최후가 영화화되는 것에 반대했다.

<주디> 사운드트랙 표지, 주디 갈란드의 <주디 앳 카네기 홀> 앨범 표지

주디 갈란드가 죽기 6개월 전 런던의 Talk of the town에서 있었던 5주간의 공연이 주요 배경이 되는 터라 레퍼토리와 가창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영화에선 실제 주디가 자주 불렀던 곡들을 바탕으로 그녀의 삶과 그 상황에 맞춘 곡들을 세심하게 골라 배치하는 센스를 발휘한다. 게다가 이미 뮤지컬 <시카고>를 통해 출중한 노래 솜씨를 뽐낸 르네 젤위거라 의심할 여지조차 필요 없음에도, 촬영이 시작되기 전 유명 보컬 코치인 에릭 베트로와 1년간 훈련을 하고, 다시 4개월간 음악감독인 맷 덩클리와 리허설을 하며 더욱 완벽하게 주디 갈란드에 몰입했다. 영화에서는 르네 젤위거가 직접 부른 주디 갈란드의 7개의 대표곡들이 흘러나오는데, 이를 순서대로 소개해본다.

주디 갈란드


<주디>

“By Myself”

공연을 두려워하며 안 나타나는 주디를 간신히 데려와 무대로 떠밀어 세우자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멋들어지게 부르는 첫 번째 노래. 1937년 발표된 뮤지컬 <비트윈 더 데블>에서 잭 뷰캐넌이 부른 재즈 스탠다드였지만, 유명해진 건 그 후 1953년 뮤지컬 영화 <밴드 웨곤>에서 프레드 아스테어가 부르면서다. 주디 갈란드는 1957년 자신의 앨범 ‘Alone’에서 커버했다. 그리고 그녀가 주연한 로널드 님 감독의 1963년 영화 <아이 콜드 고우 온 싱잉>에서도 쓰였다. 이 영화는 주디 갈란드가 마지막 출연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자기를 아는 사람은 없고, 혼자서 가겠다는 가사가 말년의 주디 갈란드 상황을 소개하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주디>

“The Trolley Song”

주디 갈란드가 출연하고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빈센트 미넬리가 연출한 1944년 뮤지컬 영화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의 삽입곡.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진 못했다. 하지만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뽑은 ‘영화사 100년, 100개의 주제가’에서 26위에 올랐고, 1944년부터 45년까지 5개의 버전이 노래 차트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정작 오리지널 버전인 주디 갈란드 노래는 4위가 최종 성적이었고, 더 파이드 파이퍼즈가 부른 버전이 2위까지 올랐다. 영화에서는 무대에 익숙해진 주디가 화려한 안무단과 함께 경쾌한 율동을 펼쳐 보이며, 과거의 바쁜 아역 시절과 교차될 때 흘러나온다. 너무나 바빴던 쇼 비즈니스 시절의 폐해를 상징하는 듯 몰아치는 이중성이 의미심장하다.

<주디>

“Get Happy” (With Sam Smith)

특유의 희망찬 가사와 기독교 복음적인 시각이 반영된, 명 작곡가 해롤드 알렌을 세상에 알린 곡으로 1929년에 발표됐다. 프랭크 시나트라나 빙 크로스비, 엘라 피츠제랄드, 토니 베넷 등과 같은 전설들이 부르고, 베니 굿맨과 아트 테이텀, 버드 포웰과 딕 하이먼 등 레전드들이 연주하며 여러 버전을 남겼다. 주디 갈란드와 진 켈리가 주연한 1950년 뮤지컬 <썸머 스톡>에 삽입곡으로 쓰여 그녀와 인연이 있으며, 이번 사운드트랙에선 진한 소울풀한 창법을 자랑하는 샘 스미스와 르네 젤위거가 듀엣을 해 활력 넘치는 스윙의 진면목을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게이 커플 집에서 가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단출하게 부르며 근심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행복해지라는 위로를 던진다. 그리고 그건 주디 자신에게 하는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주디>

“For Once In My Life”

모타운 레코드 시절 론 밀러가 쓴 스윙 곡으로 1966년 진 더션이 처음 불렀는데, 1968년 스티비 원더가 업템포 버전으로 편곡해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오르며 히트한 게 유명하다. 그 외 토니 베넷과 코니 하인즈, 템테이션스 등이 커버했다. 르네 젤위거가 부르는 7곡 중 유일하게 원작 연극인 <엔드 오브 레인보우>에 나오지 않았던 영화만의 오리지널 레퍼토리지만, 실제로 주디 갈란드는 이 곡을 1968년 마이크 더글라스 쇼에서 커버한 적이 있다. 생애 꼭 한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그 사랑에 대한 노래로, 영화에서는 미키와 결혼하며 잠깐 동안 행복에 젖을 때 흘러나온다. 하지만 곡이 흐르는 동안 남편 미키의 수완이 잘 통하지 않는 불안감을 드리우며 그녀의 새로운 사랑도 실패할 것을 암시한다.

<주디>

“San Francisco”

클락 케이블과 스펜서 트레이시가 1936년에 출연한 동명의 영화 <샌프란시스코>의 주제곡으로, 토니 베넷이 부른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내 마음’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공식적인 시가(市歌)이기도 하다. 브로니슬라우 케이퍼와 월터 저맨이 만든 노래로 원곡은 탁월한 소프라노이자 초창기 뮤지컬 스타인 자넷 맥도날드가 불렀는데, 주디 갈란드는 자신의 콘서트에 종종 이 곡을 포함시켜 자신의 영웅인 자넷을 기렸다. 무대에서 시작해 영화를 거쳐 후에 오페라로 전향해 솜씨를 발휘한 자넷 맥도널드는 여러 가수와 배우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롤 모델이었다. 영화에서는 주디가 술 취해 노래 부르다 쓰러지며 제대로 들을 수 없지만, 사운드트랙엔 르네 젤위거가 씩씩하게 부른 풀 버전이 담겨있다.

<주디>

“Come Rain Or Come Shine”

1946년 공연된 뮤지컬 <세인트 루이스 우먼>에 나온 곡으로, 해롤드 알렌과 조니 머서가 만들어 사랑받은 클래식 넘버. 주디 갈란드는 1957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LP 앨범에서 처음 커버했고, 1961년 발표돼 그래미상을 4개나 휩쓴 ‘주디 앳 카네기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주디 갈란드의 핵심 레퍼토리가 거의 다 담긴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3주간 1위를 기록했고, 73주간 차트에 머무르며 사랑받았다. 그녀는 아울러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최초로 수상한 여성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심기일전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솜씨를 모두 불태워버릴 때 흘러나온다. 격정적인 퍼커션과 리드미컬한 기타, 스윙감의 피아노, 반짝이는 브라스, 풍성한 스트링이 섹시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팔색조 주디의 목소리와 만나 단번에 사로잡는다.

주디 갈란드

“Over The Rainbow”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노래이자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곡으로, 주디 갈란드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송이다. 1939년 빅터 플레밍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삽입돼 오스카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와 미국 국립예술 기금위원회(NEA)에서 뽑은 ‘세기의 노래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영화연구소가 뽑은 ‘영화사 100년, 100개의 주제가’에서도 당당히 1위를 기록했다(그리고 주디 갈란드는 이 리스트에 진 켈리와 함께 5곡을 올린 최다 가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이 노래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지 못할 뻔했는데, MGM 경영자이자 주디 갈란드를 착취한 원흉이기도 한 루이스 B. 메이어가 농가 어린 소녀가 부르는 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자넷 맥도널드가 부르는 것 같다며 삭제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감독과 제작자들이 이에 반발해 결국 최종적으로 살아남아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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