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마자 대뜸 반말부터, 사사로운 장난에는 면박까지. 이렇게 까탈스러운 흥신소 직원 누리(허가윤)에게 두 주인공 준혁(김성철)과 성민(이시언)이 대꾸도 할 수 없게 하는 건 유능한 실력과 발상을 뒤엎는 예리한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이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 누리가 배우 허가윤을 만나 <서치 아웃>에서 활약한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스크린에 돌아온 허가윤은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누리 역을 장면마다 차곡차곡 만들어가며 영화의 밀도를 높였다. 비중 있는 배역으로는 근 3년 만에 돌아온 배우 허가윤을 만나 <서치 아웃>과 배우로서의 전환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치 아웃>의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선택한 계기는?
SNS는 이제 안 하는 사람 찾기가 힘들 정도로 일상적인 것이잖아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해킹이나 보이스피싱, 이런 거에 겁이 많아요. 그래서 이런 (<서치 아웃> 같은) 일 있으면 무섭겠다 싶었죠. 또 실제 사건(러시아의 흰긴수염고래 사건)이 모티브라서 더 관심이 갔어요.
누리라는 캐릭터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하셨나요?
처음에는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내주셨을 때 ‘걸크러쉬’적인 부분이 있고, 저한테도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제가 볼 때도 누리에게 걸크러쉬적인 느낌도 있고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도 툭툭 다 하고, 그런데 알고 보니 상처와 고민도 있고. 감정 변화 같은 데서 한 가지 모습만 보이는 게 아니니까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았어요.
누리가 허가윤 본인과 많이 닮았나요?
저도 하고 싶은 말 그때그때 하는 편이거든요, 기분 안 나쁘게(웃음). 그리고 누리도 보면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잖아요. 저도 한 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안 끝내는 스타일이에요. 끊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걸 잘 못해서. 그런 것도 저랑 비슷한 거 같고.
승부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뇨, 전 승부욕은 없고, 뭐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해요. 중간에 포기도 없고, ‘내일 다시 할까?’ 이런 게 없어요. 어릴 때부터 숙제를 해도 한 번 시작하면 다 끝내버렸어요.
모범생이셨겠어요.
모범생은 아니었어요.
시작하는 게 힘들어서?
네. 맞아요. 시작은 언제 할지 모른다는 거(웃음).
처음 그런 식으로 빠져들었다고 기억하는 게 있나요?
'포미닛' 시절에 의상 같은 걸 제가 했거든요. 그때 PPT를 만들었어야 했어요. 사진 찾고 이러려면 되게 오래 걸리는데, 밤을 새워서라도 다 끝내고 메일 보내야 잠이 왔어요. 그런 정도로 대학교 때 과제도 시작하면 끝까지 다 해야 하고. 집 청소도 조금 조금씩 하는 타입이 아니라 다 뒤집어엎어서 해야 하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연기하실 때는 어때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지, 아니면 이야기를 듣고 수용하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제가 경험이 없으니까 함부로 말을 해도 되나,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많았어요. 말을 해도 ‘전 이런 거 같은 데 맞아요?’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 방식으로. 그러다 <마약왕>, <배반의 장미>를 했고, <서치아웃>은 제가 비중이 더 있으니까 대화할 내용이 많았고. 이런 과정을 지나가면서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걸 말하고 감독님이나 스태프분들이 말하는 것도 수용도 하고. 딱 그 중간인 것 같아요. 제 생각만 맞다고 하면 안 되는 게 저는 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더 많은 분들이 보는 거니까, 다른 분들의 얘기도 많이 듣는 편이에요.
이번 작품에서 본인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장면이 있다면?
의상이나 말투. 똑똑한 공대생의 모습이니까, 그래서 잔머리 없이 쫙 묶고 공대생의 패션 하면 셔츠 하나 걸치는 거 생각나잖아요. 그런 식으로 하는 것도 감독님이랑 대화를 많이 나눴고, 시나리오상의 말투를 요즘 말투로 많이 바꿔서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곽정 감독님도 첫 장편이고, 배우님도 첫 주연이잖아요. 두 분은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대화를 나누셨나요?
감독님이 얘기하고 싶은 부분을 많이 나눴어요. 예를 들어 실제 사건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어요. 영화에선 공허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SNS를 통해서 범죄 대상이 되거든요. SNS란 공간이 겉으로만 보면 행복하고 잘 사는 것 같지만 그 속을 보면 외롭고 공허하거나, 사실은 행복하지 않지만 사진만 행복하게 찍어서 올리는 거 일 수도 있잖아요. 감독님이 그런 부분을 설명하는 걸 듣고 공감도 많이 갔어요. 주변에도 ‘그거 하니까 행복해 보이더라’ 하면 ‘아냐, 힘든 거 많아. 사진만 봐서 그래 보이지’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리고 감독님이 청년들에 대한 현실적인 얘기도 담고 싶다고 하셔서 그런 것도 얘기를 많이 나눴죠.
이시언 배우, 김성철 배우하고 함께 했는데, 세 분은 어떤 식으로 의견을 나눴나요?
다 편안하게 냈어요. 아무래도 시언 오빠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 애드립도 많이 하거든요. 시언 오빠가 ‘이거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이런 거 같지 않아?’하고 대화를 이끌어주시면 저도 이럴 거 같아요, 저럴 거 같아요 하면서 연습도 편하게 맞춰봤던 거 같고. 진짜 친구들끼리 했던 거처럼 편하게 했던 거 같아요.
극중 성민과 누리가 자주 투닥거리는데, 이시언 배우와 실제로 투닥거리는 편인가요?
실제로는 제가 그렇게 못 대들죠(웃음). 그냥 ‘아 오빠 왜 그래요~’ 정도 하지, 시언 오빠가 츤데레 스타일이어서 많이 챙겨주시고, 오빠 덕분에 분위기도 더 좋았던 거 같아요. 밤 촬영이 많아서, 피곤하니까 예민해질 수 있잖아요. 그럴 때도 오빠가 재밌게 해줬어요, 많이.
약간 허세가 있고 장난스러운 이시언 캐릭터 성민과 진중한 김성철 캐릭터 준혁, 본인 취향에 맞는 캐릭터는?
저는 둘이 섞었으면 좋겠는데(웃음). 둘이 너무 모 아니면 도에요. 조금의 장난스러움과 이 진지함을 섞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너무 진지하고, 너무 장난스러우니까.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요?
시언 오빠의 캐릭터가 더.... 그렇게 재밌고 그런 사람이 좋지 않을까요?
연예계 생활은 오래 했지만, 배우로서는 신인에 가깝잖아요. 조급하지 않게 자신을 달래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작년, 재작년에 조급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과거를 되돌아봤어요. 제가 '포미닛'으로 데뷔하기까지도 6년이 걸렸는데 지금 2, 3년이 이렇게 됐다고 힘들어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싶었어요. 그리고 주변에 보면 저랑 같이 힘들어하던 친구들도 지금 잘 되는 거 보면 사람 인생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니까.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미리 결단 지어서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이 될 때 잘 안 만나거나 새로운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고민은 고민도 아니구나, 생각해요. 아예 다른 직업군의 자주 안 만나는 사람이면 색다른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대화를 하다 보면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잖아요. 그러면 조급함이 더 생기기도 해서, 아예 다른 직업군을 만나는 걸 추천해요(웃음).
요즘 외출을 하기가 힘든 시기잖아요. 평소에도 집순이셨나요?
그런 편이에요.
어떤 걸로 시간을 보내시나요?
최근엔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하니까,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던가, 안 봤던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던가, 그러면서 너무 많은 콘텐츠를 본 것 같아요(웃음). 원래 한 편 보면 그거에 대해서 느끼고 생각하고 해야 하는데 요즘엔 연달아 다른 걸 보니까 사실 생각도 잘 안 나고... 시력도 나빠진 것 같고(웃음). 그러면서 연기 공부도 많이 한 거 같아요. 이런 배우분들도 있구나, 이렇게 연기하는구나.
그럼 요즘 본 것 중에 인상적인 작품이 있나요?
<OA>라는 작품을 재밌게 봤어요. 한국에 비슷한 드라마나 영화가 없던 거 같아요.
이제 30대시잖아요. 앞자리가 바뀌는 건 크게 와닿는다는 배우들도 있던데, 허가윤 배우는 어떤가요?
새로운 마음가짐의 시작인 것 같아요. 데뷔도 스무 살 때 했으니까, 서른부터는 배우로서 뭔가 더 보여주는 삼십대가 되겠다, 될 것이다, 되게 만들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파이팅 하고 있어요. 그전엔 ‘20대가 다 가고 있는데’ 하는 조급함이 있었거든요? 30이 되니까 차라리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되더라고요. 제 주변 인생 선배님들이 30대가 제일 잘 아는 시기라고 하더라고요. 10대, 20대 때 경험을 해보고 조금 더 알 수 있는 나이가 30대라고. 30대부터 저의 배우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걸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관객들이 <서치 아웃>을 어떤 영화로 기억했으면 하나요?
이 영화를 찍기 전엔 사실 (SNS에 올릴) 사진이나 글을 잘못 쓸까 봐 걱정만 했다면 이 영화를 하면서 SNS의 위험함을 더 생각했어요. 이제는 기능이 너무 좋아져서 위치도 나오잖아요. SNS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올리는 사람은 많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이 부분은 조금 조심해야겠다’ 생각하고, 자신의 사생활 보호를 자신이 할 수 있잖아요.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제가 처음 이 시나리오를 보고 생각한 것처럼 조금은 경각심을 갖고 조심할 필요성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서치 아웃>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아무래도 요즘 영화관을 쉽게 갈 수 없는 상황이니까, 꼭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를 보시면 많은 걸 느끼실 것 같아요. 또 허가윤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긴 호흡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화는 이게 처음이니까, '얘가 이렇게 연기를 했네'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도 돼요. 저의 연기에 나쁜 말이 나오든, 좋은 말이 나오든, 저한테는 다 중요한 의견이고 조언이니까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 제공=(주)디엔와이,(주)스톰픽쳐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