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여름을 목전에 앞둔 요즘, 티모시 샬라메의 신작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 극장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여름'과 '티모시 샬라메' 하면 떠오르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음악들을 소개한다.


Hallelujah Junction

John Adams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미국의 작곡가 존 애덤스(John Adams)의 피아노곡 'Hallelujah Junction'과 함께 시작한다. 새카만 화면에 노란 글씨로 제작사들이 조용히 뜨다가, 돌연 음악이 끼어들면서 여기저기 녹슨 조각품 사진들과 함께 배우들의 이름을 휘갈겨 쓴 글씨가 하나둘 지나간다. 두 개의 피아노가 서로 어긋나듯 어우러지는 'Hallejuah Juction'은 앞으로 펼쳐질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의 사랑에 대한 은유처럼 들린다. 존 애덤스는 실제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경계에 위치한 이 길의 독특한 이름에서 제목을 따왔고, 이 근처에 오두막을 마련했다고 한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틸다 스윈튼 주연의 <아이 엠 러브>(2009)를 존 애덤스가 기존에 발표했던 음악으로 꽉꽉 채운 바 있다. 'Hallejuah Juction'은 오프닝 크레딧 이후 엘리오가 올리버의 바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인기척이 들리자 집을 나서는 올리버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신에서도 쓰였다.


M.A.Y. in the Backyard

坂本龍一

엘리오는 스킨십에 민감한 것 같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곯아떨어진 올리버를 흔들지 않고, 구태여 책을 떨어트린 소리로 깨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같이 시내에 나온 두 사람은 테이블에 앉아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자리를 뜬다. 엘리오가 자전거를 타다 휘청대면 올리버가 그의 어깨를 잡아주곤 "나중에 봐(Later!)"하고 떠나고 엘리오는 홀로 남아 그를 바라볼 때,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M.A.Y. in the Backyard'가 스멀스멀 등장하고, 엘리오 가족과 올리버가 서재에서 살구 주스를 마시는 다음 신까지 이어진다. 엘리오는 올리버가 연구에 열중하고, 살구 주스를 단번에 들이켜는 모습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M.A.Y. in the Backyard'와 함께 피어난 스킨십의 설렘이 집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배치한 인용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1984년 앨범 <音楽図鑑>에 일렉트로니카 트랙 'M.A.Y. in the Backyard'를 발표한 데 이어, 기존의 자기 곡들을 피아노 트리오 형식으로 리메이크한 앨범 <1996>에서도 이 곡을 탈바꿈했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 버전을 사용했다. 엘리오가 자기를 피하는 듯한 올리버에게 쪽지를 쓰는 신에서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Germination'이 쓰이기도 했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작년에 선보인 35분짜리 단편영화 <스태거링 걸>의 음악을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청했다.


Capriccio on

the departure of a beloved brother

J.S. Bach

엘리오가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으면 누워 있던 올리버가 듣기 좋다고 말한다. 올리버를 집안으로 오라고 한 엘리오는 살짝 힘을 준 채 피아노로 아까 그 곡을 연주하지만 심드렁하게 듣던 올리버는 "아까랑 다른 거 같은데?"하고 반응하고, 또다시 다르게 연주하자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기타로 쳤던 것처럼 연주하니 금방 다시 돌아와 가만히 앉아 듣는다. 요리조리 관심을 끌어보려는 엘리오의 귀여운 태도, 작은 차이에도 다르게 반응하는 올리버의 예민한 감각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바흐가 젊을 때 쓴 거예요. 형에게 바친 곡이죠." 엘리오가 기타와 피아노로 연주한 이 곡은, 19살의 바흐(J.S. Bach)가 스웨덴 칼 12세의 군악대에 오보에 연주자로 입대하는 형에게 연주해줬고, 가족의 성 'Bach'를 따 내림나장조('B' flat major)로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Love My Way

The Psychedelic Furs

마을의 댄스 파티. 올리버는 키아라를 품에 안고 조 에스포지토(Joe Esposito)의 'Lady Lady Lady'에 맞춰 몸을 흐느적대고 있다. 관심 없는 것처럼 굴지만 그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는 엘리오. DJ가 싸이키델릭 퍼스(Psychedelic Furs)의 'Love My Way'로 바꾸자 다행히(?) 공간의 분위기는 끈적임에서 흥겨움으로 바뀌고, 엘리오의 얼굴에서도 서서히 웃음기가 보인다. 이 노래를 어지간히 좋아하는지 (나중에 올리버와 함께 폭포에 가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때도 이 멜로디를 흥얼댄다) 혼자 몸을 흔드는 데 열중하고 있는 올리버. 엘리오가 잔뜩 끼를 부리면서 댄스 스테이지로 들어서지만 올리버의 주의를 끌지 못하니 자기를 좋아하는 마르치아(에스더 가렐)에게 접근한다. 싸이키델릭 퍼스의 프론트맨 리처드 버틀러(Richard Butler)는 'Love My Way'가 동성애자를 위해 쓴 노래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Love My Way'는 영화 후반부, 엘리오와 올리버가 헤어지기 전날 밤 베르가모의 밤 거리에서 또 한번 사용됐다.


Miroirs III - Une barque sur l'océan

Maurice Ravel (played by André Laplante)

가르다 호수에서 유적들을 발견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엘리오는 외출한 올리버를 기다리며 혼자 적적한 시간을 보내다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피아노곡 'Miroirs'(거울)의 3악장 '바다 위의 작은 배'(Une barque sur l'ocean)'을 연주한다. '바다 위의 작은 배'가 더 중요하게 등장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엘리오가 1차 세계대전 기념 구조물 앞에서 처음 올리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신이다. 둘이 함께 있다가 올리버가 잠시 상점에 들어간 아주 잠깐 '바다 위의 작은 배'가 흐르다가 올리버가 나오면 음악은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네가 모르는 게 있긴 해?" "진짜 중요한 건 모르는걸요." "뭐가 중요한데?" "뭔지 알잖아요."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야?"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알아줬으면 해서? 알아줬으면 해서..." 그렇게 마음을 전하고 나면 음악이 등장하고,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다가가 "이 얘긴 당신 아니면 아무한테도 못하거든요"라 말하면 다시 음악은 페이드아웃. 그렇게 올리버가 잠시라도 멀어지다 가까워지면 음악이 피어오르고 멎기를 반복하는가 싶은데, 두 사람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을 달릴 때도 드문드문 나오다가 드디어 엘리오의 비밀 장소에 도착하면 '바다 위의 작은 배'는 아예 다시 들리지 않게 된다. 음악을 배치하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섬세함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할 만하다.


Words

F.R. David

다락방은 엘리오 가족의 저택에서 가장 은밀한 공간이다. 엘리오는 가만있어도 땀이 나는 이곳에 자신'을' 사랑하는 마르치아를 데려온다. 자기를 피하는 것 같았던 올리버가 자정에 보자고 쪽지를 남긴 날, 엘리오는 마르치아를 다락방에 데려온다. 계속 시계에 눈이 가는 걸로 보아 엘리오의 관심은 온통 올리버와의 만남에 쏠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아무쪼록 엘리오와 마르치아는 햇볕도 들지 않는 방에서 서로 끈적이는 몸을 매만진다. F.R. 데이비드(F.R. David)가 부른 산들산들 가벼운 신스팝 'Words'가 라디오 스피커로 새어 나오니 꽤나 그럴듯한 섹스송처럼 들린다. 한국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올드팝으로 손꼽히는 'Words'는 1981년 겨울 프랑스와 모나코에서 발매됐다가 점점 인기가 불어나면서 2년 후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Futile Devices (Doveman Remix)

Mystery of Love

Visions of Gideon

Sufjan Stevens

"수프얀 스티븐스의 목소리로 영화를 감싸고 싶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말.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노래 3개를 제공했다. 그의 작품은 <리틀 미스 선샤인>(2006), <레스트리스>(2011), <데몰리션>(2015) 등 영화에 인용된 적이 있지만, 수프얀 스티븐스가 순전히 영화를 위해 신곡을 만든 경우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처음이다. 평소 영화 속 음악의 쓰임새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터라 일부러 영화 작업은 거절해왔지만, 루카 구아다니노만큼은 영화에 음악을 제대로 배치할 줄 알았다고 생각해 처음 빗장을 풀었다고.

수프얀 스티븐스의 부서질 듯 여린 목소리는 전적으로 엘리오의 마음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엘리오가 어머니에게서 자기가 올리버를 좋아하는 것보다 올리버가 자기를 더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 혼자 올리버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시퀀스를 'Futile Devices (Doveman Remix)'가 수식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위해 쓰인 새 노래 'Mystery of Love'는 올리버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엘리오와 올리버가 베르가모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쓰였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저기 폭포가 쏟아지는 산길을 뛰어다니는 남자들의 모습이 컨트리풍의 아기자기한 편곡과 묘하게 어울린다. 수프얀 스티븐스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후보에 오른 201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Mystery of Love' 라이브를 선보였다.

그리고 'Visions of Gideon'이 있다. 꿈결 같았던 여름을 보낸 집 앞과 엘리오의 비밀 장소에 눈이 쌓인 겨울, 여전히 올리버와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엘리오는 곧 결혼한다는 올리버의 전화를 받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엘리오는 가만히 벽난로 앞에서 쪼그려앉아 마음을 가다듬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런 엘리오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끝난다. 어머니와 가정부 아주머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나무가 타는 소리만 드문드문 들리는 가운데 "난 당신을 마지막으로 사랑했어요 / 난 당신을 마지막으로 어루만졌어요 / 난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입을 맞췄어요 / 사랑을 위해, 행복을 위해, 당신의 팔에 기댈게요" 하는 노랫말은 고스란히 말 없이 눈물을 삼키고 있는 엘리오의 심정이 드러낸다. 'Visions of Gideon'이 없었다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이 아름다운 엔딩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