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를 막론하고 ‘머머리’라며 놀림받는 수많은 남자 배우들이 있다. 탈모는 슬픈 일이지만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 대머리 배우들은 비록 머리카락을 잃었지만, 그 비주얼만으로도 대중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된다. 그만큼 민머리가 주는 인상이 강렬하기 때문. 남자 배우들도 이 정도로 화제가 되는데, 여자 배우가 삭발한 경우라면 어떨까? 여기에 배역을 위해 머리카락을 포기한 5명의 여배우가 있다.


박소담 <검은 사제들>

<검은 사제들>

박소담이라는 이름을 충무로에 깊게 새겨넣은 작품, <검은 사제들>. 악령에 씌인 여고생 영신 역을 맡은 박소담은 이 영화에서 파격적인 삭발을 선보였다. 너무나도 강렬했던 연기 탓에 머리스타일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이 흠이라면 흠. 박소담이 직접 냈다고 하는 절규에 찬 악령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외에도 그는 라틴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 대사를 후시녹음 없이 직접 외워 연기했다고. 김윤석과 강동원 등 베테랑 선배들을 순간순간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줬던 박소담은 그해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괴물 신인의 탄생을 알렸다.

박소담 본인도 <검은 사제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듯 지난 4월 28일 인스타그램에 삭발했던 사진을 올리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나탈리 포트만 <브이 포 벤데타>

<브이 포 벤데타>

나탈리 포트만의 ‘리즈 시절’ 미모는 가히 우주 최강이었다. 그런 그가 삭발을 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브이 포 벤데타>.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이는 V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포트만이 연기한 에비는 정권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V와 만나게 되면서 점점 자유를 갈망하게 되는 인물. 에비가 정체 모를 남자에게 삭발당하는 신은 더 이상 자유의지가 없던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강조하는 듯 무참하다. 이처럼 에비의 심리적 서사가 크게 바뀌는 중요한 신이기에 포트만의 삭발은 빛을 발했다. 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완벽한 연기를 위해서라면 뭐든 열정적으로 임할 것”이라며 투지를 보였다는 후문. 포트만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와 휴고 위빙의 열연 덕분에 아직까지도 반정부 시위가 열리면 어김없이 V의 가면이 등장하는 것 아닐까.


틸다 스윈튼 <닥터 스트레인지>

<닥터 스트레인지>

제대로 밀었다. 마치 왁싱한 듯 모근조차 보이지 않는 스킨헤드를 선보인 틸다 스윈튼. <콘스탄틴>, <설국열차> 등 전작에서도 끊임없는 변신을 보여주며 ‘변신의 귀재’라 불리던 그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갔다. 혹자는 틸다 스윈튼의 캐스팅을 두고 “왜 에인션트 원이 코믹스처럼 남성이 아니냐”며 원작 훼손 논란을 제기하기도. 이에 대해 마블은 “에인션트 원은 본래 한 캐릭터에 한정되지 않은, 여러 마법적 존재들이 공유하는 코드네임이다”라고 답한다. 여기에 덧붙여 <닥터 스트레인지>의 감독인 스콧 데릭슨은 “1960년대 코믹스의 에인션트 원은 동양에 대한 미국인들의 스테레오 타입을 반영한 캐릭터다.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꾼 것 역시 오리엔탈리즘을 삭제하려는 의도의 일환이었다”며 코믹스 팬들을 납득시켰다. 이런 배경에서 본다면 스윈튼의 삭발은 신의 한 수. 이 반짝반짝한 헤어스타일 덕분에 스윈튼의 에인션트 원은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짐작하기 힘든, 코믹스 팬과 영화 팬 모두를 만족시킨 빛나는 캐릭터가 됐다며 호평받았다.


아시아 케이트 딜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백인 우월주의자 그룹 리더 브랜디 앱스를 연기한 아시아 케이트 딜런. 지난해에는 <존 윅 3: 파라벨룸>에 집행관 역으로 스크린에도 얼굴을 비췄다. 특이한 점이라면 딜런은 배역을 위해 삭발을 한 게 아니라는 것. 그는 자신의 성을 넌바이너리(non-binary)라고 정의한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 관념에 비추어 본다면 상당히 도발적이다. 워낙 개성이 강한 배우이다보니 그동안 딜런이 연기한 배역 또한 중성적인 캐릭터가 대부분. 딜런은 TV에 출연한 최초의 넌바이너리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듯하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성 소수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하기도. 영화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의 배우인 만큼, 톡톡 튀는 연기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낼 수 있을지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언더워터>

2017년, <퍼스널 쇼퍼>의 시사회부터 화제가 됐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삭발. 당시 스튜어트는 차기작인 <언더워터>를 위해 머리를 밀었다고 밝혔다. <언더워터>의 감독 윌리엄 유뱅크가 여주인공인 노라 역이 강렬한 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기 때문. 이에 스튜어트는 삭발 헤어스타일을 직접 제안했고, 촬영기간 중 2~3일에 한번씩 머리를 다듬고 염색을 반복했다고 전해진다. 어느 TV쇼 진행자는 스튜어트의 머리를 보고 “브루스 윌리스가 되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놀리기도 했는데, 스튜어트는 “배역 특성상 헬멧을 자주 써야하는데 머리카락이 없으니까 편해요”라며 헤어스타일에 연연하지 않는 걸크러쉬다운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씨네플레이 이태헌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