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 감독의 걸작 <조디악>(2007)이 CGV아트하우스의 특별전 '시네마 어덜트 베케이션'을 통해 상영되고 있다. 오리지널 스코어 없이 기존의 음악을 활용해 영화음악을 대체하려고 기획됐던 영화인 만큼 세심한 음악 배치가 돋보인다.


Easy to Be Hard

THREE DOG NIGHT

워너 브러더스 로고 바로 다음에 뜨는 "실제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함"이라는 자막이 무색하게도 <조디악>의 시작은 꽤나 감미롭다. 1969년 독립기념일의 밤 도시 곳곳에 거대 폭죽이 터지고 있는 풍경은 캘리포니아 발레이오의 한 마을로 이어진다. 집집마다 이 성대한 날을 조용히 즐기는 모습이 차 안에서 수평 트래킹하는 시점에 비춰진다. 쓰리 독 나잇(Three Dog Night)의 'Easy to Be Hard'가 이 광경을 감싸 있으니, 평화로운 무드는 배가 된다. 'Easy to Be Hard'는 화면 속 배경인 1969년 7월 4일보다 한 달 전 발매된 쓰리 독 나잇의 두 번째 앨범 <Suitable for Framing> B 사이드 첫 번째 곡으로 수록됐다. 밴드 멤버들의 자작곡과 기존 인기곡의 리메이크로 구성된 앨범 가운데 1967년 초연된 뮤지컬 <헤어>의 노래를 재해석한 'Easy to Be Hard'는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싱글이었다. 하지만 독립기념일의 평화로운 무드는 머지않아 들이닥칠 비극의 쇼크를 한껏 부풀린다.


Soul Sacrifice

SANTANA

프롤로그의 충격에 이어지는 <조디악>의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화의 중심 배경이 샌프란시스코라는 걸 확연히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싱글대디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가 아들과 함께 분주히 아침을 준비한 후 신문사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출근하고, 살인마 조디악이 보낸 편지가 편집부로 배달되는 과정이 교차된다.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편집 리듬이 그렇게 재빠른 것도 아닌데 이 시퀀스가 민첩해 보이는 건 산타나(Santana)의 연주곡 'Soul Sacrifice' 덕분이다. 콩가와 드럼이 어우러지면서 시작해 기타와 키보드까지 더해져 이국적인 리듬을 쏟아내는 이 곡은 1969년 8월 중순에 열린 전설적인 록 페스티벌 '우드스탁'에서 선보여 페스티벌의 백미로 손꼽혔고,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표된 산타나의 데뷔 앨범 역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조디악의 편지가 들어 있는 우편함이 편집부에 도착하면서 오프닝 크레딧과 음악이 동시에 끝난다.


Bang Bang (My Baby Shot Me Down)

VANILLA FUDGE

호숫가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살인이 아무런 음악도 없이 펼쳐져 극한의 서스펜스를 뿜어댔다면, 세 번째 살인엔 또 다시 음악이 붙는다. 싸이키델릭 록 밴드 바닐라 퍼지(Vanila Fudge)의 'Bang Bang'이다. 조디악의 첫 편지가 도착한 지 2주 후, 샌프란시스코의 택시 기사가 살해당한다. 차들로 가득찬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조디악이 택시에 타는 순간부터 'Bang Bang'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한다. 낮게 깔리는 키보드 위로 드럼이 무질서하게 쏟아지는 오프닝은 이동하는 택시를 직부감으로 따라가는 신이 이어지면서 긴장을 더한다. 서서히 고조되던 음악은 택시가 멈추자마자 조디악이 기사의 목덜미를 붙들고 총을 쏘고 피가 터지는 순간 노래 제목을 각인시키듯이 격렬한 기타 소리를 토해낸다. 맞은편 아파트에서 사고를 신고하고 조디악은 기사의 피묻은 셔츠를 찢어가는 사이, 음악은 오히려 서서히 흥분을 낮추고 음산한 보컬이 더해지면서 한밤중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섬찟함을 퍼트린다. 셰어(Cher)의 노래를 리메이크(<킬 빌 1>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낸시 시나트라의 'Bang Bang' 역시 같은 곡의 리메이크다)한 바닐라 퍼지의 버전은 원곡의 나른함은 온데간데없다.


I Want to Take You Higher

SLY & THE FAMILY STONE

신문사 소속의 삽화가 로버트와 기자 폴 에이버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중심으로 이어지던 영화는 택시 사건 이후 경찰 데이브(마크 러팔로)가 서사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범죄 수사물의 면모를 보여준다. 조디악이 택시 살인 후에는 스쿨버스를 린치 하겠다는 협박 등으로 경찰과 언론을 흔들긴 했지만 '공식적인' 살인을 행하진 않았던 탓일까, 눈에 띄는 음악 활용 역시 오랫동안 멈춰 있다. 정신을 쏙 빼놓는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의 'I Want to Take You Higher'가 사운드를 장악하는 건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이 지난 시점, 조디악에게 납치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여자를 보여준 후다. 신문들이 조디악에 여자를 납치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기사를 쏟아낸 후에도 여전히 "내게 걸린 현상금이 얼마인지 궁금하군" "평화를 상징하는 뱃지가 유행하듯 조디악 뱃지를 사람들이 달고 다니면 내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며 대중을 조롱하는 메시지를 담은 조디악의 편지를 세 주인공을 연기한 마크 러팔로, 제이크 질렌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차례대로 읽는다. 새로운 편지가 더해지면서 시간이 지나고 있는 자막도 연거푸 등장하고, 사건을 둘러싼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는 공포에서 권태로 바뀐다. 앞서 소개한 산타나의 'Soul Sacrifice'와 마찬가지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I Want to Take You Higher' 역시 우드스탁에서 공연돼 새벽 3시에도 관객의 '떼창'을 이끌어낸 바 있다.


Trailer Park

DAVID SHIRE

데이빗 핀처는 원래 <조디악>을 오리지널 스코어 없이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여름의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유행했을 법한 명곡들로만 영화를 채우고자 했다. 하지만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핀처의 오랫동안 협업한 사운드 디자이너 렌 클라이스는 몇몇 장면에서 오리지널 스코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운드트랙인 <컨버세이션>(1974)과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의 음악들을 그 대목에 넣어 핀처에게 보여주었다. 핀처는 평소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좋아해 <조디악>을 작업하는 데에도 많은 영감을 받았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컨버세이션>과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두 작품의 음악감독인 데이빗 샤이어(David Shire)에게 오리지널 스코어를 청했다. 본래 핀처는 20분 이내 분량의 피아노 솔로로만 이뤄진 스코어를 원했지만, 샤이어는 조디악의 기호가 12개로 구성된 것에서 착안해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과 발레단 뮤지션들의 연주를 빌려 <조디악>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완성했다. 데이브와 동료들이 유력한 용의자 아서 리 앨런(존 캐럴 린치)의 집을 조사하는 대목에 쓰인 'Trailer Park'가 특히 인상적이다.


Hurdy Gurdy Man

DONOVAN

도노반(Donovan)의 'Hurdy Gurdy Man'은 <조디악>의 프롤로그과 에필로그를 모두 장식하는 노래다. 오프닝에서 쓰리 독 나잇의 'Easy to Be Hard'와 함께 마을에 들어선 여자는 자기보다 꽤 어려 보이는 남자를 태우고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차에 앉아서 음악 듣고 얘기도 하자며 한적한 공터에 차를 세운다. 거기서 놀던 애들이 차에 총을 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곧 진짜가 나타난다. 도노반의 'Hurdy Gurdy Man'이 어디선가 들려와 두 사람의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는 걸 돕는다고 오해하는 것도 잠시, 이 음악이 이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또 다른 차에서 크게 흘러나오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된다. 가만히 멈춰서 있다가 자리를 뜬 차는 빠른 속도로 가던 길을 돌아와 다시 두 사람의 차에 멈춰선다. 손전등을 켜고 다가오는 이는 대뜸 차 안에 소음기를 단 총을 갈기고, 남자가 살아 있는 걸 발견하곤 다시 돌아와 총을 쏘는 것도 끝까지 지켜본다. 어쿠스틱 기타에 쓸쓸하게 노래하던 음악은 그 사이 전자 기타 소리가 활개치는 싸이키델리아를 펼치고 있다.

1991년 8월 16일, 그러니까 첫 살인사건으로부터 22년이 흐른 어느 여름, 조디악의 총격에 살아남은 마이크는 용의자들의 얼굴을 늘어놓은 사진들을 보고 금세 그리고 확신에 찬 채로 아서 리 앨런을 지목한다. "이 얼굴을 처음 본 게 69년 7월 4일이에요. 날 쏜 사람이 틀림없어요." 마이크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면 'Hurdy Gurdy Man'이 다시 흘러나온다. 그리고 훗날 조디악 사건 수사가 결국 미결 상태로 종료됐지만 일부 지역에선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과 세 주인공 데이브, 폴, 로버트의 근황을 전한다. 도노반은 비틀즈(The Beatles)와 함께 인도에서 명상 수련을 하던 중에 평소 자신이 만든 음악들보다 한껏 강렬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Hurdy Gurdy Man'을 작곡했다.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선물해준 인도 악기 탄푸라를 연주해 인도음악의 영향이 돋보이는 노래는, 스몰 페이시스(Small Faces)가 그보다 1년 전 발표한 'Green Circles'와 여러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도노반은 이 곡을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연주해주길 바랐다고 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