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실험. 영화관이란 검은 상자 속에서 당신은 <테넷>을 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당신은 출구 앞으로 간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테넷>에 관한 거의 모든 비평과 해석이 나온 하나의 ‘현실’이 펼쳐진다. 발걸음을 뒤로하여 다시 객석에 착석한다면 당신은 이 영화가 트는 하나의 ‘운명’을 들을 수 있다. <The Plan>, 이 노래는 트래비스 스콧이 부른 <테넷>의 엔딩곡이다. 이 글은 영화의 끝에서 시작한다. <The Plan>의 가사 중 2개의 라인은 <테넷>을 포함한 3편의 영화를 묶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You don’t know where we stand”와 “Not a vibe (yeah) but a wave, with the sound by the way”가 그것이다. 종합해보면 그것은 공간과 파동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속에 여러 층의 공간이 등장한다. 그는 이 공간을 관통하는 파동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시키며 이를 통해 또 다른 공간을 창출한다.
동선의 영화, <테넷>
<테넷>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과거로 가보자. 위에서 언급한 3편의 영화 중 첫 번째 영화는 <인셉션>이다. <인셉션>이 그리는 운동의 방향은 U자의 형태다. 영화는 현실에서 시작해 꿈을 통해 무의식의 밑바닥인 림보까지 침잠해버린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구조를 갖는다. 꿈은 총 4단계로 구성되어 있고 컨테이너 박스처럼 직육면체를 연상시킨다. 영화 속에서 밴, 엘리베이터, 호텔 복도 등의 직육면체가 원을 그리거나 수직으로 이동한다. 각 단계의 꿈은 경계면이 존재하고 전 단계의 꿈에서 영향을 받는다. 날씨나 중력의 변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꿈은 역의 방향으로 영향을 주진 못한다. 총 4단계의 꿈의 공간들을 관통하는 것은 음악과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무의식의 파편들이다. 영화는 이 두개를 상충시킨다. 꿈속에서 울려 퍼지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는 맬(마리옹 코티야르)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찬 코브의 감정과 충돌한다. 후회를 하지 않겠다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가사를 수행이라도 하듯이 코브는 림보에서 맬과 직면하여 자신을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코브는 무의식이란 수렁에서 빠져나오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놀란은 각 단계의 공간들을 관통하는 방식을 <인터스텔라>에서 좀더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펜으로 겹친 종이를 뚫어서 웜홀을 설명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인셉션>과는 반대 방향의 운동성을 보인다. 역-U자의 형태를 취하는 이 영화는 우주(Space)라는 공간을 계속해서 부유하다 다시 어딘가로 돌아온다. <인터스텔라>에서 모든 시공간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중력이다. 블랙홀로 스스로 들어간 쿠퍼(매튜 매커너헤이)는 5차원의 공간 속에 갇힌다. 이 공간은 직육면체를 연상시켰던 <인셉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수많은 직육면체를 연결하여 5차원 공간을 3차원 공간으로 구현한다. 이 공간에서 쿠퍼는 딸인 브랜드를 볼 수 있지만 브랜드는 그렇지 못한다. 쿠퍼는 딸을 가로막는 일종의 경계면을 누르면서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지구에 있는 브랜드에겐 중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쿠퍼는 이를 사랑이라 설명한다. 부녀 지간의 사랑으로 모든 시공간을 관통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인터스텔라>는 이를 통해 지구를 구해내고 쿠퍼는 딸과의 재회에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