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독창적인 미국 감독으로 손꼽히는 조쉬 사프디, 베니 사프디 형제의 특별전이 한국영상자료원 VOD를 통해 진행 중이다. 향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운영하는 시네마테크 KOFA에서도 오프라인 상영을 이어갈 예정이다.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뜨거운 반응을 얻은 사프디 형제의 최신작 <언컷 젬스> 속 음악들을 소개한다.


The Ballad of Howie Bling

DANIEL LOPATIN

<언컷 젬스>와 사프디 형제의 전작 <굿타임>(2017)의 음악은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다고? <굿타임>의 음악감독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는 근사한 예명이 아닌, <언컷 젬스>에서 본명 대니얼 로파틴(Daniel Lopatin)을 내세웠다. 달라진 건 비단 이름만이 아니다. <굿타임>이 예의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빵빵하게 울려 영화 속 텐션을 극한으로 몰아붙였다면, <언컷 젬스>는 처음부터 위기에 처해 있는 주인공이 자꾸 악수를 두게 되면서 점점 더 심한 수렁으로 굴러떨어진다는 얼개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몽롱한 무그(Moog) 신디사이저를 기반으로 한 사운드를 늘어지듯 풀어놓는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악재보다는 꼬여만 가는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주인공 하워드에 집중한 방향. 2010년 가을 에티오피아의 광산에서 시작해 광부들의 피와 눈물을 먹고 자란 블랙 오펄이 발견되고 그 안으로 카메라가 줌인해서 오장육부로 이어져 하워드(애덤 샌들러)가 내시경 검사를 하는 2012년 봄 뉴욕의 병원 풍경으로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를 꾸미는 스코어의 제목이 '하위 블링의 발라드'인 것도 그 지표라 할 만하다. 로파틴은 반젤리스(Vangelis), 토미타 이사오(冨田勲),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 등 신디사이저로 미래/우주적인 이미지를 그려온 명장들의 영향이 짙게 드러나는 스코어로 뉴욕 보석상 하워드(애덤 샌들러)의 파란만장한 어느 봄을 수식한다.


Type of Way

RICH HOMIE QUAN

하워드는 그야말로 재수가 없다. 꼴보기 싫고, 일이 더럽게 안 풀린다. 몇 달간 수소문 한 끝에 블랙 오펄을 손에 넣게 됐지만 그때 맞춰 NBA 스타 케빈 가넷(Kevin Garnett)이 보석 가게를 찾아오고, 보자마자 오펄에 홀딱 반한 가넷이 그걸 빌려가겠다고 하면서 <언컷 젬스>의 우르르쾅쾅 사건사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물론 이 불운의 연속은 하워드가 빚을 못 갚은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경매에 붙이려고 한 오펄을 가넷이 제때 돌려주지 않으면서 일은 더 꼬이게 된다. 오펄을 가지고 왔다던 드마니(러키스 스탠필드)는 당당하게 오펄이 아직 가넷에게 있다고 말한다. 뉴욕 한복판에서 만난 드마니의 차에선 리치 호미 콴(Rich Homie Quan)의 트랩 트랙 'Type of Way'가 흐르고 있다. 흥얼흥얼 콧노래 하듯 랩을 늘어놓는 리치 호미 콴의 감각이 빛나는 곡인데, 실상 영화는 그 음악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다. 하워드와 드마니, 거기에 하워드에게 돈을 떼먹힌 남자 무리까지 합세해 쉴새 없이 대사를 늘어놓기 때문에 'Type of Way'는 뉴욕의 수많은 소음 중 하나 정도로 작용한다. <언컷 젬스>는 케빈 가넷과 위켄드(The Weeknd)를 둘러싼 이야기 때문에 2012년 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Type of Way'는 2013년 여름에 나온 곡이다.


The Morning

THE WEEKND

하워드는 애인 줄리아(줄리아 폭스)의 카메라에 담긴 남자에 대해 묻는다. "위켄드야. 대스타가 될 거야. 캐나다 출신이긴 하지만." 그리고 며칠 후 진짜 위켄드가 등장한다. 딸의 연극을 보러 갔다가 아르노(에릭 보고시안) 일당에게 호되게 당한 하워드는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드마니에게 오펄도 받아낼 겸 위켄드 클럽 공연에 간다. 역시나 드마니는 오펄을 가져오지 않았고 시답잖은 언쟁을 벌이던 중 위켄드의 공연이 시작된다. 검은 조명이 준비되지 않으면 노래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그가 부르는 노래는 'The Morning'. 위켄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첫 믹스테이프 <House of Balloons>에 수록된 곡이다. 아침이라는 활기찬 제목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나른하고 뇌쇄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노래에 맞춰 모든 사람들이 슬렁슬렁 몸을 움직이는데, 하워드만 위켄드 옆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줄리아를 발견하곤 못마땅히 서 있을 뿐이다. 이런 풍경은 실제로 2012년 봄 뉴욕에 실제로 있었을 법한 것이다. 위켄드는 믹스테이프 <House of Balloons>과 더불어 연달아 3개 믹스테이프를 발표하면서 2011년 최고의 신인으로 손꼽혔고, 메이저 데뷔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줄리아의 말처럼 당대 팝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로 성장했다.


Swimming Pools (Drank)

KENDRICK LAMAR

위켄드가 화장실에서 줄리아에게 끊임없이 치근덕거리는 신이 시작되면서 'The Morning'은 뚝 끊긴다. 넘어갈 듯 말 듯 줄리아와 위켄드가 몸을 맞대고 있을 때, 하워드가 불도저처럼 와서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둘이 같이 있는 걸 보고 하워드는 바로 위켄드의 멱살을 잡다가 곧 제지당하는데, 우리의 찌질남은 제압당한 채로 줄리아에게만 욕을 퍼붓는다. 이때 클럽에서 나오는 음악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Swimming Pools (Drank)'이다. 과연 이 곡은 고증을 제대로 따랐을까? 언더그라운드에서 걸출한 랩 실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켄드릭 라마는 닥터 드레(Dr. Dre)의 레이블 '애프터매스'(Aftermath)와 계약하고 메이저 데뷔 앨범 <good kid, m.A.A.d city>를 발표하면서 단숨에 랩 슈퍼스타로 등극했다. 그야말로 2012년은 위켄드와 켄드릭 라마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보면 고증 성공 같다. 허나 연도가 아닌 월을 따져봐야 한다. <good kid, m.A.A.d city>의 첫 싱글인 'Swimming Pools (Drank)'는 그해 7월 말에 나온 트랙이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보스턴 셀틱스와 필라델피아 식서스의 플레이오프 7차전 경기는 2012년 5월 26일에 열렸다.


The Stranger

BILLY JOEL

줄리아가 바람을 피웠다고 (지도 줄리아와 바람 피우는 주제에!) 아파트에서 그녀를 쫓아낸 하워드. 빚은 불어만 가고, 연애마저 망한 그가 택할 길은 하나다. 이혼 '발표'만을 앞둔 아내 디나(이디나 멘젤)에게 다시 잘 보여야 한다. "내 평생 당신처럼 짜증나는 인간은 처음 봐", (얼굴을 치려다가 말고) "당신 살에 닿기도 싫어" 등 반응은 싸늘할 따름. 가족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워드가 쭈뼛쭈뼛 눈치만 보고 있는 사이,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Billy Joel)의 'The Stranger'가 흘러나온다. 오리지널 스코어 외에 사용된 2012년 노래들에 비하면 힙합/R&B에 비하면, 1977년 가을에 나온 빌리 조엘의 'The Stranger'는 2012년 당시 40대인 하워드에게 보다 친근한 노래다. 도입부의 잔잔한 피아노와 휘파람 소리가 이 뻘쭘한 상황을 돋보이게 하는데, 아파트에 뭐 좀 갖고 올 게 있다고 말하는 걸 듣고 하워드 얼굴을 빤히 보던 디나가 "아파트에 들렀다 간다"로 말하자, 'The Stranger'의 훵키한 리듬이 팍 터져 오른다. 흥미로운 건 디나의 말을 듣고 난 뒤 하워드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관객은 한껏 동적으로 바뀐 음악을 들으면서 하워드가 용서 받을 수 있거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띄워진 것처럼 느낀다. 음악의 힘일 수도, 보이지 않는 안면 근육까지 컨트롤 하는 애덤 샌들러의 걸출한 연기력 때문일 수도 있겠다.


Rain

MADONNA

빌리 조엘의 'The Stranger'를 들으며 도착한 하워드는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아들과 함께 아파트에 올라간다. 저 멀리서부터 음악이 들려서 줄리아가 아직 집에 있겠다 판단한 하워드는 화장실이 공사 중이라며 아들에게 이웃집 화장실을 쓰게 한다. 나이든 명배우의 집에서 거절 당한 후 "약쟁이" 집에 아들을 보내고 나서야 조심히 문을 여니, 마돈나(Madonna)의 'Rain'이 더 크게 들린다. 예상과 달리 줄리아는 집을 싹 비워 놓고 떠났고, 빈 집에서 마돈나의 음성만 크게 울리고 있다. 고통을 씻어내는 비에 사랑을 비유한 로맨틱한 가사와 달리 하워드는 바보같은 의심으로 자기만을 사랑해주는 줄리아를 내쫓고 쓸쓸히 이 노래에 둘러싸여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살렸다. 80년대에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마돈나는 90년대 들어 일렉트로니카 DJ 솁 피티본(Shep Pettibone)을 프로듀서로 기용해 당시 유행한 트립합과 뉴에이지의 영향이 짙은 음악적인 변신을 꾀한 5번째 앨범 <Erotica>를 발표했고, 'Rain'은 그 앨범의 5번째 싱글이었다.


L'amour toujours

GIGI D'AGOSTINO

<언컷 젬스>의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음악은 꽤나 난데없다. 대니얼 로파틴의 오리지널 스코어도, 힙합/R&B 트랙도 아닌, 이탈리아 DJ 지지 디 아고스티노(Gigi D'Agostino)의 이탈로 댄스 트랙 'L'amour toujours'(사랑은 언제나)다. 광물의 세계로 그래픽으로 구현한 이미지들과 로파틴의 'Uncut Gems'가 만든 신비로운 분위기를 일거에 밀어버리는 경망스러운 댄스 곡이라, 이 정신사나운 이야기 자체가 더더욱 정말 한낱 농담처럼 다가온다. 하워드의 재수 없는 며칠을 보느라 2시간 넘게 시달린 관객에게 이제는 머리를 씻어버릴 시간을 주는 배려처럼 느껴지기도.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