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먼저,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 영화가 ‘수요명화’ 카테고리에 들어갈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한 판단이 개인의 몫이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어쨌든 <어바웃 타임>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에디터가 선택한 방법은 <어바웃 타임>을 두 개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해롤드 래미스 감독의 <사랑의 블랙홀>(1993)이 비교 대상 영화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어바웃 타임>과 <8월의 크리스마스>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그린다는 점입니다.
<어바웃 타임>에는 두 개의 사랑이 있습니다. 팀(도널 글리슨)과 메리(레이첼 맥아담스)가 주인공인 연인의 사랑과 팀과 아버지(빌 나이)의 부자 간의 사랑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도 두 개의 사랑이 있습니다. 정원(한석규)과 다림(심은하), 정원과 그의 아버지(신구)의 사랑입니다.
<어바웃 타임>이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이유를 팀과 그의 아버지의 관계에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팀과 아버지가 탁구를 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탁구를 치면서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합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그를 떠나보내려는 팀이 해변을 산책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타임슬립이 가능한 부자는 그렇게 마지막을 함께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아들 정원이 죽음을 준비합니다. 사진사인 그는 혼자 영정사진을 찍습니다. 정원은 홀로 남을 아버지에게 비디오 켜는 법을 알려줍니다. “전원을 켜고 이렇게 채널 4번을 누르시면 돼요.” 정원은 친절하게 알려주지만 늙은 아버지는 잘 이해를 못합니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가르치던 정원은 결국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맙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비디오 작동법, 현상기 작동법 같은 메모를 씁니다. 아버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아들의 방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입니다.
두 영화 모두 죽음과 관련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습니다.
<씨네21>에 실린 <어바웃 타임> 리처드 커티스 감독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이번 영화가, 두 남녀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키스로 재회하는 순간으로 막을 내리는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길 바랐다. 사실 빌 나이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감정선을 가지게 되었는데, 나는 이것이 모두 그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빌 나이에게 관객이 자연스럽게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를 투영하면서 부자 간의 사랑 이야기에도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큰 힘이 실렸던 게 아닌가 싶다.”
과거를 다시 살다
<어바웃 타임>의 팀은 성인이 되면서 타임슬립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에디터라면 당장 로또를 사겠지만 순수한 영혼인 팀은 로또 대신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메리가 원하는 남자가 되기 위해 과거로,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길 반복합니다. 이런 반복이 <어바웃 타임>의 재미입니다.
<사랑의 블랙홀>은 <어바웃 타임>의 아버지가 한 말, “하루를 두 번 살아보라”를 말 그대로 실천하는 영화입니다. 기상캐스터 필 코너스(빌 머레이)는 성촉절(Groundhog Day) 축제가 열리는 똑같은 하루를 계속 살게 됩니다. <어바웃 타임>의 팀과 달리 필은 못돼먹은 인간입니다. 처음에 필은 이 상황을 즐깁니다. 여자를 유혹하고, 돈가방도 훔치고, 축제를 망치기도 합니다. 어차피 내일이면 또 오늘이 시작될 거니까요. 그러다가 지루해집니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죽지도 못합니다. 그러다 함께 취재를 온 PD 리타(앤디 맥도웰)에게 마음을 뺏깁니다. 리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은 개과천선을 다짐합니다. 음식을 잘못 삼켜 질식하려는 남자,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 타이어가 펑크난 할머니를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리타를 위해서 피아노도 배웁니다. 리타의 마음을 얻은 필은 드디어 내일을 맞이합니다.
두 영화 모두 시간의 반복을 통해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습니다. 팀이 더 이상 타임슬립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필은 내일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다시 한번 <씨네21>에 실린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내가 쓴 예전 작품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이야기의 절반 이상이 ‘가족을 떠나 새로운 사랑을 만나 결혼하라!’라는 걸 알고 좀 놀랐다. ‘잠깐, 이들이 결혼하면 다시 가족이 되고, 자녀가 생길 텐데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로맨틱 코미디는 가족의 이야기로, 가족의 이야기는 다시 로맨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사랑에 대한 향수’가 나의 예전 작품들을 관통한 테마였다면, <어바웃 타임>에서는 ‘소소한 일상이 던지는 지금 이 순간의 감동’에 좀더 초점을 두고 싶었다.”
<어바웃 타임>이 ‘수요명화’ 카테고리에 들어갈 만한 영화인지 아닌지 혼자 고민하면서 포스팅을 작성해봤습니다. <어바웃 타임>은 잘 만든 착한 영화입니다. 깨알 같은 유머와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교훈이 근사하고 매끈하게 엮여 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습니다. 어리숙하지만 착해빠진 팀을 연기한 도널 글리슨은 워킹타이틀의 남자 휴 그랜트의 뒤를 잇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팀의 어머니(린제이 던컨)는 메리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자가 너무 예뻐도 문제야. 얼굴 믿고 유머나 인격을 안 가꾸거든.” 이 말을 그대로 레이첼 맥아담스에게 돌려줘도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말은 엄청난 칭찬입니다. 빌 나이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바웃 타임>이 잘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굳이 <8월의 크리스마스>와 <사랑의 블랙홀>을 비교 대상에 올렸습니다. <어바웃 타임>을 재밌게 보셨는데 아직 <8월의 크리마스> <사랑의 블랙홀> 안 봤다면 한번쯤 찾아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