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꽤나 흥미진진한 소식이 있었다. 별개의 시리즈로만 생각되어 왔던 토비 맥과이어의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그리고 가장 최근의 스파이더맨인 톰 홀랜드가 MCU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차기작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가 이 3명의 역대 스파이더맨을 한자리에 모으는 데 꽤나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하는데, 루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히어로 무비 팬들은 물론이고 다수의 관객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실현될 수 있을까의 문제는 논외로, 다수의 스파이더맨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최근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통해 ‘스파이더버스’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소개된 적이 있다. 사실은 이전에도 동명의 코믹스와 후속 시리즈인 <스파이더겟돈>을 통해 여러 명의 스파이더맨과 그들의 세계가 교차하는 이야기가 소개된 바 있었다.


스파이더맨 총출동 이벤트 ‘스파이더버스’

평행 우주의 스파이더맨을 그린 코믹스 <스파이더겟돈>

슈퍼히어로 코믹스에 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이자, 주요한 세계관 설정 중 하나가 바로 멀티버스, 즉 평행우주다. 마블 세계관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해 수없이 많은 지구가 존재하며, MCU는 물론이고 코믹스 시리즈 각각이 각자 다른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뜻인데.

스파이더버스는 이런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스파이더맨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형 이벤트로서 2014년에 소개되었던 시리즈였다. 마블의 스파이더맨 코믹스 상당수를 집필한 스토리 작가이자, 차츰 인기가 떨어지고 있던 시리즈를 다시 인기작 반열에 올려놓은 능력자로 유명한 댄 슬롯의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이인혁 작가의 스파이더버스 일러스트

처음에는 단순했을지도 모르지만, 여러 버전의 스파이더맨들이 한자리에 모여 보다 강한 적에 맞서 전투를 펼친다는 내용은 히어로 코믹스에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히스토리의 총집편으로서도 흥미로운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물론 수많은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에 메인 스파이더맨이자 최초의 스파이더맨 캐릭터인 피터 파커의 오리지널리티가 다소 흐려지는 역효과도 있기는 했다. 이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역으로 다양한 미디어믹스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근래 다양한 시도들의 토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스파이더 토템의 선택

코믹스에서 그려진 ‘스파이더 토템’

수많은 스파이더맨이 존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스파이더 토템’이라는 개념이 있다. 스파이더맨의 능력, 즉 거미의 특성을 토대로 한 각종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멀티버스의 모든 스파이더맨들은 스파이더 토템과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을 통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믹스 등지에서 심도 있게 활용된 적은 없지만, 코믹스에서는 여러 번 등장했던 개념이며 피터 파커가 왜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인지를 설명하는 장치로 제시되기도 했다. ‘위대한 토템들’이 존재하며, 이 위대한 토템들은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부여할 아바타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중 모범생이지만 누구보다도 강력한 사냥꾼이었던 피터 파커가 선택받았고 그래서 피터 파커가 가장 중요한 스파이더맨이 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수많은 스파이더맨 중에서 피터 파커가 원조인 이유는 스파이더 토템에서 찾을 수 있다.

스파이더 토템은 지난 10년간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활용되어 왔는데, 수많은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창작자 측면에서는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의 당위성과 고유성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아무리 많은 스파이더맨이 등장해도, 최초에 등장했던 피터 파커라는 캐릭터가 가장 중요한 스파이더맨이며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마블 코믹스 스스로가 입증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미디어믹스 속 ‘스파이더버스’

이제 스파이더버스는 본격적으로 더 많은 미디어를 통해 재창작되고 있다. 다양한 스파이더맨 캐릭터들은 피터 파커는 물론이고 스파이더 그웬, 스파이더 느와르, 스파이더 펑크, 스파이더링 등이 각자의 스토리와 그 속에서 펼쳐지는 개인적 고뇌를 통해 별개의 캐릭터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이런 다채로운 변주들은 애니메이션과 실사화 프로젝트에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파이더맨의 빌런들이 뭉친 '시니스터 식스'

스파이더맨 판권을 갖고 있는 소니픽쳐스는 이전부터 계속해서 스파이더맨과 관련된 다양한 시리즈를 계획해 왔는데, 스파이더맨의 빌런들이 만든 팀인 ‘시니스터 식스’의 영화화 계획도 아주 오래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였다. 소니픽쳐스는 이를 비롯해 스파이더맨 스핀오프 시리즈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에 오를 때마다 계획이 백지화된 적은 없으며 기회만 된다면 진행할 생각이 있다는 의사를 밝히곤 했었다.

이런 이야기는 소니가 스파이더맨 판권을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누가 포기하겠냐만은) 그 실례로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서 스파이더맨 느와르와 그웬을 비롯한 다양한 멀티버스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한 바 있다. 여기에 피터 파커의 재해석 그리고 흑인 소년 스파이더맨인 마일즈 모랄레스를 주인공으로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시작을 연 셈이기도 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더불어 소니의 PS4 게임 타이틀 <마블스 스파이더맨>에서는 기존의 피터 파커에 조력자 마일즈 모랄레스, 그리고 코스튬을 통해 다양한 스파이더맨 변주를 등장시킴으로써 스파이더버스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소니의 차기작인 <모비우스> 역시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다크 히어로 캐릭터로서, 차차 스파이더버스는 더 많은 미디어믹스 콘텐츠를 통해 선보일 예정인 것 같아 보인다.


MCU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세 번째 작품, 3명의 스파이더맨

(왼쪽부터)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 토비 맥과이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에서는 스파이더맨 판권을 빌려오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자체 세계관 속에 스파이더맨을 성공적으로 등장시켰고, 시리즈는 매번 흥행에 성공하면서 벌써 세 번째 타이틀을 예정하고 있다. 2021년 12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세 번째 타이틀은 여전히 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에 소니를 통해 개봉되었던 지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다.

토비 맥과이어는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출연했다.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일명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개봉 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많은 관객들에게 최고의 스파이더맨으로 손꼽힐 만큼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작품을 거듭하면서 처음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너드 모범생이었던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앤드류 가필드는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출연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경우 이전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흥행 부진으로 기존에 예정하고 있었던 만큼 제작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앤드루 가필드의 스파이더맨 연기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웬 스테이시 역을 맡은 엠마 스톤과의 케미스트리도 영화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MCU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새로운 배우 톰 홀랜드를 낙점했을 때 아쉬움을 표한 관객들도 있었다.

톰 홀랜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스파이더맨을 연기하고 있다.

MCU에서 새로운 스파이더맨 역할로 등장한 톰 홀랜드는, MCU에 등장한 기존 히어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어린 고등학생이었고(캡틴에 비하면…)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아 전투 면에서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도 했으며 실제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다방면으로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설픈 매력과 덜 다듬어진 모습이 매력으로 작용해 인기를 얻었던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스파이더맨을 주인공으로 한 세 가지 시리즈는 조금씩 다른 캐릭터, 조금씩 다른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지만 각자의 매력으로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 앤드루 가필드와 토비 맥과이어가 보여준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아직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고, 세 배우가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기에 세 사람이 한 영화에 등장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흥행 포인트로 작용하지 않을까.


아직 확실한 정보는 아니고, 루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이전의 스파이더맨들까지 한자리에 볼 수 있는, 그리고 나아가 스파이더버스가 실사화 프로젝트를 통해 실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타의 판권 분쟁과 더불어 정말 우여곡절 많았던 MCU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인지라, 차기작이 무사히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능하면 세 배우가 동시에 웹 슈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겨본다.


PNN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