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름만으로도 보는 이를 들끓는 감정 한가운데로 몰고 간다. 그의 이름이 생경하게 느껴진다면 틸다 스윈튼의 더운 숨을 담은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 티모시 샬라메를 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떠올려보자. 가공되지 않은 감정이 살아 숨 쉬는 장면들로 끈끈한 욕망들을 조명해왔던 그가 이번엔 드라마 연출에 도전했다. 이탈리아 북부 키오자에 위치한 미군 부대에 거주하는 10대들의 요동치는 몇 번의 계절을 담아낸 작품, <위 아 후 위 아>(We Are Who We Are)다.

해외 평단이 꼽은 2020년의 베스트 드라마 리스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 시리즈가 지난 11월 25일 왓챠에서 독점 공개됐다. 정주행 전 예습하면 좋을 <위 아 후 위 아>의 매력을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뉴욕에 살던 프레이저(잭 딜런 그레이저)의 가족이 이탈리아 북부 키오자에 위치한 미군 부대에 터를 잡으며 드라마가 시작된다. 군인인 엄마 세라(클로에 세비니), 엄마의 아내이자 또 다른 엄마인 매기(앨리스 브라가)를 따라 이탈리아에 온 프레이저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안 그래도 별난 구석이 있는 프레이저는 부대의 새로운 지휘관이라는 엄마의 특출난 신분 덕에 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이사 첫날, 그를 눈여겨본 이가 있었으니 동급생인 브리트니(프란체스카 스콜세지). 프레이저는 브리트니의 무리와 어울리던 중 바로 옆집에 사는 케이틀린(조단 크리스틴 시몬)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며칠 후 남자 옷을 입은 케이틀린의 뒤를 쫓은 프레이저. 그날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며 더 가까워진다.


변화와 성장

패션이나 문학, 음악에 있어 남다른 감각을 자랑하는 프레이저는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소년이다. 남을 위해 자신을 포장하는 법을 모르는, 지나치게 솔직한 이 소년은 때마다 요동치는 제 감정에 충실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 채 불안을 안고 살던 케이틀린은 프레이저를 만나 머리카락을 자르고 수염을 붙이는 등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만들어나가며 해방감을 느낀다.

“우리는 우리일 뿐”이란 제목의 뜻처럼 <위 아 후 위 아>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진정한 변화란 기존의 것이 산산조각 난 후에야 찾아오기 마련. 저마다 극심한 성장통을 겪은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데 성공한다.

이런 변화를 겪는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지휘관으로 부임한 사라는 기지의 최고 자리에서 위엄을 떨치지만 아들 프레이저 앞에선 늘 한없이 약해진다. 그의 아내인 매기는 또 다른 사랑에 눈을 뜬다. 이들이 머물고 있는 타국 속의 작은 나라, 키오자의 미군 부대 역시 정착이란 없는 장소다. 신분증을 내보이고 밖으로 나서면 언어는 물론 통화, 문화 모든 게 전혀 다른 이국의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에선 그 누구도 쉽게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 게다가 이곳의 최대 거주 기간은 3년뿐. 적응할 때쯤이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2016년이라는 시간적 배경 역시 의미심장하다. 각 가정의 TV 등장할 때마다 그 누구도 결과를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선 캠페인 소식이 들려온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친구와 어울리며 일상을 즐기다가도, 누군가는 당장 내일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야 하는 곳. 군인들이 모여 사는 이곳엔 늘 죽음과 불안의 냄새가 떠다닌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성장 드라마, <위 아 후 위 아>의 독보적인 매력은 쉽게 변화의 끝을 예측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온다.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규정을 내리지 않은 채 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판에 박힌 성장 드라마 속 인물들과는 거리가 먼 선택들을 내린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8부작에 거쳐 모든 인물들의 변화와 성장을 완성도 있게 담아낸다. 자신을 발견하고 남을 받아들이며 한 발짝 나아가는 이들의 여정은 보는 이에게도 강렬한 감정의 동요를 전하기 충분하다.


성장과 루카 구아다니노

순간의 공기를 그대로 옮겨 담은 장면들이 있다. 대사로 관객을 이해시키기보다, 관객을 시간과 장소 안으로 아예 끌어들이는 장면들이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품에선 특히 이런 장면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스크린에서 달큼한 복숭아 향을 풍기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에 쏟아지는 따가운 햇빛이 절로 연상됐던 <비거 스플래쉬> 등. <위 아 후 위 아>에서 역시 감독의 이런 장기가 도드라진다.

<위 아 후 위 아>에서 역시 키오자 미군 부대의 한 행인이 되어 이들을 관찰하는 듯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속도감 있는 전개로 다채로운 서사를 쌓아가기보단, 특정 순간에 집중해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특유의 연출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완벽히 환영받을만한 하다. 공감 어린 대사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기존의 성장물과 달리, <위 아 후 위 아>는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예측하지 못한 캐릭터의 행동을 통해 더 많은 말을 전한다. 어느 순간 주인공들과 함께 터질 듯한 숨을 가다듬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특히 인물들이 서로를 향해 페인트를 뿌리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담아낸 <위 아 후 위 아> 4화의 타이틀 시퀀스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장면보다 영화적인 장면”이라는 평을 받았다.


루카 구아다니노와 배우들

좋은 작품의 필수 요소, 배우들의 좋은 연기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티모시 샬라메라는 슈퍼스타를 발굴해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선택을 받은 <위 아 후 위 아>의 얼굴들 역시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며 전 세계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키오자에 도착한 이방인. 프레이저를 연기한 잭 딜런 그레이저는 개봉작을 부지런히 챙겨 본 이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배우. <그것> 시리즈에서 천식을 앓고 있는 결벽증 소년 에디를 연기한 이가 바로 그다. 슈퍼히어로 영화 <샤잠!>에서 샤잠(제커리 레비)와 늘 투닥거리던 소년 프레디 프리먼을 연기하기도 했다. <뷰티풀 보이>에선 티모시 샬라메의 아역을 연기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위 아 후 위 아>를 통해 획기적인 스타일로 변신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시청자들이 대다수. 언뜻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는 괴짜 캐릭터 프레이저에게 호감과 공감을 얹는 데 성공한 그의 힘 있는 얼굴이 돋보인다.

그보다 더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는 건 말 그대로 ‘생짜 신인’인 조단 크리스틴 시몬이다. 신비로운 매력으로 프레이저를 단번에 매료시킨 케이틀린은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프레이저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를 좋은 쪽으로 성장시키는 성숙함을 지녔다. 자신의 성 정체성,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며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케이틀린은 조단 크리스틴 시몬의 깊이 있는 연기력이 있었기에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그간의 연기 경력이라곤 단편 영화 한 편이 전부였던 조단 크리스틴 시몬은 오디션 테이프에서부터 <위 아 후 위 아> 제작진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제작진은 원래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던 케이틀린의 캐릭터를 시몬에 맞게 변형할 만큼 그녀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배우들과 음악

<위 아 후 위 아> 관람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준비 중 하나, 음악이다. <위 아 후 위 아>의 음악을 맡은 이는 블러드 오렌지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데브 하인스. 그의 대표곡 중 하나 ‘타임 윌 텔’(Time Will Tell)은 프레이저와 케이틀린의 관계를 상징하는 곡으로 등장한다. 극 중 캐릭터들이 데브 하인스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장면은 아는 사람만 반가울 수 있는 장면이니 관람 전 챙겨보길 권한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