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영화 흥행판에서 홀연히 사라진 것들이 참 많습니다. 바로 살펴보겠습니다.


2억

국내 연간 총관객수는 2013년을 시작으로 매년 2억 명을 넘기고 있었고 2019년에는 2억 2700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습니다. 올 초반만 해도 이 기록은 유지될 것이란 것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관객은 급속하게 줄어듭니다. 결국 올 총 관객수는 예전의 절반인 1억 명은 고사하고 70% 이상 줄어든 6000만 명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매출 감소로 인해 어려움에 닥친 극장들은 자구책으로

직원감축, 무급휴가, 영화표 인상 등을 강행하고 있지만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네요. 코로나19가 만 1년이 되는 내년 2월이면 안타깝지만 버티지 못하고 문 닫은 극장들이 속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천만영화

2012년 2편, 2013년 2편, 2014년 4편, 2015년 3편, 2016년 1편, 2017년 2편, 2018년 2편, 2019년에는 5편으로 매년 천만영화가 나오고 있었으나 올해는 그 기록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올해 최고 흥행영화는 <남산의 부장들>로 475만 명입니다. 이어서 2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440만 명, 3위 <반도> 380만 명, 4위 <히트맨> 240만 명, 5위 <테넷> 200만 명, 6위 <#살아있다> 190만 명, 7위<강철비2: 정상회담> 180만 명, 8위 <담보> 170만 명, 9위 <닥터 두리틀> 160만 명, 10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157만 명(개봉일 기준)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출도 쉽지 않고 볼만한 영화도 많지 않다 보니 관객이 줄어들 수밖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즌

올해는 시즌이라는 단어가 참 무색했습니다. 여름시즌(7, 8월)에는 평균 약 5000만 명 정도가 영화를 관람하는데 비해 올해는 30% 수준인 1450만 명에 그쳤습니다. 가장 관객이 많았던 달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1월로 1680만 명이었고 다음으로 8월 880만 명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어서 2월 740만 명, 그리고 10월 460만 명 순입니다. 4월은 역대 최저가 나오고 말았는데 고작 97만 명이 들었습니다. 이 수치는 2019년 일일평균관객인 62만 명을 조금 넘기는 수준입니다. 한 달 총 관객 수가 겨우 하루 관객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습니다.

성탄절 특수

일 년 중 가장 관객이 잘 드는 날 중 하나는 성탄절인 12월 25입니다. 이 하루 동안 약 200만 명의 관객이 드는데 올해는 <원더 우먼 1984>가 개봉되었음에도 역부족인 듯 14만 명에 그치고 맙니다. 일일관객수로 가장 많이 든 날은 1월 26일로 설 다음날 146만 명이 최고가 되었고, 코로나19 후로는 8월 8일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개봉 시 기록한 73만 명입니다. 가장 적게 든 날은 4월 7일(화)로 1만 5천 명이 들었습니다. 일일관객수 평균은 약 16만 명이고 코로나19 이후만 보면 약 12만 명입니다. 이 수치만 가지고도 1년 내내 극장이 썰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블

현 흥행판에 있어 ‘마블’만큼이나 관심이 높은 게 있을까요? 매년 새해가 되면 집중적으로 개봉 예정인 마블영화가 언론에서 다루어질 정도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올해 개봉된 마블영화는 단 한 편도 없습니다. 다만 <어벤져스> 등이 재개봉되기는 했습니다. 내년에는 적어도 올해 개봉하기로 했다가 못한 <블랙 위도우>부터 <샹치 앤 더 레전드 오브 더 텐 링스> <이터널스> 정도는 개봉되지 않을까 합니다.

독과점

독과점은 여름시장에서 주로 나타났던 것인데, 개봉 첫 주말(금∼일) 총 상영회수 3만 회 정도 차지하게 되면 시장을 독과점 했다고 해서 언론에서 마구 떠들어 댔지만, 올해 <반도> 4만 회, <강철비2: 정상회담> 2만 8천 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3만 2천 회를 차지하였지만 때가 때인지라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독과점보다는 시장을 살리는 것이 우선되었던 탓으로 보입니다.

점유율

이맘때쯤 되면 한 해 시장에서 한국영화가 점유율 50%를 넘겼는가가 중요한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영화는 2011년부터 매년 아슬아슬하게 점유율 50%대 초반에 머물렀으나 올해는 역대 최고인 69%를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썩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할리우드라는 경쟁자가 없는 시장에서 나온 기록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이런 것은 치열한 경쟁 후에 나와야 박수를 받게 되나 봅니다.

독식

매년 배급사를 기준으로 해서 어떤 배급사가 시장을 독식 했다는 둥 반응이 나왔으나 올해는 그럴 만한 배급사가 없네요. 국내에서 가장 큰 배급인 CJ 같은 경우 올해 개봉한 영화는 총 4편(<클로젯>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담보> <도굴>)이었고, 롯데는 5편(<히트맨> <프랑스여자> <#살아있다> <강철비2: 정상회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그리고 쇼박스는 2편(남산의 부장들> <국제수사>), NEW도 2편(<정직한 후보> <반도>)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직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아무도 독주하지 않았고 독식도 하지 않은 유일한 해가 되었습니다.

올해 같은 해는 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묵은해를 보내고자 합니다. 부디 새해는 희망의 메시지가 일찌감치 날아 와주길 바라며, 올 한해 많이 감사했습니다.


글 |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 《영화 배급과 흥행》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