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이지만 설경구만의 정약전은 뭐가 다른가.
특별한 것은 없다. 정약전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만 갖고 시작했다. 내가 그분에 대해 책으로 읽어봐야 어떻게 다 알겠나. 정약전도 그렇고 역도산도 그렇고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다. 다른 작품에서는 실존 인물이면 이름을 바꾸기도 했는데 <자산어보>에서는 꼭 정약전, 그리고 정약용이어야만 했던 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정약전을 연기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시나리오에 쓰인 대로만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나머지는 감독님이 알아서 담아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몇 년 전 영화제에서 이준익 감독을 만났을 때 무턱대고 시나리오 달라고 했더니 대뜸 <자산어보> 시나리오를 주더라 했다.
제목도 말씀 안 해주시고 그냥 사극 준비한다고만 하셨다. 내가 사극 한 번도 안 해봤으니 시나리오 달라고 했는데 그러고 온 게 바로 <자산어보>였다. 도대체 어보로 무슨 이야기를 하지, 영화가 왜 지루할 것 같지.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냥 쓱 읽혀 내려가 졌다. 강요하지 않는데도 이야기에 마음이 스며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잠시 고민해 봐야지 하는 와중에 감독님이 전화해 다그치셔서 대뜸 알겠다고, 하겠다고 했다. (웃음)
이준익 감독과는 <소원>(2013) 이후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이준익 감독은 어땠나.
감독님은 똑같았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현장은 좀 무겁지 않나. <소원> 할 때 감독님께 농담으로 배우가 이렇게 힘들게 감정 안 놓치고 열심히 하려 하는데 왜 현장에서 도움을 안주시냐 했더니, “야! 너 하나로 족해. 여기 다 너같이 감정 누르고 있어 봐. 그거 고문이야. 그럼 난 제대로 찍지도 못하고. 이런 건 내가 원하는 현장이 아니야.” 하시더라. (웃음) <자산어보>의 류승룡 배우도 많은 회차를 온 게 아니지만 촬영장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 역시 이준익 감독님 현장은 행복하다고. 이게 바로 이준익 감독님의 매력이다. 소년 같고, 여전히 청년 같다. 과자 먹는 모습도 똑같고. “오케이. 좋아.” 그래서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테스트 촬영이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