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라인>은 음문석의 첫 상업 영화 주연작이다. 곳곳에서 모인 실력자들이 힘을 합쳐 위험천만 도유 작전을 벌이는 이 케이퍼 무비에서 그는 프로 용접공 접새를 연기했다. 무언가를 이어 붙이는 게 그의 일처럼, 접새 역시 자신의 이득을 따라 이곳에 붙었다, 저곳에 붙었다 하며 극의 흐름을 뒤집는다. 단순히 케이퍼 무비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로 남을 수도 있었던 접새는 음문석을 만나 풍성한 스토리를 지닌 입체적인 캐릭터로 되살아났다.

음문석은 <파이프라인>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최고의 현장”이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다 갑자기 스마트폰을 찾던 그. 이어 이렇게 말한다. “제 메인 화면은 아직도 접새예요. 이후 작품을 많이 했는데, 당시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어서”. 촬영 당시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생생히 살아 숨 쉬는 <파이프라인>에 대한 음문석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노래, 춤, 연기, 그다음은 어떤 장르가 될까. 음문석은 동료 배우들과는 다른 의미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 코미디의 폭을 넓힐지 기대되는 배우, 또 어떤 장르에 도전해 삶의 폭을 넓힐지 기대되는 사람. 첫 영화 주연작 <파이프라인>으로 극장을 찾은 음문석을 만나 작품, 그리고 그의 열정 넘치는 삶의 비결에 대해 물어봤다.


영화 재미있게 봤나.

멤버들과 너무 재미있게 촬영했다. 매 신이 넘어갈 때마다 현장이 기억났다. 우리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촬영을 했었지. 촬영할 때 우리들의 기분, 서로의 눈빛, 느낌, 합, 이런 것들이 떠올라서 복잡한 감정으로 봤다.

개봉을 앞둔 소감은 어떤가.

일단 설렌다. 나만 즐거우면 안 되지 않나. (웃음) 보시는 분들도 즐거워야 하니까. 많이 좋아해 주실지 설렘 반, 긴장 반의 상태다. 영화에서 이렇게 많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웃음) 일단 부모님이 큰 화면으로 저를 보시는 것, 그 부분이 가장 기대가 된다.

시나리오를 읽고선 어느 부분에 매료됐나. <파이프라인> 출연을 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케이퍼 무비를 좋아하긴 하는데, 돈, 금고, 은행, 다이아몬드 이런 게 아니라 송유관에서 기름을 훔친다는 설정이 너무 매력적이더라. <쌍화점>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의 유하 감독님 영화라니 더 하고 싶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도 너무 좋고. 이거 일 저지를 수 있겠는데, 라는 확신이 들더라. 그래서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경상도 사투리로) “제가 접샙니더”. 이렇게 인사를 드렸지.

아까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이 고생담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더라.

땅굴에서 촬영 장비를 세팅하는 게 힘들었다. 넓은 장소에선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촬영할 수 있는데, 좁은 장소에서 촬영하려니 카메라의 포커스 등 맞춰야 할 것들이 많더라. 좁은 장소니 액션 신도 더 신중히 촬영했다.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웃음)

접새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유난히 고생의 강도가 높다. 오프닝 신에선 다리에 불이 붙고, 휠체어를 탄 채로 계단을 내려가는 아찔한 액션 신도 있지 않나.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나.

다 기억에 남는다. 그중에서 하나만 꼽으라면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내려가던 신. 과연 실제로 내려갈 수 있을까? 촬영을 준비하면서는 번지 점프를 앞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우우어어~하고. (일동 웃음) 스키 타러 갔는데 초보자가 상급자 코스 올라간 느낌이랄까. 가파른 계단이어도 안전장치 잘 하고, 와이어 설치도 다 해서 다치진 않는데. 처음 시도해보는 액션이라 더 인상 깊었다.

그 장면엔 당연히 스턴트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제가 하겠다고 했다. 내려가는 얼굴을 담아야 하니까. 풀샷이나 사이드 샷은 리얼함이 덜하지 않나. 그 장면엔 연기가 아닌 실제 제 표정이 담겼다. (웃음) 100% 리얼! 혼자 영화를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접새는 용접의 고수다. 캐릭터를 준비하며 디테일한 기술을 익혔을지도 궁금하더라.

촬영 전 용접을 배웠다. 자세나 장갑 끼는 법, 쇠를 잡고 그 안을 녹이는 법 등을 훈련했다. 실제 용접할 때는 영화 속에서처럼 불꽃이 튀지 않는다. 딱 딱 딱 딱, 이런 식으로 소리를 내며 순간적으로 녹여서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불이 나지 않더라.

접새는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이 부분 역시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텐데.

작품 들어가기 두 달 반 전부터는 24시간 경상도 사투리만 사용했다. 나는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지만, 접새는 자연스러워야 하니까. 사투리를 배운다는 생각보단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를 배우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충청도 사람이라, 지역만의 느낌이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거든.

특별히 주변의 누가 알려주거나 도와주진 않았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는 이번에 처음 연기해봤다. 인국이도 많이 도와줬고, 항호도 고향이 경상도다. 김준한 배우도 마산 출신이라 그 친구와도 훈련을 계속했다. 주로 사투리를 쓰는데 연기하는 친구들에게 배우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헤어에 대한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맡는 캐릭터마다 헤어 개성이 넘친다.

유하 감독님이 이야기한 접새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런 캐릭터다. 머리도 약간 뽀글뽀글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 주셔서 가발을 써봤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더라. 파마의 강도도 고민을 했는데 결국 중간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파이프라인>은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고, 판 뒤집기의 무게 중심을 잡는 건 접새다.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해갔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너무 힘든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접새는 제 본심을 숨기며 가면 놀이를 하는 수많은 이들 중 하나고,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중요한 건, 완벽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본 목적을 숨겨야 하는데 늘 10%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접새도 천성이 나쁜 친구는 아니다. 후천적인 상처로 인해 변한 캐릭터라고 설정했다. 살면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당한 거다.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를 속이고 뺏는 것이라 배웠고,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다 마 과장(유승목)과 함께하며 깊숙이 숨어있던 내면의 자아와 충돌이 생겼던 것 같다. 처음으로 접새를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나며, 본인이 생각했던 나쁜 세상이 전부는 아니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을 거다.

접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촬영 당시를 생각하니까. 접새는 마 과장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내면과 외면의 갈등을 완전히 탈출한 것 같다. 그러면서 성장한 게 아닐까.

이야기만 들었는데 <파이프라인> 속 접새의 스핀오프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캐릭터에 접근할 때 단순한 캐릭터일수록 더 힘들다. 코미디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장르에도 수천 가지, 수만 가지 비트 단위의 결이 있지 않나. 그중 어떤 결로 가야 할까 고민을 무척 많이 한다. 처음부터 캐릭터의 형태를 잘 빚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고민을 하다 보니, 전사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늘 하는 말이 있다. 지나친 메소드.(웃음) 그렇게 해야 현장에서 연기할 때 자유를 좀 얻더라. 그런데 아웃풋으로 보면 항상 자유를 느끼지 못했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뭐든지 너무 열심히 해서 본인에 대한, 그리고 결과에 대한 커트라인이 높은 스타일인 것 같다.

맞다. 나만의 커트라인이 높기도 하다. ‘아 됐어!’ 라고 느낀 적은 노래했을 때부터, 춤출 때, 연기를 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아쉽고, 뭔지 모르게 최선을 다 안한 것 같고.

완벽주의자인 것 같다.

주변에선 완벽주의자라고 하더라. 난 완벽하지 않은데. 어떤 일이든 요이땅, 시작하는 순간은 다 내려놓는다. 그런데 시작하기 전까진, 예민하게, 미친 듯이 치열하게 준비한다. 제가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세포 터지는 느낌? 영화나 드라마나,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이전까지 준비된 걸 바탕으로 현장의 상황에 맡긴다.

예민한 준비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따라올 법도 한데.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면?

“아 짜증나”,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가 아니라 “어? 뭐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보이지 답을 찾는 과정에서 오는? 그러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운동을 한다. 갑자기 편집을 하고 싶으면 편집을 하고, 글을 쓴다. 이런 식의 루틴이 있다. 극도의 상태로 기울기 전에 다시 회복력을 찾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랄까. 그간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정말 많은 걸 하지 않았나. 회복력을 되찾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이런 걸 병행하며 해소한다.

춤과 노래, 연기와 연출까지. 계속해서 자신의 분야를 하나씩 넓혀나가고, 그러면서도 지치지 않고 활약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뭘까 물어보려 했는데, 이게 바로 그 이유였다.

마침표를 싫어한다. 항상 진행형이다. 내가 온전히 나의 인생을 사는 건데,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선 내가 하고 싶은 것, 지금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지금은 연기를 너무 하고 싶지만, 난 앞으로 이것만 해야 한다는 주입을 시키고 싶진 않다. 내일 내가 일어나서 눈 뜨고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 그러다 보니 춤도, 노래도, 연기도 하게 됐다.

그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거뒀다.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것저것 얕게 건드린 게 아니라 한 번 했던 건 모두 10년 이상 했다는 것. 특출나게 하나를 잘하는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무에타이도 13년 동안 훈련해 체육관을 차릴 수 있을 정도의 운동을 했다. 춤도 오래 췄고, 결과적으론 음반도 여섯 장을 냈다. 연기를 시작하면서는 결국 배우가 되기 위해 이 모든 장르를 거쳤나,라는 생각도 했다. 연기는 종합예술이니까.

<파이프라인>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음문석 연출의 쿠키 영상도 배우님의 또 다른 재능이 발휘된 사례다. 어떻게 만들게 됐나.

촬영 중 한 시간 반 정도 잠깐 쉬는 시간이 있었다. 그날따라 쳐진 상태였는데, 서동원 배우와 배유람 배우가 왜 이렇게 쳐져 있냐며 묻더라. 서동원 형님이 뭐라도 하자, 이야기해서 그러면 뮤직비디오를 찍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유람이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묻고, 그 노래를 가지고 콘티를 짜서 배우들 한 명 한 명과 한 시간 반 동안 재미로 촬영한 결과물이다.

현장에서 콘티까지 짜며 한 시간 반 만에 촬영했다고?

핸드폰이라 가능했다. 다 찍고 나니 재미있었다. 그런데 인국이도 없고, 수혁이도 없고, 감독님도 없으니 아쉽더라. 처음의 기획 의도는 촬영장의 추억을 남기자는 것이었는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촬영도 아닌 날 수혁이를 만나러 촬영장에 갔다. “수혁아, 잠깐만 와봐”, 해서 “이것 좀 해볼래?” “뭔데요?” “그냥 하면 돼, 이렇게, 오케이 됐어 가” 이런 식으로. (웃음) 감독님과 인국이도 잠깐 시간 내서 촬영하고. 영상을 완성한 후 동료 배우들에게 선물을 전하듯 공유를 했다. 그런데 이게 감독님에게까지 넘어갔다. 감독님도 재미있다고 웃으시다가 크레딧에 영상을 넣어봐도 재미있겠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현장의 분위기가 생생히 담겨있으니까.

단편 영화로 칸 영화제까지 진출한 감독님이기도 하다. 연출 차기작으론 생각해둔 작품이 있나.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장편을 쓸 정도의 실력은 안 되고, 쉴 때 촬영하려 좋은 소재들로 단편을 쓰고 있는데. 황치열을 주인공으로 해서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 함께 작업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연기를 잘한다, 그 친구가. 페이크 다큐, 로드 무비 느낌의 음악 영화가 될 것 같다.

연출엔 언제부터 흥미를 지녔나.

편집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편집을 하다 보니 직접 촬영한 소스로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더라. 그래서 카메라를 잡게 되고, 그러다 보니 조명이 아쉬워서 공부하고. 그러다 내 글로 촬영해보고 싶네, 해서 시나리오도 쓰게 되고. 그러다 연출까지 오게 됐다. 아직 체계적으로 배운 건 단 하나도 없다.

그런 과정이 쌓이면서 하나씩 체계적으로 배워나가는 것 아니겠나.

정확한 프로는 아니지만, 프리프로덕션부터 포스트프로덕션까지 어떻게 영화가 만들어지는지 알게 됐고, 그 과정을 겪으며 많은 걸 느꼈다. 정말 많은 스탭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을 하는구나. 연출을 하면서 현장의 모두를 더 존중하게 되고, 배우로서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차기작은 영화 <범죄도시2> <6/45>다. 간단히 소개해 준다면?

일단 두 영화에서 모두 저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보실 수 있을 거다. <범죄도시2>에선 음문석에게 저런 면도 있네? 이런 색다름을 보여드릴 것 같고. <6/45>에선 음문석이 생각하는 또 다른 코미디의 결이 저런 거구나, 이번엔 다른 코미디인데? 질리지 않아, 재미있는데? 이렇게 느끼실 수 있을 거다.

서울 상경 당시 “서울역 앞 빨간 빌딩을 보며 저 위에 내 이름을 새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는 이미 이룬 것 같은데.

(손사래를 치며) 무슨 소리. 아직 멀었다.

배우로서, 혹은 인간 음문석으로서 현재 목표가 있나.

배우 음문석으로선 어떤 역할을 봤을 때 음문석이 떠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의 재미있고 유쾌한 캐릭터를 많이 좋아해 주시는데, 이 안에도 여러 결이 있지 않나. 이걸 다 보여드리지도 못할 것 같다. 이런 장르 캐릭터를 두고 봤을 때 독보적으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름이 음문석일 수 있게 배우로서 자리 잡고 싶다. 인간 음문석으로서는, 그냥 지금에 최선을 다해라.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과거에 대해 집착한다 한들 바뀌는 것도 없다. 부담 가지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금을 즐기는 게 현재의 목표다.


글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