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민과 브렌다의 첫 만남

메마른 사막 어딘가, 두 여자가 마주 본다. 한 명은 남편이 떠나갔고, 한 명은 남편을 떠나왔다. 서로를 본 두 사람은 슬그머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땀을 닦는다. 이곳 '바그다드 카페'의 주인 브렌다(CCH 파운더)와 투숙객 야스민(마리안느 세이지브레트)의 첫 만남, 우연이었지만 그렇게 운명처럼 서로를 바라보는 그 장면에서부터 <바그다드 카페>의 마법은 시작된다.


<바그다드 카페>

퍼시 애들론이 연출한 1987년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앞서 말한 주인 브렌다와 투숙객 야스민을 중심으로 '바그다드 카페'의 사람들을 그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브렌다는 독선적으로 보일 만큼 억척스럽고 직설적이다. 관광을 왔다가 예상치 못하게 이곳에 투숙하는 야스민은 착하지만 영어가 서투른 탓에 썩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 이 사람들이 점차 가까워지고 나중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거듭나는 것이 <바그다드 카페>의 핵심 줄거리다.

<바그다드 카페>를 이야기 측면에서만 접근하면 위처럼 간략한 설명으로 마칠 수 있다. 그 흔하디흔한 버디 무비, 혹은 드라마들처럼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그다드 카페>는 당시에도, 지금도 관객들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심플한 이야기와 인물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채웠길래 <바그다드 카페>는 이리도 사랑받는 작품이 됐을까. 4월 28일 재개봉했던, 그리고 현재 '왓챠'에서 독점 공개한 <바그다드 카페 리마스터링>을 세 가지 포인트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1. 브렌다와 야스민의 우정

야스민(마리안느 세이지브레트)

브렌다(CCH 파운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평생 친구가 되는 이야기. 이런 스토리의 영화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바그다드 카페>가 선택한 방법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것인데, 갈등을 고조시키는 일반적인 방식을 피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바그다드 카페>는 대립하는 두 사람이 하나의 갈등을 만나 그걸 극복하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거리를 둔다. 갈등보다 브렌다의 성격, 야스민의 성격을 끊임없이 보여주되 야스민의 선의가 브렌다의 영역을 침범하는 과정으로 관계를 만든다. 주인(브렌다)과 손님(야스민)이란 나름의 규범과 서열이 있는 관계에서 그것들이 뭉개지고 끝내 동등한 관계로 거듭나는 일련의 과정은 작위적인 갈등이 없어 점차 평화로운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바그다드 카페>의 탁월함은 두 사람이 명백히 다르다는 걸 언어적 요소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가게와 가정을 이끄는 브렌다는 끊임없이 말을 하는 반면 영어가 어색한 독일인 야스민은 최대한 필요한 말만 골라한다. 낡은 것들을 치워버리지 못하는 브렌다, 미련 없이 묵은 때를 벗겨내는 야스민. 커피를 연하게 먹는 바그다드 카페의 사람들, 아주 진한 커피를 먹는 야스민. 이런 대비들은 야스민에게 특별한 존재감을 부여하고, 그의 존재가 브렌다와 카페를 흔드는 원동력이 되는 데 설득력을 부여한다.


#2. 시대를 관통하는 인물 구성

<바그다드 카페>를 대표하는 수식어는 (지금까지도) '페미니즘 영화'이다. 영화의 중심이 두 여성의 우정에 있고, 브렌다와 야스민 모두 여성이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주체적인 순간들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하나 좀 더 멀리서 떨어져 보면 단순히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정치적 올바름 또한 완벽한 수준으로 접근한다. 카페의 주인은 흑인이고, 종업원은 인디언이며 몇 안 되는 손님도 (백인이긴 하나) 트럭운전사나 타투이스트 등 사회적 인식이 그렇게 좋은 인물들은 아니다. 이런 인물 구성을 특정 메시지를 피력하기 위해 대사나 작위적 갈등을 빚었다면, <바그다드 카페>가 이렇게 호평받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바그다드 카페'가 황량한 사막 갓길의 휴게소이기에 이런 인물 구성을 납득할 수 있게 만들었고, 또한 이들에게 특정한 프레임을 씌우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동정을 요구하지도, 감정적 동요를 구걸하지도 않고 그들을 그냥 그곳에 존재하게 만든다. 요즘은 PC라면 진저리나는 관객이라도 <바그다드 카페>의 세계에선 그것이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3. 마술이란 환상, 영화라는 환상

이 영화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소재는 '마술'일 것이다. 야스민이 마술 도구로 틈틈이 연습해 카페 사람들에게 마술을 선사하는 장면은 극의 전환점이자 동시에 관객들을 감화시키는 순간이다. 이 마술이야말로 <바그다드 카페>를 정확하게 상징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마술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 믿지 않는다. 마술사가 상황을 통제하고 트릭으로 만드는 일종의 환상임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별개로 훌륭한 마술을 보면 그 환상을 받아들이고 박수를 친다. <바그다드 카페>가 딱 그렇다. 이 영화는 스스로 현실이라고 위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오프닝부터 카메라의 기울어진 각도와 스피디한 편집으로 현실을 해체하고 영화적 환상임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낸다. 즉 <바그다드 카페>는 스스로 영화임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브렌다와 야스민, 다른 인물들이 서로 가까워지는 순간을 통해 현실의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우정의 환상을 선사하는 마술과도 같다(클라이막스의 공연 장면도 이 영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마법의 순간을 더욱 응축시켜 주는 건 유명한 '콜링 유'(Calling You)라는 음악이다. 제베타 스틸이 부른 이 곡은 뜨거운 사막의 끈적함과 기댈 곳을 찾는 이의 간절한 마음을 모두 담아내 <바그다그 카페>의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몽환적인 사운드와 제베타 스틸의 특색있는 음색 아래로 <바그다드 카페>의 브렌다, 야스민의 상황을 담아낸 가사 또한 시적이다. <바그다드 카페>에 흥미가 없는 사람도 '콜링 유'를 듣고 영화가 궁금해질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명곡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