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창궐한 지 1년도 훌쩍 넘었건만, 푹푹 찌는 여름날 마스크로 얼굴을 단단히 가리고 사는 일은 여전히 힘겹다. 비가 와도 시원하기는커녕 온몸이 징그럽게 끈끈해지기만 하는 요즘, 에어컨을 제외하고 마음이 가는 건 역시 뼛속까지 소름을 선사하는 공포물뿐이다. 특히 넷플릭스에서는 시즌마다 다양한 주제의 공포를 파헤쳐온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하우스 호러의 고전을 감각적으로 재탄생시킨 <힐 하우스의 유령> 등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를 끼고 살지만 ‘요새 볼 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숨은 ‘맛집’들을 잘 살펴보고 나만의 방구석 1열 공포 특집을 즐겨 보자.
스크림 (Scream)
미국 MTV(시즌 1~2)와 VH1(시즌 3)에서 방영된 <스크림>은 슬래셔 영화의 대표 주자 <스크림>을 드라마로 각색한 작품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레이크우드 마을에 가면을 쓴 살인마가 등장하면서 10대 남녀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불안에 떠는 모습은 극히 전형적인 구도다. 하지만 현재 시점의 범행이 20년 전 일어난 유사 사건과 이어지면서, 주인공 엠마와 그 친구·가족이 받는 극한의 압박감은 TV 시리즈에 걸맞게 좀 더 세밀하고 풍부하게 그려졌다. 본래 음악 방송으로 유명한 MTV답게 <스크림>의 O.S.T.도 극중의 긴장감과 잘 맞아떨어진다. 마지막 세 번째 시즌에서는 주인공과 대부분의 인물이 교체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국내 넷플릭스에서는 시즌 3만 유일하게 볼 수 없다.
나이트 플라이어 (Nightflyers)
<왕좌의 게임> 원작자 조지 R.R. 마틴은 SF 장르를 통해 작가로서 처음 이름을 알렸는데, <나이트 플라이어>는 마틴의 SF 소설 중에서도 코스믹 호러의 기초를 다진 작품으로 손꼽힌다. 1987년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으나 원작에 전혀 충실하지 못한 대본은 작품을 ‘망길’로 이끌었다. 이후 오랜 세월 끝에 지난 2018년, <나이트 플라이어>는 미국 SF·판타지 전문 케이블 채널 Syfy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다시 찾았다. SF 마니아들의 높은 기대치에도 비평가들의 호불호는 엇갈렸지만, 우주 속 밀실에서 정체불명의 힘에 휘둘리는 인간 군상의 묘사는 귀신이나 좀비에게도 흔치 않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시즌 1은 마지막화에서 전체 스토리의 절정에 이르자마자 끝나버렸다. 이후 Syfy가 시즌 2 제작이 취소하면서 이후의 새로운 국면을 아예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구울 (Ghoul)
앞서 소개한 두 작품과 달리 <구울>은 원작이 따로 없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가 제작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인도에 군부 독재 정권이 수립되었다는 가상의 설정 하에 신임 심문관 니다가 반정부 세력을 구금, 고문하는 강제 수용소로 부임한 후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을 다룬다. 본래 생명과 지능이 있다는 점에서 좀비와 엄연히 다른 존재임에도 미디어에서 자주 혼용되는 구울을 군부 독재라는 정치 문제에 접목시킨 설정이 상당히 참신하다. 처음부터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었기에 에피소드는 단 3편뿐이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수용소의 참혹한 비밀과 이에 맞서는 니다의 고난은 마지막 1분까지 심장을 쥐어짠다. 고립된 공간에서 군인들이 하나 둘 처참한 결말을 맞는 모습은 국내 공포 명작 <알포인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호러 버스에 탑승하라 (Bloodride)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호러 버스에 탑승하라>는 원제 그대로 짜릿한 공포가 연속되는 죽음의 주행이다. 총 6편의 에피소드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제각기 다른 앤솔로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묘한 심야 버스가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승객으로 태우고 달리면서 오프닝 시퀀스가 펼쳐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군데군데 유혈이 낭자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고어·슬래셔보다는 <블랙 미러>나 <트와일라잇 존: 환상특급>에 훨씬 가깝다. 게다가 모든 에피소드의 러닝 타임이 30분 내외이니, 긴 영상이 부담스러운 이들이라도 몰입하다 보면 순식간에 정주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리얼리티 Z (Reality Z)
2020년 공개된 <리얼리티 Z>는 2008년 방영된 영국 드라마 <데드 셋>의 브라질판이다. 우후죽순 등장하는 좀비물 중에서도 이 시리즈는 리얼리티 쇼 출연자들이 좀비 떼에 포위된 후, ‘생존’과 ‘게임’이 오락가락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두각을 드러낸다. 더욱 큰 매력은 5화까지는 원작과 동일하게 흘러가다가 6화부터 마지막 10화까지 독자적인 스토리를 선보인다는 점이다. 다만 좀비 장르의 특성상 정을 준 캐릭터가 금방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 시청 전에 마음을 굳게 먹길 바란다. 극한 상황에서 윤리와 도덕을 짓밟는 인간의 잔인한 면모를 내내 지켜보는 것도 심약한 이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될지 모른다.
에그테일 에디터 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