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은퇴를 번복한 2018년 <라스트 미션>에 이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과 연기를 병행한 신작 <크라이 마초>가 지난 9월 17일 북미 극장과 'HBO Max'에서 동시 개봉했다. 이스트우드와 더불어, 우리 시대 명장들의 신작을 정리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크라이 마초>

Cry Macho

<그랜 토리노>(2008)와 <라스트 미션>(2019), 그러니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이든 마초 캐릭터로서 영화 전반을 장악하는 작품들의 각본을 쓴 닉 솅크가 다시 시나리오 작가로 기용됐다. <크라이 마초>의 주인공 마이크 밀로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그 모습이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 속 ‘이름 없는 남자’나 <용서받지 못한 자>(1992)의 윌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아흔을 넘긴 이의 노쇠한 육체가 완연하다. 한때 로데오 스타였던 마이크는 전 고용주로부터 그의 멕시코인 아들을 텍사스로 데려오라는 임무를 수행한다. N. 리차드 내쉬의 원작 소설은 본래 영화 시나리오로 먼저 쓰였다가 작가가 나중에 소설로 다시 써서 출간한 것이다. 2011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퇴임 후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첫 작품으로 제작될 계획이었지만 무산된 지 10년 만에, 그토록 영화화를 열망했던 원작자가 세상을 떠난 지 21년 만에, 이스트우드의 39번째 연출작으로 완성됐다.


조엘 코엔

<맥베스의 비극>

The Tragedy of Macbeth

코엔 형제의 반쪽 조엘 코엔은 신작 <맥베스의 비극>에 동생 이던 없이 단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감독, 각본, 그리고 ‘로더릭 제인스’라는 가명을 내세웠던 편집까지 조엘 코엔 혼자다. 이던은 이 프로젝트에 흥미를 못 느꼈다고. 제목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재해석한 이번 영화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 이후 20년 만에 전체를 흑백으로 촬영했다. 코엔 영화에는 처음 출연하는 덴젤 워싱턴과 조엘 코엔의 영원한 파트너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각각 맥베스 왕과 레이디 맥베스를 연기했다. 코엔이 연출하는 <맥베스의 비극>은 오손 웰스, 로만 폴란스키, 구로사와 아키라 등의 맥베스와 어떻게 다를까. 1990년 <밀러스 크로싱>이 개막작으로 상영된 ‘뉴욕 영화제’에서 9월 24일 처음 공개된다.


토드 헤인즈

<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은 5년 동안 3만 장 밖에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산 이들은 모두 밴드를 시작했다”는 브라이언 이노의 말처럼,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후대 록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카펜터스 단편, 글램록 신을 조명한 벨벳 골드마인, 밥 딜런에 대한 실험적인 전기영화 <아임 낫 데어> 등 음악에 관해 만만치 않은 조예를 드러냈던 토드 헤인즈가 벨벳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희귀한 라이브 영상들은 물론 존 케일을 비롯한 현재 생존해 있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멤버들의 인터뷰가 담겼다. 10월 15일 ‘애플TV+’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

<리코리쉬 피자>

Licorice Pizza

<리코리쉬 피자> 촬영 현장

11월 26일 몇몇 극장에서 선보인 후 크리스마스 시즌에 정식 개봉될 예정인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 <리코리쉬 피자>는 스틸, 예고편, 시놉시스, 캐릭터 이름, 스텝 등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7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인기 있던 레코드샵 체인에서 따온 제목 '리코리쉬 피자'조차 오랫동안 '소기 바텀'이라는 가제로만 알려져 있다가 불과 며칠 전에야 공지됐다. 몇 가지 신빙성 있는 풍문을 이어보면, <부기 나이트>(1999) <매그놀리아>(2000) 등 초기작의 배경인 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아역배우와 성인배우 사이의 기로에 선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당시 할리우드 산업과 정치 상황을 그린다. 런던에서 진행된 조지 루카스의 <청춘 낙서>(1973) 35mm 필름 상영 시 최초로 <리코리스 피자> 예고편을 틀어줬다는 점이 꽤나 의미심장하다. <리코리쉬 피자>가 더욱 기다려지는 건 주인공 소년을, PTA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였던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아들이자 연기 경력이 전무한 신인 쿠퍼 호프먼이 연기하는 점이다. 그 밖에 PTA와 처음 작업하는 배우 브래들리 쿠퍼, PTA가 여러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준 밴드 하임의 멤버 알라나 하임, <언컷 젬스>(2019)의 감독 베니 사프디가 출연한다.


마틴 스코세이지

<킬러스 온 더 플라워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아이리시맨>(2019)으로 백전노장의 여전한 연출력을 증명한 마틴 스콜세이지의 신작. 전작이 대배우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가 한데 모였다면, <킬러스 온 더 플라워 문>은 스코세이지의 두 페르소나 로버트 드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만나 화제를 모았다. 1920년대 석유가 솟아나는 미국 중남부 도시 오세이지의 부유한 인디언들이 살해당하는 범죄와 이를 둘러싼 부패를 파헤친 논픽션을 바탕으로 <포레스트 검프>(1994),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 등의 에릭 로스가 시나리오를 썼다. FBI 요원 톰 화이트가 디카프리오를 위해 쓰여졌지만, 디카프리오는 드니로가 연기하는 악역의 조카를 연기하고, 제시 플레먼스가 그 역할을 맡았다.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라스트 왈츠>(1978)의 주인공 더 밴드(The Band)의 기타리스트 로비 로버트슨이 영화음악을 만든다.


조지 밀러

<쓰리 싸우전드 이어스 오브 롱잉>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

<40,000 이어스 오브 드리밍>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의 속편 <퓨리오사> 개봉이 2024년 5월 24일로 미뤄졌지만 조지 밀러는 틸다 스윈튼과 이드리스 엘바가 호흡을 맞춘 판타지/로맨스 <쓰리 싸우전드 이어스 오브 롱잉> 촬영을 마친 상태다. 이스탄불의 호텔에서 신령과 학자가 나누는 대화가 주가 될 거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에 부쳐진 가운데, 밀러는 이 작품이 "안티 <매드맥스>"라 밝힌 바 있다. 육중한 액션을 싹 거둔, 두 사람 간의 긴밀한 말의 향연이 되리라는 힌트 같다. <꼬마돼지 베이브>(1996)와 <매드맥스>의 세계관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감독이라는 걸 알기에, 조지 밀러의 변화에 우려보다 기대가 앞설 수밖에 없다. 제목 '쓰리 싸우전드 이어스 오브 롱잉'은 밀러가 1997년에 발표한 TV 다큐멘터리 <40,000 이어스 오브 드리밍>을 떠올리게 한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아폴로 10½: 스페이스 에이지 차일드후드>

Apollo 10½: A Space Age Childhood

<스캐너 다클리>

<보이후드>(2014)의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역시 ‘넷플릭스 감독’에 합류하게 됐다. 애니메이션, 실사 조합의 SF <아폴로 10½>이다. 실사로 촬영한 후 그 이미지를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옮겨내는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을 링클레이터가 처음 활용한 건 아니다. <웨이킹 라이프>(2001)와 <스캐너 다클리>(2006)에 이어 애니메이션을 끌어들인 <아폴로 10½>은 1969년 아폴로의 달 탐사 임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담이다. 잭 블랙, 재커리 레비, 글렌 파웰, 조시 위긴스 네 배우가 주연으로 참여했는데, 20대부터 50대까지 배우들의 연령대가 골고루 퍼져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미 작년 2월에 한 달간의 촬영을 마친 후, 오랜 편집 파트너 산드라 어데이어 등과 함께 후반작업 매진하고 있다.


데이빗 핀처

<킬러>

The Killer

그래픽 노블 <킬러>

데이빗 핀처는 <마인드헌터>(2017)와 <맹크>(2020)에 이어 넷플릭스와 새 영화를 함께 한다. 프랑스 작가 알렉시스 놀렁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으로, 2007년부터 핀처가 꾸준히 차기작으로 고려하던 프로젝트다. 핀처의 초기작 <세븐>(1995) 각본을 쓴 앤드류 케빈 워커가 킬러가 중심에 놓인 이야기의 시나리오를 담당한다. 주인공인 킬러 역에 브래드 피트가 물망에 올라 있었지만, 결국 핀처와는 처음 작업하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캐스팅 됐다. 촬영감독을 맡은 첫 영화 <맹크>로 오스카 촬영상을 수상한 에릭 메서슈미트가 다시 한번 핀처의 카메라를 관장한다. 올해 11월 파리에서 촬영을 시작한다.


데이미언 셔젤

<바빌론>

Babylon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프로모션 중 브래드 피트와 마고 로비

<라라랜드>(2016)의 대성공 이후 데이미언 셔젤이 연출한 닐 암스트롱의 전기영화 <퍼스트맨>(2018)은 여러모로 아쉬운 결과를 맞닥뜨려야 했다. 셔젤은 <퍼스트맨>보다 시간을 더 앞으로 돌려, 독일의 TV시리즈 <바빌론 베를린>(2017)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 <바빌론>을 촬영 중이다. 20년대 말 30년대 초 시대 할리우드에 초점을 맞춘 <바빌론>의 주연은 브래드 피트와 마고 로비. 두 배우는 60년대 말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에 (비록 그들의 캐릭터는 서로 만나지 않지만) 출연한 바 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의 이행기였던 시대를 그리는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그 변화를 극복하지 못했던 배우 존 길버트를, 마고 로비는 길버트와 달리 유성영화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클라라 보우를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를 연기한다. 다만 히로인에 내정됐던 엠마 스톤이 하차한 후 마고 로비가 캐스팅되면서 해당 캐릭터에 픽션의 강도를 높였다고. 내년 크리스마스 시즌 개봉 예정.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

Crimes of the Future

1970년 작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텀으로 신작을 부지런히 내놓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필모그래피는 <맵 투 더 스타>(2014) 이후 멈춰 있었다. 비고 모텐슨이 올해 초 그와 함께 작업할 것이라고 밝힌 후 크로넨버그의 신작에 대한 정보가 차근차근 업데이트되고 있다.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는 1970년 발표한 크로넨버그의 두 번째 영화의 셀프 리메이크작이다. 원작은 소리 없이 촬영한 후 피부과 의사인 주인공 에이드리언의 해설을 덧붙인 형식을 취한 작품이었다. 크로넨버그의 페르소나 비고 모텐슨과 더불어 크리스틴 스튜어트, 레아 세이두 등이 출연해 최근 그리스 아테네에서 촬영을 마쳤다. 모텐슨은 “크로넨버그가 사무엘 베케트와 윌리엄 버로즈와 협업한 듯한 이야기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이었다고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