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미스 슬로운>은 승률 100%인 로비스트 미스 슬로운이 총기규제 법안을 두고 반대 입장에 있는 로비회사로 이직하여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주된 줄거리입니다. 영화는 상원의회에서 열리고 있는 미스 슬로운에 대한 청문회 장면부터 시작하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으로 반전이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미스 슬로운과 관련된 사건의 법률적 쟁점을 우리 법을 기준으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 동종업체로 이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미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은 로비회사의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콜-크라비츠에 재직 중인 로비스트로 엄청난 승률을 자랑하는 능력이 뛰어난 직원입니다. 총기를 규제하는 내용의 히튼-해리스 법안(총기 구입시 신원조사를 필수화하는 내용)이 제안되자 콜-크라비츠 회사의 거물급 고객으로부터 이 법안을 막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고, 회사의 CEO인 듀폰은 미스 슬로운한테 이 업무를 진행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미스 슬로운은 지시받은 업무 내용이 총기규제에 찬성하는 자신의 신념에 배치되기 때문에 듀폰의 지시를 달가워하지 않고, 때마침 총기규제 법안에 찬성하는 작은 로비회사인 피터슨-와이엇의 CEO 로돌포 슈미트의 이직 제안을 받게 됩니다. 이에 미스 슬로운은 콜-크라비츠에서 자신이 이끌던 팀의 팀원들 몇 명을 데리고 동종업체인 피터슨-와이엇으로 이직을 하고 총기규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이직한 회사에서 새로운 팀을 만들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미스 슬로운이 퇴사하자마자 동종업체로 이직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우리나라 법과 판례의 태도를 기준으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미스 슬로운은 로비스트로 로비회사에서 다른 로비회사로 이직을 했기 때문에 동종업체로 이직을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자사 직원들의 동종업체로의 이직을 금지하기 위해 입사시 또는 퇴사시 약정서를 작성하게 하는데, 일반적으로 전직금지약정, 경업금지약정 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별도의 약정을 체결하지 않아도 근로계약서, 취업규칙 등에 ‘동종업계 이직금지’ 조항을 포함시켜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동종업계 이직을 금지하는 내용의 약정이 과연 효력이 있을까요. 대법원은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 체결된 경업금지 약정(전직금지 약정 등 포함)에 대해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보고 있으나, 그 내용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약정이 무효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제한의 기간과 직종 등 기준을 들어서 사안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결국 사안에 따라 하나씩 따져봐야 하는데, 특히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면서까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기술력이 중요한 반도체, R&D, 영업 등 정보가 중요한 업종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근로자가 퇴직 전에 높은 직급이고 근무연수가 많을수록 사용자의 중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취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약정의 유효성이 인정될 가능성도 높고, 경업제한 기간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즉, 약정 자체는 유효하다고 인정되더라도 만약 약정상 10년을 정했다면 그중에서 1년만 유효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사안에 따라 종종 2년까지 인정되기도 합니다. 또한 회사가 경업금지 약정의 대가로 보상조치를 취했는지 여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데, 이를테면 경업금지 의무를 부담하는 대신 임금 외에 별도의 인센티브(예를 들어 근무기간 동안 임금외 수당 지급, 퇴사 후 퇴직생활보조금지급 등)를 제공하였는지 여부도 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 고려되는 요소입니다.
영화에서 미스 슬로운은 이전 회사에서 팀을 이끌고 있는 팀장급으로 높은 직급에 있었고 로비회사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 고객들 및 로비 대상자들과의 인맥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동종업계인 다른 로비회사로 이직한다면 자신이 콜-크라비츠에서 쌓아온 정보력과 인맥을 활용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죠. 그러나 한편으론 로비라는 업무 특성상 업무를 하면서 쌓은 능력이 기술력에 좌우되기보다 개인 역량에 좌우되는 측면이 큰데 이런 경우에도 경업 제한을 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유사한 사안에서 하급심 판례가 판단한 내용을 참고해보면, 보험회사 지점장과 고객의 개인적 인적관계는 보험회사 입장에서 배타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영업이익이라고 볼 수 없고 이를 경업금지약정을 통해 보호할 가치있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거나 보호가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로 보아 경업금지약정을 무효로 판단한 사례가 있었고, 비슷한 결론으로 전문수탁검사기관 연구소의 직원이 퇴사 후 경쟁업체에 입사하여 영업활동을 한 사안에서 근로자가 영업활동과정에서 얻은 각 정보나 영업사원과 거래처 사이의 인적관계에 대해서도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하지 않거나 보호가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라고 보아 경업금지약정이 무효라고 본 사안이 있습니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따른다면, 영화에서 미스 슬로운이 영업활동(로비활동) 과정에서 얻은 각 정보나 영업사원(미스 슬로운)과 거래처(고객들, 로비 대상들) 사이의 인적관계는 경업금지약정을 통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미스 슬로운이 특정 법안(총기규제 법안)에 대해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동종의 경쟁업체로 이직한 것에 대해 콜-크라비츠는 설령 미스 슬로운과 사전에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문제 삼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2. 가석방 요건은 어떻게 될까요
영화 후반부에 가면 영화의 시작이었던 미스 슬로운에 대한 상원의회의 청문회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미스 슬로운이 반전을 폭로하면서 청문회는 종료됩니다. 그리고 미스 슬로운은 위증죄로 감옥에 구속되고, 미스 슬로운의 변호를 맡았던 회사 소속 변호사인 대니얼이 미스 슬로운을 면회가서 가석방 탄원서를 넣을 예정이라고 말하는데요. 우리 형법에 의하면 가석방은 무기는 20년, 유기(징역 또는 금고)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하고, 행상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할 것이 요건입니다. 그러나 실무상 대부분 형기의 80% 이상을 경과한 자에 대하여 가석방이 허가되고 있는 실정인데 최근에 형기를 채워야 하는 기간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형사법 제도에 의한다면 미스 슬로운은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야 법상 가석방 요건을 갖추게 됩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