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룡.

류승룡이 필요한 때다. 위드 코로나로 방역이 완화된 지금, 지난 2년여를 답답하고 우울하게 견딘 관객들에게 호쾌한 웃음을 줄 배우라는 점이 첫 번째 이유라면, 얼어붙은 극장가에 활력이 절실한 때, 대한민국 관객 수 Top 10 영화 중 무려 4편에 이름을 올린 대세 흥행 배우가 돌아왔다는 점도 또 하나의 이유다.

기대는 적중했다. 예전의 영광 뒤에 지질한 생활감을 입은 김현의 모습은 류승룡으로 인해 완벽하게 만들어진다. 미워하다가도 안타깝다가도 이내 위로하고 공감하게 되는 감정을 그의 연기를 통해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장르만 로맨스>는 사람들 사이에 얽힌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김현(류승룡)은 몇 년째 슬럼프에 빠져 신작을 내지 못하고 있고, 그의 전 부인 미애(오나라)는 출판사 대표이자 친구인 순모(김희원)와 비밀연애 중이다. 아들 성경(성유빈)은 부모의 이혼을 원망하며 삐뚤어지기만 한다. 저마다 떨쳐내야 할 이유가 있는 동시에 떨칠 수 없는 인연이 엮인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만가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그 모든 것이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류승룡 배우를 만나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자산어보>(2019) 이후 오랜만에 관객들과 만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계속 작품을 찍으며 지냈다. <장르만 로맨스> 찍고 나서 바로 <인생은 아름다워> <정가네 목장> <비광>을 찍었고, 지금은 디즈니+의 <무빙>을 촬영 중이다. <비광> 촬영이 코로나로 연기되면서 작년에는 조금 여유가 있긴 했었다. 그 시기에 그동안 못 했던,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했다. 나무를 만졌고, 차도 마시고, 가죽 공예도 했다. 또 길을 많이 걸으면서 내면을 채우는,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시간을 가지기고 했다.

<장르만 로맨스>는 코로나로 인한 방역이 완화되고 극장가를 이끌 활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개봉한다. 지금 시점에 적합한 코미디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지난 2년 동안 세상이 많이 경직되어 있었다. 답답하기도 했고, 우울감마저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이런 것들이 조금이라도 해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많이 웃으시면서 즐겨주시면 좋겠다. 우리 영화가 극장에서 만끽하는 영화적 경험의 회복을 위한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장르만 로맨스>는 <킹덤> 시즌2를 마치고 바로 다음 참여한 작품이다. 어떤 점에 끌려 합류하게 되었나.

시나리오가 좋았다. 읽으면서 바로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은 좋은 시나리오를 보게 되면 연기를 상상해보고 반응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미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은지 감독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조은지 감독은 연기자로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고, 생활에 딱 붙는 연기도 잘한다. 조은지 감독이라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 거란 기대도 있었다.

(왼쪽부터) 무진성, 류승룡 배우, 조은지 감독.

조은지 감독과는 <표적>(2014)에서 배우로 함께 연기하기도 했다. 연출자로 만난 조은지 감독은 어땠나.

경외감이 들었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배우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배에서 그냥 좋은 선원이다. 배가 가려는 방향과 목적에 맞게 잘 기능하기만 하면 되는데, 감독은 배의 선장 아닌가. 현장을 이끄는 힘도 있어야 하고. 배우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조율해야 하는데 조은지 감독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현장에서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섬세한 디렉션을 받을 수 있었다. 도무지 신인 감독이라고는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오히려 내가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아서 내 필모에 어떤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생활형 연기, 지질하면서도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연기가 처음이었는데 잘 해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좋은 영화 감독의 탄생을 예고한다고 감히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말맛이 살아있는 대사들이 귀에 달라붙더라. 평범한 지문도 류성룡 배우의 입을 거치면 엄청난 명대사로 거듭나는데 이번 작품에도 그런 기대를 할 만한 대사가 있을까.

아까 했던 말의 연장일 것 같은데, 조은지 감독이 배우 출신이기 때문에 당신이 다 말을 해보고 어색하지 않게 대사를 준다. 그래서 말맛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관객들은 웃지만 그 웃음 포인트가 비애를 불러오는 대사도 있다. 그게 공감을 또 일으키기도 하고. 나는 그런 페이소스가 있는 대사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 작품 안에도 "나 불편한 거 되게 좋아해"라고 하는 대사가 있다. 그 대사가 아주 좋았다. 그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눈여겨 봐주셨으면 좋겠다.

<장르만 로맨스>의 류승룡, 성유빈, 오나라.

오나라 배우, 성유빈 배우와의 티키타카가 아주 재미있었다. 배우들 간의 연기의 합이 폭발했던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진한 싸움 장면이 있다. 왜냐하면 갈등이 있으니까. 나는 아내랑 사이가 좋지만 (웃음) 다들 가끔 싸울 때도 있지 않나. 그럴 땐 꼭 다투는 포인트가 있더라. 그리고, 아들과의 사이에도 이해하려고 하는데 이해가 안 가는 어떤 것도 있다. 위로나 화해의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게 오히려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이 되는 것처럼 서툰 아빠와 아들 간의 세대 갈등이 아주 긴밀하게 착착 맞아떨어지는 장면 말이다. 아마 이 장면은 모든 세대가 다 공감할만한 장면이 아닐까.

늘 느끼는 것이지만 표정이 다양하고 순발력과 즉흥성이 빛나는 배우라 생각된다. 말이라는 주요한 전달 방법이 제약된 <난타> 같은 무언극의 경험도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 제일 먼저 선행되는 게 대사고, 두 번째가 표정이고, 세 번째가 동선이다. 지금 내가 갑자기 막 뛰어나가면 대사도 없고 얼굴 표정도 느낄 수 없었겠지만 임팩트는 굉장히 크게 다가오지 않나.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이 뒤로 갈수록 더 커진다. 대사보다는 표정, 표정보다는 동선. 이런 것들에 대해 몸으로 채화된 것이 있다. <난타>라는 넌버벌 퍼포먼스를 5년 동안 하면서, 또 세계 각국을 돌면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 내 몸 세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았나 싶다. 어렵고 힘든 시기였지만 그 젊은 시절에 대한 고마움이 있다.

복잡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현은 슬럼프에 빠져있고, 전 부인은 친구와 비밀연애 중이고, 아들은 부모의 이혼을 원망하며 삐뚤어진다. 서로 떨쳐내야 하는 이유가 있고, 떨칠 수 없는 인연이 엮여 있다. 성공한 듯 보이는 김현의 삶도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과 어쩔 수 없이 닮아 있기도 하다. 어떤 점에 공감하면서 연기했나.

김현의 직업이 부여되고, 관계들이 부여되었지만 나는 김현의 인생이 우리 모두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설혹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어떤 인생을 투영해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관계가 다 수월하지만은 않지 않나.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관객들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겠다.

"선생님 왜 글이 안되는지 아세요? 겁나서요. 갖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유진이 김현의 폐부를 찌르는 말이다. 전작의 성취를 넘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필연적인 것이다. 배우로서는 아마 흥행에 대한 압박이 비슷한 경우일 것 같다. 류승룡 배우는 이전 인터뷰에서 "인생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강박을 버리고 임한다" 했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엿보인다.

작품을 통해 내가 어떤 것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해진 것 같다. 세월과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지 않나. 배우로서 내가 갈등하고 힘들었던 것은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욕심, 그리고 그걸 부인하고 부정했을 때 오는 압박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턴가 주어진 환경에서 그때그때 행복하고, 내가 만들 수 있는 만큼의 행복을 만드는 것은 영화 현장에서도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팀워크도 좋아지고, 그게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관객들에게 전해지고, 그걸 또 좋아해 주시고 하며 선순환이 되더라.

<장르만 로맨스> 무진성, 류승룡.

무진성 배우가 류승룡 앞에서 긴장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메신저 프로필을 류승룡 배우 사진으로 저장한 적이 있다고 했다. 매일 봐야 덜 긴장하고 친숙해진다고. 무진성 배우는 거의 신인에 가깝다. 선배로서 연기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배려했을 것 같다. 그와의 호흡은 어땠나.

구박을 많이 했다. (일동 웃음) 왜냐하면 그래야 편해지니까. '그래그래' 하는 게 오히려 신인 취급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 거칠게 다뤘다. 지금도 그렇고. (웃음) 그래서 조금 맷집이 생겨야 사실 편하게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그런 거니까. 그래서 좋은 의도로 선의의 장난을 많이 쳤던 것 같다.

작품 끝나고 좀 더 친해진 것 같나.

함께한 배우들 중에서 가장 연락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같이 캠핑도 가자고 하고. (웃음)

<7번방의 선물>(2012) <극한직업>(2018)이 정통 코미디였다면 <최종병기 활>(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 등은 정극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표적>에서의 액션,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처럼 완전하게 창조된 것 같은 인물까지. 어떤 장르든 자유롭게 오가는 연기의 비법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한 후) 글쎄. 장르라는 것을 나는 희로애락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라는 사람에게 다 내재되어 있는 거다. 그 안에는 로맨스도 있었고, 누아르도 있었고, 액션도 있었다. 또 휴머니즘도 코미디도 있었겠고. 배우는 그저 그 감정을 끄집어내어 세공하는 사람일 뿐이다.

29살의 류승룡.

20대 사진이 남다르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진은 29살 때라고 하더라. 그 시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하다.

저 때의 나는 지금으로 치면 93년생이다. (일동 웃음) 자유로운 영혼, 집시? (웃음) <난타> 공연할 때인데 걸친 옷들은 다 샌프란시스코의 세컨 핸드, 벼룩시장에서 산 거다. 나름 패셔너블 하지 않나. (일동 웃음) 그때 많은 것을 마음에 담으려고 했다. 넓은 세계를 갈망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정말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경험을 한 시기다. 그때의 경험이 미래에 대한 선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난타>를 오래 하고 35세에 처음 영화에 진출했다. 안재욱, 정재영 등 동기들에 비해서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조급함 같은 것은 없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늦은 게 아니었는데 상대적으로 평가를 해보면 또 굉장히 늦은 것이기도 하다. 조급한 마음도 있긴 했다. 나를 최면하는 어떤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면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시기다. 진짜 눈을 가리고 전력질주하는 느낌이랄까. 자존감을 가지고 나를 절대평가하면 되는데 상대평가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작게 만들었던 것이 조급함의 원인이었다. 어쨌든 그런 아주 발열된 긴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연, 환경, 동물, 기후 등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또 실천하는 삶을 산다. 어떤 점이 부지런하게 몸을 일으켜 세우나.

여전히 실천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다음 세대의 환경과 자원을 가불해 쓰고 있는 것인데 그걸 다 고갈 시켜 버리면 너무 미안한 거잖나. 지금을 사는 우리가 분명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극한직업> 촬영 현장의 '차 전도사' 류승룡의 일화는 6:07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극한직업>으로 씨네플레이와 만난 자리에서 차 전도사의 면모를 드러냈다.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이번에도 좋은 차를 경험하게 해줬을 것 같다. 쌀쌀해지는 날씨에 관객들에게 권하고 싶은 차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일상사(日常事) 다반사(茶飯事)'라고 한자로 '차 다(茶)'자에 '밥 반(飯)'자. 즉, 일상이 차 마시고 밥 먹는 거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차를 많이 그리고 자주 마시는 민족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차문화가 단절되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형식이나 행위들이 많아지며 '다례' '다도' 같은 것들이 생기며 문턱이 높아진거다. 보리차, 둥글레차 이런 것 우리 많이 마시지 않나. 다른 차들도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좋은 차들이 많아 고르기 어렵지만 고뿔차, 잭살차라고 하는데 이 차를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전통 홍차다. 감기를 우리 고유의 말로 고뿔이라고 하지 않나. 옛날에 감기에 걸리면 많이 마셔 낫게 했다고 한다. 면역력도 좋게 만든다고 하니 겨울에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차다.

배우 류승룡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다.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가족을 위해서라면 참고 감내할 수 있는 괴력과 맷집이 생기더라. 고루한 대답일 수 있겠지만 가족이 없다면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하지 않을까.


글 ·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사진 · 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