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지. 오늘은 죽어야지.” 모인(강길우)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죽기를 다짐하고, 그것을 잊은 채 잠자리에 드는 남자다. 기억을 잃는 이유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다. 생의 흔적이 말라붙은 그의 집엔 소주병과 밧줄만 가득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화림(박가영)도 종일 술을 마신다. 슈퍼에 들러 술을 사고, 방에 앉아 명상하고, 가끔 이유 없이 눈물 한줄기 흘리는 게 일과다. 화림은 모인처럼 기억을 잃진 않으나 거짓말을 한다. 매번 이름과 직업을 새로 꾸며낸다. 어느 날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로 둘은 같이 술을 마신다. 모인은 종종 화림을 잊어버리지만, 가까운 사이라는 화림의 말을 그럭저럭 믿는다. 그러더니 둘은 죽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온 세상이 하얗다>는 구태여 인물의 내면을 파헤치려 들지 않는다.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시간을 쏟지도 않는다. 감독의 말처럼 “서로 거짓말을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관계”인 모인과 화림을 그저 느긋하게 지켜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