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리코리쉬 피자>로 돌아왔다. 처음 보는 얼굴로 가득한 영화이지만 알고 보면 할리우드 유명 영화인들의 가족이 총출동해 만든 작품이다. <리코리쉬 피자>에 대한 소소한 사실을 모았다.


── <리코리쉬 피자>는 알라나 하임과 쿠퍼 호프만의 데뷔작이다.

── 알라나 하임은 3인조 록 밴드 ‘하임’ 자매의 막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하임의 뮤직비디오 몇 편을 연출했고 이들의 코첼라 공연을 감독했다.

── 코첼라 공연을 준비하며 폴 토마스 앤더슨은 알라나 하임에게 “언젠가 널 꼭 영화에 출연시키고 말겠다”고 했다. 알라나 하임은 엑스트라 역 정도를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감독은 알라나 하임에게 대본을 보냈다. 주인공의 이름은 알라나였다. 본인의 이름을 써준 것에 감사함을 느낄 뿐이었던 알라나 하임은 대본을 감명 깊게 읽고 감독에게 누가 알라나 역을 맡을 것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누가 알라나를 연기하겠어. 당연히 너지.”

── 작중 알라나의 성은 케인이다. 알라나 하임의 친구이자 2012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배우 새미 케인 크래프트를 기리는 이름이다.

── 알라나 하임과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인연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라나 하임의 엄마 도나 하임은 20대에 LA로 이사해 초등학교 미술 선생으로 일했다. 7~8살 난 폴 토마스 앤더슨은 도나 하임의 애제자였다. 앤더슨은 이때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간직하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 운명적으로 밴드 하임과 처음 만났을 때 보여줬다.

── 영화 속 알라나의 가족은 실제 알라나 하임의 가족이다. 하임 자매를 포함해 모두 연기한 적이 없고, 감독에 따르면 아버지 모티 하임의 모든 대사가 애드리브였다고.

── 쿠퍼 호프만은 폴 토마스 앤더슨과 오래 협업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이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리노의 도박사>(1996), <부기 나이트>(1997), <매그놀리아>(1999), <펀치 드렁크 러브>(2002), <마스터>(2012)에 출연했다.

── 쿠퍼 호프만은 감독이 <리코리쉬 피자>를 제안하기 전까지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다.

── <리코리쉬 피자> 전 쿠퍼 호프만의 연기 경력이라고는, 폴 토마스 앤더슨과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재미삼아 아이폰으로 종종 영상을 찍은 것이 전부였다고. 쿠퍼 호프만은 주로 빌런이 됐고 감독의 아이들이 그를 무찌르는 영상이었다.

── 쿠퍼 호프만의 가족도 출연했다. 어머니 미미 오도넬도 조엘 왁스(베니 사프디)의 첫 등장 장면에서 그를 인터뷰하는 기자 역으로 영화에 얼굴을 비췄다. 개리(쿠퍼 호프만)가 공연 홍보차 뉴욕에 방문했던 장면에서, 그와 함께 무대에 선 배우 중 몇이 쿠퍼 호프만의 여자 형제다.

── 알라나 하임과 쿠퍼 호프만은 <리코리쉬 피자> 전에도 인연이 있다. 쿠퍼 호프만이 13살이었을 때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함께 폴 토마스 앤더슨의 집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때 하임 자매가 그를 돌봤다. 알라나 하임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쿠퍼 호프만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리코리쉬 피자> 현실판인 셈이다.

── 가파른 언덕을 후진으로 내려오는 장면에서 알라나 하임은 대역 없이 직접 트럭을 운전했다.

── 고등학생 개리는 면허가 없기에 운전은 로드 매니저 알라나의 몫이다. 촬영 당시 16살이었던 쿠퍼 호프만은 실제로 면허가 없었기에 알라나 하임이 차에 태우고 다녔다고.

── 영화의 배경은 1973년이다. 1970년인 폴 토마스 앤더슨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시대이지만 어린 배우들에게는 더 낯선 시대였다. 감독은 2003년생인 쿠퍼 호프만에게 ‘손가락을 구멍에 넣어서 다이얼로 돌리고 손가락을 빼!’ 하며 다이얼 전화 사용법을 설명하는 것이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 <리코리쉬 피자> 속 가족열전은 끝나지 않았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아이들이 영화 내내 등장한다. 개리와 친구들이 잭 홀든(숀 펜)이 있는 레스토랑에 입장할 때 바로 옆에 서 있던 아이는 감독의 장녀다. 아내인 배우 마야 루돌프도 개리의 오디션 장면에서 관계자를 연기했다. 이외에도 엑스트라의 대부분이 감독의 지인이거나 가족이다.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버지 조지 디카프리오가 출연했다. 개리에게 물침대를 소개한 사람이 그다. 조지 디카프리오는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 남부 캘리포니아 인디 아트 신에서 유명한 아티스트였다.

── 이외에도 잭 니콜슨의 아들, 스티븐 스필버그의 딸, 마이클 자키노의 아들이 출연했다.

── 브래들리 쿠퍼가, 전설적인 가수이자 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연인이었던 할리우드 프로듀서 존 피터스를 연기했다. 존 피터스는 1976년 전설적인 뮤지컬 영화 <스타 이즈 본>(1937)의 두 번째 리메이크작을 제작했고 비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출연했다. 2018년 브래들리 쿠퍼는 레이디 가가와 함께 <스타 이즈 본>을 다시 스크린에 회생시켰다. 브래들리 쿠퍼는 감독, 제작, 각본, 주연을 맡았고, 영화에 직접적인 관여를 한 건 아니지만 존 피터스도 일종의 원작자로서 제작자에 이름을 올렸다.

── 알라나 하임과 쿠퍼 호프만을 포함한 다른 배우들은 브래들리 쿠퍼가 <리코리쉬 피자>에 출연하는지 몰랐다. 존 피터스가 개리 일당에게 다가와 본인을 소개하는 첫 등장 장면.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을 때 코스튬을 차려 입은 브래들리 쿠퍼가 촬영장에 나타났고, 이 때 배우들은 그를 처음 봤다.

── 브래들리 쿠퍼는 존 피터스를 연기하기 위해 촬영 한 달 전부터 수염을 길렀다.

── 숀 펜이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에 출연한 건 이번에 처음이지만, 감독이 펜의 가족과 협업한 것은 다섯 번째다. 숀 펜의 형 마이클 펜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와 <부기나이트>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헀고, 어머니 에일린 라이언은 <매그놀리아>에 출연했다. 형수 에이미 만은 <매그놀리아>의 주제가 ‘세이브 미’(Save Me)를 불렀다.

── 숀 펜이 연기한 잭 홀든은 <선셋 대로>(1950), <사브리나>(1954) 등에 출연한 배우 윌리엄 홀든을 모델로 한다.

── 알라나는 잭 홀든이 출연하는 영화의 오디션을 본다. 오디션에서 알라나와 잭이 연기한 대사는, 윌리엄 홀든이 출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브리지>(1973) 속 대사를 그대로 빌려온 것이다.

── 잭 홀든은 ‘도곡리 다리’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한다. 잭 홀든과 알라나가 자주 언급하는 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윌리엄 홀든이 출연한 <원한의 도곡리 다리>(1954)에서 따온 말로, 재개 홀든이 알라나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도 이 영화의 대사다.

── <리코리쉬 피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버지인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감독에 헌정됐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영화 제작자에 헌사를 보내는 네 번째 영화다. <펀치 드렁크 러브>를 <블로우>(2001), <뷰티풀 걸>(1996) 등을 연출한 테드 데미에, <데어 윌 비 블러드>를 <고스포드 파크>(2002), <내쉬빌>(1975) 등을 연출한 로버트 알트만에, <팬텀 스레드>를 <양들의 침묵>(1991), <필라델피아>(1993) 등을 연출한 조나단 드미에 바쳤다.

── 조나단 드미는 어린 시절 폴 토마스 앤더슨의 우상이었고 커서 감독이 된 그의 동료였다. <팬텀 스레드>는 2017년 세상을 떠난 그에게 헌정됐었고 영화의 첫 장면에 그의 손자인 덱스터 드미가 등장한다. 덱스터 드미는 <리코리쉬 피자>에도 개리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학생으로 나왔다.

── 베니 사프디가 연기한 정치인 조엘 왁스의 첫 TV 선거광고는 당시 무명 감독이었던 조나단 드미가 찍었다. 조나단 드미는 배우이자 제작자인 개리 고츠만과 많은 작품에서 협업하면서 이후 유명해졌다.

── 개리는 개리 고츠만에게서 영감을 얻은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 연기를 시작했고 물침대 사업을 했다가 핀볼 사업을 했다. 실제로 영화 속 많은 에피소드가 감독이 그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에 기반을 뒀다.

── 감독이 <리코리쉬 피자> 플롯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생 폴 토마스 앤더슨은 10대 소년이 여성 점원에게 치근대는 걸 목격했다. 그는 어린 소년이 나이가 그보다 많은 여성에게 허세를 부리며 데이트 신청을 하고 그 여성이 응하면 어떨까 상상했다고.

── 일식집 사장 제리(존 마이클 히긴즈)와 그의 일본인 아내들과 관련한 인종차별 에피소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장모 키미코 루돌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감독은 제리의 두 번째 아내의 이름을 키미코라고 지었고 키미코 루돌프는 숀 펜이 등장하는 장면에 남편 리차드 루돌프와 함께 얼굴을 비췄다.

── 제목 ‘리코리쉬 피자’는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산페르난도 밸리에 위치한 레코드 체인점의 이름으로 LP판을 은유한다. ‘롱플레이’(Long Play)의 축약어인 LP는 리코리쉬 피자(Licorice Pizza)와 이니셜을 공유하기도 한다.

── 감독은 <청춘 낙서>(1973)와 <리치몬드 연애 소동>(1982)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고, 두 작품 모두 산페르난도 밸리를 배경으로 한다.

── <리코리쉬 피자>의 가제는 ‘소기 바텀’(Soggy Bottom)이었다. 물침대 브랜드 이름이다.

── 존 피터스가 주유소에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은 <리코리쉬 피자>에서 가장 많은 예산이 들어간 장면이다.

── 작중 언급된 것처럼 1939년 이후 줄곧 LA에서 핀볼은 불법 도박 취급을 받았다.

── 영화 속 석유 파동은 1973년 10월에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아랍 산유국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로 가격이 치솟았다.

── <데어 윌 비 블러드>부터 감독과 함께한 라디오헤드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음악을 맡았다. 그는 <리코리쉬 피자>와 같은해 개봉한 <파워 오브 도그>와 <스펜서>의 음악도 썼는데, 한 사람당 한편의 엔트리만 가능하게 한 아카데미 시상식 방침에 따라 <파워 오브 도그>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 데이빗 보위의 ‘라이프 온 마스’(Life on Mars)가 예고편을 포함해 영화의 몇몇 장면에 삽입됐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라이프 온 마스’ 커버곡이 담긴 앨범을 발매한 적이 있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