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2월 23일 개봉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제목부터 기묘하다. 사실 이 영화는 옌롄커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해당 소설은 군인과 지배계층 여성의 치정으로 중국 사회를 비판하면서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됐다. 사회에 따라, 시대에 따라 통념에서 벗어난 문학들은 국가 차원에서 제재를 받은 금서로 남곤 한다. 때때로 그 금서라는 말 때문에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하고. 그동안 금서 취급을 받다가 끝내 스크린으로도 진출한 소설과 영화를 소개한다.


살로 소돔의 120일

이 분야의 영원한 1등은 <살로 소돔의 120일>일 것이다. 원작 소설은 물론이고 영화화된 작품도 논란이었으며 거기에 영화에 관한 비화마저 논란의 연속이었기 때문. 원작 소설 <소돔의 120일>은 일반적으로 사드 후작으로 알려진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가 집필했다. 공작, 판사 등 4명의 권력가가 40여 명의 소년, 소녀들을 납치해 쾌락 행위를 즐긴다는 스토리는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1785년에 집필됐으나 프랑스 현지에서도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정식 출간됐으며 국내엔 거듭 금서로 취급되다가 2012년에 발간됐다. 단순한 성적 행위를 넘어 일반인이라면 혐오스럽게 여길 행위에서 쾌락을 느끼는 네 명의 권력가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에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으면서도 누구도 쉽게 읽거나 추천하지 않는 그런 책 가운데 하나.

이 소설은 1975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손에서 <살로 소돔의 120일>로 영화화됐다. 기본적인 모티브를 빌렸으나 시대와 인물 모두 각색을 거쳤다. 글로만 읽어도 충격적인 것을 영상화했으니 많은 나라에서 개봉을 포기했다. 또 실제 학대가 있었다느니, 실제로 배우에게 뭘 먹였다느니 제작 과정에 대한 악의적 루머가 퍼지기도. 파졸리니 감독이 이 영화 공개 후 누가 진범인지 알 수 없는 살해를 당하면서 여러 의미로 영화사에 남게 됐다. 현재 <살로 소돔의 120일>은 단순한 엽기 영화가 아니고 당시의 사회상을 폭력적인 상황에 은유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어느 시대든 예술과 통념은 대립하기 마련이다. 보통 정치사상, 폭력성, 선정성이 그런 대립을 낳곤 하는데, 선정성 부문에선 <채털리 부인의 사랑>(국내 주요 번역서의 제목은 <채털리 부인의 연인>)처럼 역경이 많은 작품도 없다. 1928년 D.H. 로렌스가 집필한 이 소설은 남편이 성불구가 되자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사냥터지기와 사랑에 빠진 남작 부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인간의 생존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성욕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당시 통념상 그런 욕구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부터가 크게 논란을 빚었다. D.H. 로렌스는 여러 차례 출간을 거절당하자 사비를 들여 출판했다. 작가 사후에 미국, 영국, 일본 등 각국에서 외설물 출간으로 법정싸움이 이어지기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육체적 관계를 통해 사랑을 물질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영화화에는 더없이 적합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화된 작품이 10편이 넘는다. 욕망의 표현이 금지된 시대의 격정적 사랑이란 소재라서 미국, 프랑스 외에도 인도, 체코 등에서도 영화화했을 정도. 한국에 수입된 영화 가운데 ‘채털리’가 아닌 ‘차타레’를 제목에 사용한 경우도 있다. <엠마누엘> 시리즈의 실비아 크리스텔이 출연한 1981년 영화 <차타레 부인의 사랑>이 가장 유명하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준비 중이다. 엠마 코린과 잭 오코넬을 주인공으로 신작 촬영을 마쳤다.


아메리칸 사이코

소설은 은유적이고 이중적인 장치를 사용하기 적합하다. 영화처럼 사건을 시각적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선택한 캐릭터의 시점으로 사건을 서술하기 때문이다. 브렛 이스턴 앨리스의 <아메리칸 사이코> 또한 이런 시점의 미학을 절묘하게 이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화이트칼라 여피족 패트릭 베이트먼이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는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한 인간이 품은 열등감과 오만함, 뒤틀린 시선을 표현해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살인의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한 부분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출간 금지를 받았다. 한국에서도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가 재심을 통해 19세 이용 불가로 출간됐다.

2000년에 나온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는 크리스찬 베일에게 ‘아역 배우 출신’이 아닌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전환점이된 작품이다. 그는 몸을 탄탄하게 만들어 우아하고 고상한 패트릭 베이트먼의 겉모습을 챙긴 후 연기를 통해 그의 내면이 얼마나 비틀렸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줬다. 정갈하고 현대적인 풍경 속에서 베이트먼의 행동과 내레이션은 블랙 코미디로서 충실했고,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의 충격을 배가시켰다.


네이키드 런치

윌리엄 S. 버로스가 1959년에 출간한 소설 <네이키드 런치>는 마약중독자의 시점에서 수위 높은 폭력과 선정성, 그리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전개 등을 내세운 작품이다. 이런 이유로 <네이키드 런치>는 1959년 발간 이후 가장 뜨거운 감자로 평가받고 있다. 마약과 그에 따른 정신 착란을 자세히 묘사하고, 아동 학대나 소아성애적 행동을 언급하는 등 일반적인 문학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는 필체로 1962년까진 검열판만 출간됐다. 보스턴에선 1966년까지도 출간이 금지됐다가 메사추세츠 대법원 판결로 허용됐다. 윌리엄 S. 버로스가 실제 마약 중독에 빠졌다가 헤어나온 경험을 토대로 집필했다고 하니, 소설의 의도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도.

이 문제적 작품은 1991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손에서 영화화됐다. 각색까지 맡은 크로넨버그는 환각 요소가 있는 살충제에 중독된 구제원 윌리엄(피터 웰러)을 중심으로 원작 소설의 몽환적인 부분을 (그나마) 하나의 스토리로 엮었다. 크로넨버그의 작품이 늘 그렇듯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과 기괴하게 변이한 생명체를 활용해 등장인물의 피폐해지는 심리 상태를 탁월하게 시각화했다.


분노의 포도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기에 금지된 소설도 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톰 조드라는 인물의 고군분투를 통해 미국 대공황 시절 비참한 노동 계층의 현실을 그렸다. 1939년 발간된 소설은 대중들에게 대대적인 지지를 얻었는데, 이를 위험하게 여긴 오클라호마와 캘리포니아 주 정부와 사업가들은 책을 금지하거나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명작으로 인정받고 문학 수업에 사용되던 1980년대, 90년대에도 작중 포함된 욕설과 신성모독적 문장들이 문제시되기도 했다.

<분노의 포도>는 1940년에 딱 한 번 영화화됐다. 이런 고전을 현재 누구도 손대지 않는 건 영화 <분노의 포도>가 너무나도 걸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존 포드가 연출을 맡아 (서부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톰 조드의 여정을 극적 과장 없이 담백하게 조망하면서 노동자들의 비애와 그럼에도 이들이 연대하는 순간을 또렷하게 스크린 위에 풀어놓는다. 한 시대를 풍미한 헨리 폰다의 열연도 돋보인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