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팬데믹 내내 목말랐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팬들에게 디즈니 플러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꽤나 희소식이었다. 한국 서비스를 시작함과 동시에 공개되었던 <완다비전>과 <팔콘 앤 윈터 솔져>에 이어 <로키>와 <호크아이>, 최근 3화까지 공개된 <문나이트>까지 새로운 히어로들은 물론이고 영화에서 미처 못한 이야기까지 풀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페이즈 3이 마무리된 이후, 팬데믹 사태로 페이즈 4를 예정했던 만큼 화려하게 시작하지 못했던 MCU가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활로를 찾고 있다는 점은 나름 재미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스크린의 압축된 영상에서 보다 장기적이고 세세한 TV 시리즈로 형태를 바꾸면서, 관객의 반응은 다소 엇갈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쯤에서,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MCU 시리즈들의 평가를 돌아보고자 한다.
*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1) 완다비전(WandaVision)
당초에는 두 번째 오리지널 드라마가 될 예정이었으나 <팔콘 앤 윈터 솔져>의 촬영 지연으로 선공개되며 페이즈 4의 첫 번째 오리지널 드라마가 되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비전이 대의를 위해 자기희생을 하게 되면서, 완다 막시모프는 연인을 잃고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블립', 즉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인해 먼지조각이 되었던 사람들이 돌아올 때에도 소울 스톤을 모체로 하는 비전은 돌아올 수 없었다. 결국 이별의 아픔을 견디지 못한 완다는 새로운 세계 그 자체를 만들어 내게 되는데, 그 세계가 바로 완다비전의 주요 무대였다.
MCU를 통해 장기간 축적해 온 슈퍼히어로 서사와 관객이 있는(웃음소리가 들리는) 시트콤의 조합, 연대별로 달라지는 다양한 배경과 의상까지 다채로운 영상미를 보여줌과 동시에 원작 코믹스의 코스튬도 등장하기도 했다. 여기에 '멀티버스'라는 페이즈 4의 키워드와 걸맞게 <엑스맨> 유니버스의 퀵실버인 피터 막시모프(에반 피터스)까지 출연해 많은 팬들에겐 선물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캡틴 마블>의 모니카 램보, <토르> 시리즈의 감초 조연 달시 루이스,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마술에 관심을 보였던(...) 요원 지미 우까지 등장한다.
IMDb 기준 관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8점으로 좋은 편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로키>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코로나 이슈로 인해 CG 작업 인력이 부족해져 후반 마무리 작업에 문제가 생겨 당초 예정했던 분량보다 적어졌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 공개된 이래 높은 인기를 보이며 마블 스튜디오 사상 최초로 에미상 시상식 후보에 올랐다.
물론 MCU에 애정을 갖고 지켜봐 온 기존 팬들 입장에서는 '스칼렛 위치' 완다의 내면 서사가 비로소 완성되는 이야기이기도 했으며 다소 러닝타임이 짧을 수밖에 없는 영화에서 다 보여주지 못했던 깊은 서사에 대해 파고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완다 막시모프라는 캐릭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허나 공통적으로 나오는 의견은 기존 MCU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후반부 전개가 너무 빠르다는 평도 있기는 했다. 아마도 코로나 이슈로 인해 잘려나간 장면 때문이기도 할 텐데, 이 부분이 편집되지 않은 소위 완전판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2) 로키(Loki)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캐릭터 '로키'의 귀환을 확정한 이 시리즈는,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부터 이 신규 OTT 플랫폼의 대표작이었다. 로키는 빌런으로 등장했지만 각설이도 아닌데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 돌아와서 상상하지 못했던 짓을 저지르고, 그러면서도 왠지 의리는 있는, 어쩐지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이상한 캐릭터. 거기에 배우 톰 히들스턴의 팬서비스까지 좋은 바람에 인기는 급상승했고, 토르와 함께 아스가르드 양대 산맥을 형성하면서 MCU의 대표 인기 캐릭터로 부상했던 바로 그 로키의 이야기였으니 <로키>를 향한 기대감은 높을 수밖에.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시작되자마자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부활 가능성이 제로에 점쳐졌으나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 등장을 확정지으면서, 거기에 죽지 않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게 되면서 로키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는 토대를 세웠고 그 시작이 바로 이 드라마 <로키>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키보다 더 과거의 인물이기 때문에 아직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는 하지만, 이 로키는 새로운 방식과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다시금 재정립했다.
로키의 의의는 페이즈 4의 키워드 '멀티버스' 개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MCU에 도입했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멀티버스를 수호하는 조직이 등장하는 한편 다양한 멀티버스 속의 로키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 어쩐지 어색한(물론 원작 팬들에게는 아니지만) 개념을 대중에게 이해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멀티버스를 통해 부활한 캐릭터이니만큼 나름의 구도도 확실했다.
IMDb 기준 관객 평점은 8.3점으로 다섯 개의 작품 중 현재까지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아무래도 로키의 귀환이 불러온 효과이기도 할 것이고, 결말에서 호불호가 다소 갈리기는 했으나 다음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기도 할 터다.
3) 호크아이(Hawkeye)
어벤져스의 원년멤버이자, 이제는 유일하게 솔로 무비가 없는 히어로가 된 은퇴한 요원 호크아이가 디즈니 플러스에서 단독 TV 시리즈로 돌아온 작품이 바로 <호크아이>다. 아이 셋의 아빠이자 남편으로서, 그리고 쉴드의 요원이자 어벤져스의 멤버로서 전천후 활약을 펼쳐 왔으나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인 점(물론... 그렇다고 일반인 수준은 아니다)때문인지 대중적인 인지도나 인기 면에서도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다. 물론 인기가 급상승하려던 차에 유부남인 게 밝혀진 영향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거기에 애가 셋이나 있었다...).
어쨌든 핑거 스냅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방황하던 시절의 과오부터, 이후의 히어로로서의 삶까지 책임져야 하는 호크아이의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둔 내용이었다. 더불어 어벤져스 멤버 중 호크아이를 누구보다도 존경하며 자라온 새로운 캐릭터 케이트 비숄이 호크아이의 이름을 이어받는 이야기로 세대교체까지 보여줬다.
킹핀(빈센트 도노프리오)이 등장하면서 뉴욕을 배경으로 한 마블 히어로 무비의 요소들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마블에서 뉴욕은 상당히 중요한 도시이기 때문)도 그렇고, 본격적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의 세계관 속에서 공유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주었으며 다음 세대의 히어로들로 나아가는 모습도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못다 한 호크아이의 스토리를 푸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IMDb 기준 관객 평점은 7.7점으로, 어벤져스의 원년멤버로서 10년 이상 MCU와 함께했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스토리가 지나치게 적었던 호크아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 점이 주요했을 것 같아 보인다. 여기에 이제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 없던 호크아이가 갖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개연성 있게 전개되어 마무리되었다는 점이 작용한 듯하다.
4) 팔콘 앤 윈터 솔져(Falcon and the Winter Soldier)
다섯 편 중 가장 IMDb 평점이 낮은 작품(7.3점)이 바로 <팔콘 앤 윈터 솔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품 전반에서 다루고 있는 이슈가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기에는 미국 국내 실정에 치우쳐져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아무래도 두 캐릭터를 동시에 다루다 보니 단일 캐릭터의 이야기에 비중을 높게 둘 수 없었을 거라는 점도 있겠다.
물론 제모 남작(다니엘 브륄)과 샤론 카터(에밀리 반캠프)의 재등장, 캡틴 아메리카 사후 캡틴의 유지를 이어받은 팔콘이 윈터 솔져와 어떻게 함께하는지 그리고 이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내면과 문제들을 다룬다는 점이 꽤 매력적으로 비추어졌다. 이전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명맥을 잇는 액션물로서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요 빌런 세력인 플래그 스매셔와 그 주축인 칼리의 캐릭터적 개연성이 부족했다는 점이 평점을 깎은 주원인이 아닐까. 슈퍼 솔져 혈청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더 사려 깊게 다루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더불어 디즈니가 근래 주목하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접근, 현실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 등이 구체적으로 들어간 작품이기도 하다. 중요한 순간에 팀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던 리더 캡틴 아메리카의 유지를 이었음을 증명하듯, 팔콘은 이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MCU 영화에 팬들이 기대하는 요소들 중 유머러스하면서도 심도 있는 고민, 현실적인 고찰, 그리고 잘 짜인 호쾌한 액션이 모두 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5) 문나이트 (Moon Knight)
문나이트는 꽤 독특한 내용이다. 일단 이제까지 등장한 적 없는 히어로의 최초 등장이고, 이집트 신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원작 코믹스의 내용을 십분 반영했다. 여기에 마냥 정의롭지도 마냥 옳은 것 같지도 않은 아군 그리고 그 비밀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은 적들과 싸워야 하는데, 다중인격장애 문제까지 갖고 있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다.
일반적인 슈퍼히어로와는 꽤 다른 모습이지만 그래서 순간순간 새로운 모습과 매력을 확인할 수 있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영상미도 볼거리 중 하나다. 물론 아직 3화까지밖에 공개되지 않았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IMDb 평점 7.7로 나쁘지 않은 경과를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 이집트가 배경으로 등장한 적은 없었으니 문나이트가 어떤 방식으로 기존의 세계관과 엮이게 될지도 꽤 흥미로운 기대 요소 중 하나.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