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레이스>는 캐나다의 세계적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96년 발표한 동명 소설 <그레이스, 원제: Alias Grace>를 원작으로 한다. 매년 노벨상 시즌이 되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애트우드.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책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작품을 드라마로 먼저 만나보자.

그녀는 악녀인가 시대의 피해자인가? <그레이스> (2017)

'나는 잔인한 여자 악마다. 나는 무고한 희생자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다. 나는 신경질적이다. 미천한 신분에 비해 교양이 있어 보인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다. 나는 교활하고 기만적이다. 머리가 모자라 바보와 다를 바 없다. 정말 궁금하다. 어떻게 동시에 이렇게 다른 것들이 될 수 있을까?'

넷프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레이스>

19세기 캐나다. 이제 겨우 16살의 하녀가 하인과 공모해 그들의 고용주, 그리고 그의 정부 겸 가정부인 여성을 살해하고 귀중품을 훔쳐 도주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모든 증거가 하녀를 살인범으로 지목하지만, 살인범이라기에 그녀는 너무 어리고 진술의 일관성도 떨어진다. 아름답고 순수한 얼굴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무성한 소문 속에서 그녀는 사악한 요부이자 순수하고 결백한 소녀로 존재한다. 누군가는 그녀의 처벌을, 또 다른 누군가는 그녀의 사면을 요구한다.

사이먼 고든 역의 에드워드 홀크로프트. 처음엔 크리스 에번스일 줄.

살인사건의 주인공은 그레이스(사라 가돈). 그와 함께 살인을 교사했던 하인 맥더못(케어 로건) 은 교수형에 처해졌고, 그녀가 무고하다 믿던 사람들은 사면 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회는 그레이스의 무죄 입증을 위해 정신의학자 사이먼 고든(에드워드 홀크로프트)을 초청하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1 유년기 상실과 비극의 경험

하...빨래 너무 빡세다...

아일랜드 기근을 피해 대서양을 횡단하면서 그레이스의 어머니는 목숨을 잃는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아버지의 폭력과 사회적인 성적, 육체적 착취에 노출되게 되고, 자유와 탈피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품게 된다.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동생 셋을 돌보는 힘겨운 삶을 이어가다 돈을 벌어오라는 아버지의 학대에 토론토의 어느 부잣집 하녀로 들어간다.

#2 불법 낙태 시술로 절친 메리 화이트를 잃다

메리와 함께 한 시간은 그레이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였다.

그곳에서 평생의 절친이자 멘토인 메리 휘트먼(리베카 리디아드)을 만난다. 민주적 자유와 평등을 그레이스에게 가르쳐 주었던 메리와 함께 한 시간은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였다. 첫 생리 때 생리용품을 준비해 주던 메리, 사과 껍질을 던져 미래 남편 이름을 점쳐주던 명랑했던 메리가 어느 순간 변한다. 주인의 아들의 농간에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메리는 낙태를 결정했고 수술 후 부작용으로 하루 만에 숨을 거둔다. 메리의 죽음으로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 메리의 존재는 이후 그레이스가 주장하는 또 다른 인격 중 하나로 발현되어 끊임없이 그녀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를 통해 그레이스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소중한 이들을 잃는 과정 속에서 상실된 자유, 탈피, 평등의 가치에 대한 그녀만의 아픔과 슬픔을 드러낸다.

#3 계층 사다리의 최하단 '하녀'라는 정체성

낸시와 키니어는 맥더못과 그레이스에 의해 살해당한다.

친구를 잃고 외로워하던 그레이스 앞에 낸시(안나 파퀸)가 나타난다. 낸시는 후한 임금을 약속하며 자신과 일할 것을 제안한다. 곧 그레이스는 낸시가 일하는 키니어 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당시 여성 아일랜드 이민자 여성의 절반 이상은 하인이나 가정부였다. 조금 나은 곳이라고는 해도 노동계급 이민자로서 불안정하고 착취당하는 삶은 그대로이다. 사회적 관계망의 부재와 고립은 그녀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이후 살인 사건에 휘말리며 공범인 맥더못은 그레이스를 살인을 교사한 악녀로 몬다.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변론하지 못한 단순 종범으로 판결이 났고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그 뒤 정신병원과 감옥을 전전하며 약 30년 만에 세상으로 나오는 날, 누군가 그녀를 밖에서 기다린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극은 미스터리 추리물이 아니다. 그레이스가 살인자인지, 아니면 무고한 피해자인지, 정신병을 핑계로 무죄를 주장하는 교활한 여자인지 것도 아니면 혼령에 빙의된 다중인격자인지 밝히는 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레이스의 독백을 통해 분노, 슬픔, 그리고 상실의 경험을 따라가다 보면 1800년대 초 캐나다 아일랜드 노동 계급으로 산 여성(들)을 만나게 된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한 여성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가르는 것을 거부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삶을 탐구한다.

‘퀼트’는 그레이스의 내러티브를 추동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퀼트 패턴은 원작소설에서 챕터 제목으로도 사용된다.

많은 여성들이 창녀 혹은 마녀로 몰려 가부장과 계급에 의해 희생되었다. 여성의 정당한 분노는 히스테리로 치부되었고, 남성은 그들이 설정한 '여성의 영역'안에 여성을 가두며 자아실현을 막았다. 급격한 사회변동과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여성들은 마녀사냥 당했다. 폭력적인 남편을 피해 정신병원에 스스로를 가두는 여성을 보며 소설 속 그레이스는 질문한다. '이곳에 있어야 될 사람은 누구인가?'

하지만 끊임없이 갈등하고 투쟁하는 삶 속에서도 인간은 행복해지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고 살길을 모색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일관되게 글로 써 온 마거릿 애트우드. 그녀는 그레이스를 통해 어떤 희망을 말하는가? 드라마와 소설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여성 삶의 구체적 기록 없으면 폭력은 다시 반복될 것

<그레이스>에 깜짝 출연한 마거릿 애트우드

애트우드는 여성의 삶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으면 이야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며, 여성을 향한 폭력의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라 말한다. <시녀이야기>에서 ‘길리어드’가 무너지고 당시 자료들이 폐기되면서 그 시기를 살았던 여성들의 삶 또한 공중분해되는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다. 이것이 애트우드가 끊임없이 디스토피아 소설을 발표하는 이유다.

자신에게 문학은 '사회적 활동'이라고 말하며 팔순이 넘어서도 소설을 쓰는 애트우드. 독자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소설 속 메시지를 삶을 통해 증명하는 그의 '사변적 실재론자'의 면모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페미니즘의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사실에 기반한 정교한 상황 묘사와 표현을 통해 우리의 실존을 흔들고 내면을 파고들어 이내 영혼을 적신다. 그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조심스레 점쳐보는 이유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