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관계’란 참으로 희한하다. 가족이 대개 그렇지만, 구성원 간에 형성되는 여러 조합 중에서 모녀는 특히 더 복잡한 감정으로 뒤엉킨 사이다. 엄마와 딸은 서로 미워하면서 사랑하고, 상대를 불편해하면서도 안락하게 여긴다. 서로에게서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보며, 상대의 행복과 불행에 무모하게 자기를 내맡기기도 한다.
왜인지 질문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레이디 버드>(그레타 거윅, 2018), <웰컴 투 X-월드>(한태의, 2019),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김세인, 2021) 등 모녀 관계를 다룬 영화를 줄줄이 떠올려보자면, 그와 같은 특성은 제법 보편적인 듯하다. 이건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이자 숙명인지도 모른다. 카메라를 든 딸이 엄마에게 말 거는 다큐멘터리, 여러 장치와 함께 이 까다로운 관계를 녹여낸 픽션 등 이제껏 다양한 영화가 이에 관한 나름의 탐구와 통찰을 펼쳐 보여왔다. <윤시내가 사라졌다> 역시 이처럼 복잡 미묘한 관계에 관한 영화다. 이미테이션 가수, 관심에 목마른 유튜버 등 각종 설정이 먼저 눈을 사로잡지만, 그 바탕에는 서로에게 전혀 살갑지 않은 어느 모녀가 있다.
순이(오민애)는 전설의 디바 윤시내의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다. 누군가의 말처럼 ‘전국구’인 그녀는 여전히 ‘윤시내 선생님’에 대한 동경과 애정을 한 아름 안고 살아가는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그녀의 딸 장하다(이주영)는 유튜브 채널 ‘짱하TV’의 운영자. 과거에 커플 유튜브로 굉장한 인기를 얻었으나, 지금은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며 전 남자친구를 포함한 온갖 소재를 건드리는 ‘독한’ 유튜버다. 이렇게 보면 각자의 고충을 토로하며 밤에 맥주 한잔할 법한 사이 같지만, 둘은 서로 말도 잘 안 거는 데면데면한 모녀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길을 떠난다. 낡은 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가 어딘지도 제대로 모르는 채로.
발단은 말 그대로 윤시내가 사라진 일이다. 고별 콘서트의 막이 오르기 직전, 그녀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 오프닝 무대에 오르기로 돼 있던 연시내 순이는 낙담한다. ‘시내 언니’에게 주려고 만든 담금주를 바라보던 순이는 문득 윤시내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짱하가 여기 합류한 건 순전히 조회수 때문이다. 라이브 방송에 우연히 무대 분장을 한 엄마가 등장한 이후 계속되는 구독자들의 폭발적 관심. 어쩌면 이걸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심을 숨기고 함께 떠나는 길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다.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큰 줄기를 제대로 붙들기 어려운 운명을 타고난 영화다. 기본적으로 로드 무비의 형식을 따르는 이 영화에서, 인물들이 가는 길의 모양이 넓은 부채꼴이기 때문이다. 순이와 짱하, 그리고 연시내의 친구를 자처하는 ‘운시내’ 준옥(노재원)까지, 함께 길 떠난 이들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헤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사라진 윤시내를 찾겠다는 여정은 한편으로 ‘가시내’, ‘윤신애’, ‘윤사내’ 등 다른 이미테이션 가수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으론 모녀를 흩뜨렸다가 다시 마주치게 하며 해묵은 감정을 드러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처럼 영화는 자칫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런 경우 관객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인물의 매력과 앙상블이 필요하다. 나긋나긋하다가도 결정적 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순이, 뚱한 표정과 공허한 얼굴로 일관하다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는 짱하, 모녀를 가만히 위로하는 묘한 매력의 준옥은 모두 더없이 적절한 배우를 만나 입체적 얼굴을 얻었다. 순이와 준옥이 무대 아래서 만나 친구가 되고, 짱하와 순이가 마침내 제대로 다투는 데 성공하는 장면은 특히 기억할만한 순간들이다.
순이와 짱하는 결국 속에 있는 이야기를 서로에게 쏟아낸다. 어린 딸이 아니라 윤시내에게 그토록 매달렸던 엄마를 보며 딸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윤시내를 따라 하는 엄마를 따라 하던 어린 딸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오랜 원망과 입 밖에 내기 어려웠던 불안은 외려 말해버리자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니게 된다. 이들은 그냥 문득 서로를 이해하기라도 한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옆자리에 앉는다. 김진화 감독은 이를 완전한 봉합으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두 사람의 일시적인 화해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은 평행선으로 살아갈 거예요. … 결국 모녀는 서로를 개별로 바라보고 인정해줄 수 있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감을 찾아가는 중인 거죠.” 그 거리감이야말로 <윤시내가 사라졌다>가 돌고 돌아 찾은 엄마와 딸 사이에 꼭 필요한 요소일 테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영화엔 ‘진짜와 가짜’, ‘만들어진 이미지’ 등의 쟁점이 부유한다. 이는 인물들의 대사로도 제법 비중 있게 다뤄지나, 제대로 종합되거나 축적되지 않아 끝내 피상적으로 남는다. 후반부, 윤시내의 신비로운 등장은 그 자체로 매혹적이지만, 그 아우라에 가려진 질문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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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