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액션 누아르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킬 빌>. 이를 시작으로 <차이나타운>, <올드 가드>, <악녀> 그리고 최근 후속편의 개봉으로 다시금 큰 화제를 끌고 있는 영화 <마녀>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범람하듯 쏟아진 이 작품들은 모두 여성을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 누아르다. 그렇다. ‘액션 누아르’ 장르는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런 비슷한 성격을 가진 영화나 드라마 중 OTT 정주행으로 볼 만한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여성 주인공의 언더 커버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마이 네임>은 어떨까. 작년 한 해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배우, 한소희의 주연작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이 네임>의 비하인드와 관전 포인트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한소희가 한소희 했다
배우 한소희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여다경 역을 맡아, 수려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차기작으로 그가 선택한 작품은 청춘 로맨스 드라마인 <알고 있지만>이었기에, 이후 <마이 네임> 출연 소식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름답고 도회적이며, 여려 보이는 배우 한소희의 여성 원톱 누아르라니.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곱지 않은 대중들의 반응에 관해 한소희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 잘할 수 있는 것, 경험해 봤던 것은 되도록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색다르고 다양한 장르에서 도전하고 싶었으며, 아마 내가 캐스팅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라고 반응했다.
제작진의 반응 역시 그의 예상과 같았다. 김진만 감독은 “한소희 배우는 김바다 작가님과 함께 넷플릭스 측에서 원픽으로 캐스팅했으면 하는 배우였다. 아름다운 여배우를 무자비한 액션에 데리고 들어온다는 것에 의문이 있었지만, 그 틀을 깬다면 그 아름다움이 더 빛을 발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라며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1초의 고민도 없이 하겠다고 말한 한소희는, 걱정이 무색할 만큼 수준급의 액션 연기와 더불어 섬세한 감정 연기까지 잘 소화해냈다. 이를 지켜본 배우 박희순은 “한소희가 한소희 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응급실 투혼까지! 온몸을 내던진 액션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성’ 누아르 액션에 대한 장르적 선입견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이 네임>은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배제하고 봤을 때에도 훌륭한 액션을 리얼하게 담아낸 웰메이드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한소희를 비롯해, 박희순과 이학주, 안보현 등 모든 주조연급의 배우들이 약 4개월 정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액션스쿨에 나가 끝없이 연습하고, 호흡을 맞췄다고 한다.
끊임없이 연습한 결과, 완벽한 합이 어우러진 멋진 액션 장면들이 드라마 곳곳에 배치되었다. 특히 한소희가 박희순 배우에게 복수하기 위해, 호텔 로비부터 시작하여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지나는 마지막 원테이크 액션 시퀀스는 손뼉을 칠 수밖에 없는 멋진 장면이다. 배우 이학주는 “힘들어서 연습을 그만하고 싶을 때도 계속해서 ‘한 번 더’를 외쳤다. 한소희는 체력이 너무 좋은 배우다.”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하기도 했다. 동료 배우의 증언처럼, 한소희는 말 그대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수많은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해냈고, 그 결과 촬영 중 응급실에 이송되기도 했다고 한다.
클리셰라도 새롭게 다가오는 연출
뛰어난 연출로 큰 호평을 받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 수업>을 만든 김진민 감독. 그의 차기작은 역시나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마이 네임> 이었다. 처음 각본을 읽고 그는, “여성 액션은 위험성이 있고, 그래서 현실감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바꿔 생각하면, 결국 이 같은 요인이 <마이 네임>을 제작하게 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조직원이 경찰에, 혹은 경찰이 조직원으로 잠입하여 벌어지는 일을 그린 ‘언더 커버’ 누아르는 다소 클리셰가 짙은 장르다. <무간도>, <신세계>, <불한당> 등 이미 비슷한 소재의 다양한 작품이 있다. 하지만 여성을 단독 주연으로 내세운 작품은 국내에서 <마이 네임>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액션 시리즈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지만 몇몇 옥의 티도 있다. 특히 작품 속 8화에 등장하는 한소희와 안보현의 베드신이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극중 배드신이 작품의 성격과 맞지 않게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길었던 점을 지적한다. 논란에 대해 김진민 감독은 “주인공 지우가 괴물이 아닌 감정을 느끼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장치 중 하나”라고 답했으나, 대답을 듣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런 단점과, 기존 언더 커버 누아르의 클리셰가 곳곳에 묻어 있음에도, <마이 네임>이 분명 여성 누아르 계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은 사실이다.
OST가 뇌리에 남아 <마이 네임> 음악 감독을 검색해 보니, <인간 수업>의 음악을 담당했던 황상준 감독이 맡았다. 스타일리시한 촬영 기법과 함께 몰입감을 확 높여주는 음악, 세련된 연출, 감각적인 영상미가 어우러졌다. 이들의 합이 <마이 네임>을 단순히 성별 반전만을 꾀한 누아르 물이 아닌, 섬세한 서사가 스며든 센세이션한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즌 2는 과연?
<마이 네임>은 공개 이후, 넷플릭스 TV 쇼 부문 월드랭킹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작품이니 만큼, 시즌 2의 가능성 여부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팬들에게 희소식이 있다면, <마이 네임>은 애초에 김진민 감독이 시즌 2를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배우 한소희 역시 시즌 2를 하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줘 기대감을 더한다. 물론 “시즌 2를 한다면, 저 죽을 것 같아요”라며 덧붙여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 반응은 과감하게 흐린 눈 하기로 하자.
최무진에게 복수를 끝낸 채 돌아서는 지우가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까? 아버지가 경찰이었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차기호와 함께 새로운 사건을 맡게 될까? 혹은, 지우가 동천파의 새로운 보스가 될 가능성은? 아직 시즌 2 제작 확정에 대한 소식은 들은 바 없지만, 조심스레 설레발을 먼저 쳐 본다.
전형성을 깬 소위 ‘쎈캐’ 여성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통쾌하고 화끈한 여성들이 펼치는 활약을 계속해서 보고 싶은데 혹시나 <마이 네임>을 놓치신 분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 작품을 추천 드린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