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퇴소를 한 달 앞둔 도윤(현우석) 앞에 아버지 승원(정웅인)이 나타난다. 15년 만에 만난 혈육이지만, 도윤은 썩 달갑지 않은 얼굴이다. 어느 학교에 가고 무슨 일을 하든 ‘보육원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현실. 도윤은 성인이 되자마자 호주로 떠날 작정이다. 밤마다 배달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나 돈은 한참 모자라고, 설상가상으로 사기까지 당한다. 결국 도윤은 속내를 감춘 채, 승원의 집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라는 존재만으로도 어색한데, 갑자기 동생까지 생긴다. 중학생 재민(박상훈)은 형을 살갑게 대하지만, 도윤은 받아줄 마음이 없다. 세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바다에 갔던 날, 부자는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터놓는다. 승원이 도윤과 재민의 관계를 걱정하자, 도윤은 “어쨌든 동생이고, 어쨌든 아버지”라고 덤덤히 답한다. 승원은 미소 짓는다. “그래도 다행이네. 네가 같이 있으니까 이제 좀 안심이 되고 그러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영화는 이어지는 장면에서 승원의 영정 사진을 비춘다. 아버지가 시한부 환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도윤은 충격에 휩싸인다. 무엇보다 도윤을 혼란스럽게 하는 감정은 그리움이다. 두 번 다시 승원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도윤은 눈물을 쏟으며 후회한다.

얼마간 영화는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형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차츰 정을 쌓는다. 도윤은 호주로 떠날 계획을 미루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려 애쓴다. 식사와 청소를 도맡는가 하면, 재민의 보호자 자격으로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기도 한다. 저마다 상실감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관계를 다져 나가는 두 아이.

그들이 맞닥뜨린 첫 번째 시련 역시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승원의 사망보험금을 욕심내는 친척 부부가 들이닥치면서 집에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도윤을 깊이 흔들어 놓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그 후다.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도윤은 뜻밖의 정보를 접한다. 어쩌면 자신이 진짜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번져 가자, 도윤은 진실을 밝히려 나선다.

이때부터 영화는 흐뭇한 가족 드라마의 경로를 이탈하여 난처한 상황을 연거푸 연출하기 시작한다. 승원은 혼자 남을 어린 아들이 안타까워서 형을 만들어주기로 했고, 재민은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며 거짓에 동조했다. 보육원 원장은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입양을 연결해줬다. 도윤은 그간 믿고 의지했던 이들에게 한꺼번에 배신감을 느낀다.

승원이 저지른 일은 기만이자 사기 행위에 해당한다. 영화 또한 도윤의 입을 통해 이를 지적하지만, 윤리적으로나 개연성 측면에서 충분히 고민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도윤을 입양하기로 한 승원의 결정은 모순적이다. 보육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승원은 비슷한 아픔과 어려움을 겪은 이로서 도윤에게 도움을 주고 싶으며, 설령 가짜여도 “진짜라고 믿으면 진짜”라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선의로 저지른 악행 혹은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선행에 지나지 않는다. 승원이 얼마나 절박하고 진지했는지와는 무관하게, 가장 자연스럽지 않은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윤의 입장에 진정 공감한다면, 승원은 숨김없이 상황을 설명했을 것이다. 단단한 공동체를 꾸리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편이 앞뒤에 맞아서다. 게다가 승원은 죽으면서 모든 책임에서 달아난다. 상처도, 회복도 남은 아이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다만, 영화는 갈등을 봉합하려 조바심 내기보다는 잘못을 직시하고 제대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같은 성을 쓰는 형제여서가 아니라, 정직하게 용서를 구했기에 도윤과 재민 사이에는 작은 희망이 싹튼다.

<아이를 위한 아이>는 <거인>(김태용, 2014) 연출팀과 <좋은 사람>(정욱, 2020) 조감독을 거쳐 데뷔한 이승환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선 인물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담아내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양육자 없는 아이들을 향한 편견부터 보호종료아동이 마주한 곤경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짚어내려는 노력 또한 엿보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2019) <보건교사 안은영>(2020) 등으로 눈도장을 찍은 현우석과 <경관의 피>(이규만, 2021) <그것만이 내 세상>(최성현, 2017) 등 다수 작품에서 아역으로 출연했던 박상훈이 호흡을 맞춘다. 두 배우는 반항 가득한 눈빛과 의뭉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다가도, 문득 굳은 심지를 드러내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7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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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