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아마도 현재까지 활동 중인 모방 가수가 가장 많은 대중문화의 아이콘일 것이다.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과 함께 그가 현세대에서도 이토록 추앙 받는 이유는 뛰어난 재능과 업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매우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요절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뮤지션으로서, 배우로서 한창을 달리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엘비스가 사망한 날, 그가 살던 멤피스로 미국 전역의 팬들과 유명인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고 싶어했고 그는 수많은 영화로, 다큐멘터리로 부활했다. 현재까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최근에 개봉한 바즈 루어만의 <엘비스>를 포함, 총 14편이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영화는 존 카펜터 연출의 1979년작, <엘비스>다. 이 작품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할로윈>과 다수의 공포영화를 연출한 호러 장르의 거장, 존 카펜터가 처음으로 음악영화에 도전했기 때문임과 동시에 엘비스 역할을 맡은 커트 러셀의 뛰어난 연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커트 러셀의 엘비스 모방은 가희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나다. 이후에 러셀은 <포레스트 검프> (스티븐 스필버그, 1994)에서도 엘비스 캐릭터의 더빙을 맡기도 했다.
2016년 개봉한 <엘비스와 닉슨> (라이자 존슨)은 엘비스를 테마로 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비관습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1970년 12월 21일 엘비스가 실제로 닉슨의 부름을 받고 백악관을 방문했던 하루를 모티브로 하여 가상으로 구성한 코미디영화다. 실제 이들의 만남에서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갔는지 기록이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이 영화적 상상력을 가동시킨 것이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닉슨 대통령 역의 케빈 스페이시와 엘비스 프레슬리 역의 마이클 섀넌 만큼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가디언지는 존슨이 “연출에는 실패했으나 이 두 배우의 연기로는 잭팟을 터뜨렸다”고 언급했다.
(다큐멘터리를 제외한) 엘비스 전기영화들의 공통점은 엘비스 역할을 맡는 배우들이다. 이들은 외모의 싱크로율보다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베테랑 배우들로, 예컨대 커트 러셀이나 마이클 섀넌은 영화 속에서 엘비스의 말투와 모션을 정확히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황마다의 감정과 뉘앙스를 달리하면서 각자의 연기적 해석이 드러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2022년에 개봉한 바즈 루어만의 <엘비스>는 모험적이다. 엘비스 역을 맡은 오스틴 버틀러가 역할에 비해 다소 어리고 (1991년생) 연기 경력이 짧은데다가, 전작들에서도 연기로 특별히 인정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캐스팅 역시 과거의 선택들만큼이나 ‘맞는 선택’이었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그의 놀라운 가창력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의 경우, 배우들의 메소드 연기를 중심으로 한 엘비스의 말투와 행동이 메인 스펙터클이었다면 이번 <엘비스>의 중심은 음악이다. 커트 러셀도, 마이클 섀년도 엘비스의 ‘음악’만큼은 립싱크에 의지하거나 (러셀), 생략 (섀넌)하는 반면, 바즈 루어만의 <엘비스>는 오스틴 버틀러가 직접 부르는 엘비스의 노래와 퍼포먼스 장면들이 영화의 주된 스펙터클이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물랭 루즈>에 더한 바즈 루어만의 음악 영화의 레거시가 이어지는 셈이다.
<엘비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오랜 매니저, ‘탐 파커 (탐 행크스)’ 대령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영화다. 엘비스는 우연한 기회로 파커 눈에 띄어 빠르게 성공한다. 파커는 초년의 엘비스를 작은 레코드사에서 RCA 라는 굴지의 레코드사로 옮겨 준 은인인 동시에 수십년 동안 엘비스의 출연비를 횡령하고 착취한 사기꾼이기도 했다. 네덜란드 출신인 파커는 ‘대령’이라고 불리지만 군대에 가 본적도 없으며 불법 체류자였다. 불법신분으로 파커는 해외에 나갈 수 없었고 해외공연을 하고 싶어하는 엘비스를 갖은 핑계로 설득해 그의 사망 전까지 국내공연만 하게끔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가 악당이 분명한 파커를 통해 전달되기에 <엘비스>는 일반적인 전기 영화라기보다는 느와르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관객은 신뢰할 수 없는 파커, 즉 악인 캐릭터의 나레이션을 통해 영화를 따라가게 되지만 그로 인해 긴장과 불안감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엘비스의 성공가도 보다는 파커가 주도하는 엘비스의 ‘쇠락’이다.
엘비스는 파커가 맺은 노예계약으로 라스베가스에 갇혀 공연과 약물을 오가며 점점 하락하게 된다. 결국 라스베가스에서의 레지던시 공연 5년차에 엘비스는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영화는 초반부부터 엘비스의 비극이 탐 파커의 치졸한 소행으로 인한 사실임을 명백히 하지만 동시에 탐 행크스가 연기하는 그의 캐릭터만큼은 명암이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탐 파커가 가족들에게 애정과 응원을 받는 엘비스를 바라보는 클로즈 업에서는 악랄한 사기꾼의 서늘함이 아닌,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이방인의 처연함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에서 탐 파커의 개인 서사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음에도 그의 출신과 딜레마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탐 행크스라는 배우의 역량 때문일 것이다.
엘비스의 비극적 엔딩에도 영화는 바즈 루어만 특유의 음악적 화려함과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엘비스>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들 뿐만 아니라 1940년대에 유행했던 가스펠, 블루스 등 진귀한 노래와 음악들로 가득하다. 에미넴과 씰로 그린이 협업한 엘비스의 추모곡, “왕과 나 (The King and I)” 와 함께, 청년이 된 엘비스가 멤피스의 빌 스트릿 (흑인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블루스 바들이 몰려 있는 거리)의 한 바에서 흑인 여성가수를 통해 듣게 되는 곡, "이상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 (Strange Things Happening Every Day)" 는 엘비스의 주옥 같은 히트곡 이상으로 매혹적인 노래다.
전반적으로 바즈 루어만의 <엘비스>는 꽤 성공적인 바이오 픽 (biopic: 전기영화나 실존인물을 그린 영화)이자 루어만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음악영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 전반에 삽입되는 인터 타이틀(속 자막)이나 팝아트 스타일의 이미지, 애니메이션의 활용 등 <엘비스>는 눈으로 즐길 수 있는 가장 모던하고 힙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에 이토록 감사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그보다 더 완벽한 음악영화가 어디 있겠는가.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