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말이 많아 시끄럽고 수틀리면 할퀴어대며 복수는 잊지 않고 실행하는,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진 요사스러운 생명체 아니던가. 이미 대형견과 동고동락하는 내 형편에 '종이 다른 동물 한 마리' 더 보탠다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기도 했고, 원래 나는 사람도 ‘강아지상’을 선호하는, 말하자면 개과(科) 인간이라, 고양이에 대한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때때로 집 마당에 놀러와 밥을 얻어먹는 길고양이가 처음 쥐를 물어다 줬을 때, '이것이 소위 말하는 '고양이의 보은’인가. 개는 귀여움으로 퉁치는 '보은'에 고양이는 왜 이다지 성실하단 말인가.' 얄팍한 호감이 일었지만, 일곱 번째 쥐 대가리를 받아든 순간, 나는 밥그릇을 치워버렸다.

어이어이, 우린 쥐를 먹지 않는다고!

지브리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우연히 고양이 왕국의 왕자 ‘룬’의 목숨을 구한 소녀 '하루'는 고양이 왕국에서 보낸 최고의 보답 중 하나인 '쥐'를 선물 받는다. 사물함에서 쏟아지는 쥐를 피해 ‘나는 쥐를 먹지 않는다고!’ 외치는 ‘하루’의 목소리를 우리 집 마당에 찾아오는 성실한 고양이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은 그 후 고양이 왕국에 초대받아 모험을 이어가지만, 그럭저럭 이어지던 나와 고양이의 관계는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우주 최강의 귀여움. 부족한 나를 선택해 줘서 고마워!

한데, 호감 없음, '불가능의 영역'이라 여겼던 고양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 2022년 여름 불쑥 일어났다. 폭우가 쏟아진 후 잠깐 날이 갠 틈을 타 나간 산책길, 희미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텁텁한 공기를 뚫고 내 귀에 닿는다. 찬찬히 살펴보니 산책길 근처 농로에 주먹만 한 고양이가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울고 있는 것 아닌가. 당장 품에 안고 집으로 튀어 가고 싶었지만 '냥줍'이 '납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금은 매몰차다 싶게 돌아섰다.

자정 가까운 시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비에 젖은 고양이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설마 아직도 거기 있겠어?'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도착한 그곳엔 아직 '그것'이 울고 있었다. 고양이 쪽에서 집사를 선택한다는 말, 귀여운 호들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정이 넘은 그 밤, 손전등으로 자신을 비추는 나를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자박자박 걸어오던 그 작고 힘없는 고양이를 보자 확신했다. ‘선택된다는 거, 진짜잖아’.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의 주인공 밥이 2020년 1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제임스 보웬과 고양이 밥.

‘간택’의 경험은 꽤 보편적이며, 그것은 종종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인도한다. 영화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에서 노숙자이며 중증 마약중독자였던 제임스 보웬(루크 트레더웨이)은 길고양이 밥에게 선택 당하며 새 삶을 살게 된다.

<선생님과 길고양이>, 전직 교장 코로모 쿄이치와 미, 솔라, 혹은 타마코로 불리는 길고양이

간택을 거부하는 인간에게도 관대한 우리의 고양이는 깨달음을 준다. 일본 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에서 전직 교장 코로모 쿄이치(이세이 오가타가)는 집에 찾아오는 미, 솔라, 혹은 타마코로 불리는 길고양이를 매몰차게 내쫓는다. 고양이를 볼 때마다 그를 애지중지했던 죽은 아내가 떠올라 괴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미, 솔라, 혹은 타마코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된 그는 반(半)광인이 되어 없어진 고양이를 찾아다닌다. 사별 후 자신만의 성에 갇혀 외톨이로 지내던 코로모는 실종된 고양이를 찾으며 점점 마을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비로소 부인을 떠나 보낼 용기도 얻는다.

<키티 러브: 고양이에게 바치는 송가> 네덜란드 고양이 셀럽 '아바튀튀'

그렇게 고양이라는 세계에 입덕해 버렸다. 이제 꽤 기운을 차린 고양이는 집 안과 밖을 통통, 우다다다 뛰어다니면서 혼자놀이를 한다. 그 작은 엉덩이로 잘도 힘을 줘서 모래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모래의 용도를 몇 번 만에 알아챈 걸 보니 범상치 않은 녀석이다. 조용해 어디있나 찾아보면 책장 맨 아래 칸, 아무도 찾지 않아 먼지가 자욱한 그곳에서 앞발을 모은 채 나를 올려 본다. 아직 어린데 오도독 건사료도 잘 씹어 먹고 내 발가락도 잘 씹는다.

영화 소개를 가장한 필자의 고양이 자랑에 ‘나만 없어, 고양이’ 억울함이 이는 분들에게 <키티 러브: 고양이에게 바치는 송가>를 추천한다. <키티 러브: 고양이에게 바치는 송가>는 네덜란드 고양이 셀럽 '아바튀튀'와 네덜란드 전국에 있는 집사들이 보내온 고양이들의 귀엽고,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순간을 포착한 영상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다. 유튜브, 홈비디오를 짜깁기한 영상이라 다큐멘터리라고 소개하기도 민망하지만, '나는 1시간 동안 귀여운 고양이만 보면 바랄게 없어'라는 분들께 안성맞춤 콘텐츠. 네덜란드의 홈 인테리어와 이국적 풍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양이 사무라이> 귀엽고 또 귀엽다.

초보 집사는 이것저것 배워 챙길 것도 많다. 모래, 사료, 예방 접종, 알맞은 잠자리, 스크래쳐... 얼마 전에는 고양이 몸에서 '꾸륵꾸륵' 이상한 소리가 들려 놓칠세라 영상을 찍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속병이 있는 것 같아요.' 걱정스레 증상을 설명하는 나를 향해 수의사는 옅은 미소를 띠며 '좋다는 뜻이니 안심하세요'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꾸룩꾸룩'이 아니라 '골골'이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골골'이라고 하니 내심 기뻤지만, 진지한 얼굴과 그렇지 못한 상황이 마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식 웃음이 새 나오게 하는 B급 영화의 한 장면 같아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럴 때의 나는 <고양이 사무라이> 속 초보 집사 큐타로(키타무라 카즈키)와 닮아있다.

과거 공포의 검객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이제는 초라한 낭인으로 전락해 궁핍한 생활을 하는 큐타로. 어느 날 그에게 마을의 애견파가 라이벌인 애묘파의 고양이를 없애달라는 의뢰를 한다. 의뢰를 실행하러 저택에 숨어든 큐타로. 차마 고양이를 벨 수 없었던 그는 그것을 몰래 집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방랑 무사와 마성의 매력을 가진 고양이 타마노조의 동거가 시작된다. 영화에는 초보 집사라면 환호할 포인트가 곳곳에 숨어있다. 고양이에게 무엇을 먹여야 할지, 대소변은 어떻게 가리는지, 목욕은 얼마 만에 한번 해야 할지, 구글신도, 유튜브 알고리즘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큐타로를 보면, 같은 처지의 초보 집사는 어느새 '간바레~'하고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게 된다.

"졸고 있는 작은 고양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샹플뢰리-

"한 마리의 고양이는 또 하나를 데려오고 싶게 만든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더 이상 쥐를 잡는 효용을 기대할 수 없는 고양이에 왜 사람들은 이다지 열광할까. 나의 경우 '아, 이렇게 먹고, 자고, 노는 비생산적인 존재도 하나쯤 있어야지'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한발 물러서 관조하는 듯한 집고양이의 태도에 위로받기도 하고, 고양이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모습이 타인의 눈치나 보며 전전긍긍하는 나의 모습과 겹쳐지며 왠지 대리만족하게 된다. 이희섭 감독의 <고양이 집사>에서도 각자의 이유로 고양이를 보좌하는 다양한 집사들을 만날 수 있다.

다큐멘터리 <고양이 집사>

다큐 속 중국집 사장님은 굶고 있을 길냥이들이 눈에 밟혀 매일 밤 영양식을 챙겨 오토바이로 신속 배달한다. 거리 생활에 지친 길고양이 ‘레드’가 짧은 휴식을 위해 가게 앞을 찾았을 때, 바이올린 가게 사장님은 고양이가 애처로워 보여 문을 열어줬다. 재개발로 인해 버려진 고양이 십수 마리를 돌보는 한 여성은 고양이가 할퀴는 통에 손과 팔이 상처 투성이지만, 그 댓가로 예방 주사쯤은 능숙하게 놓게 되었다.

자신만의 온도로 고양이와 공존하는 집사들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오다가도, 다큐는 고양이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도 담는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고양이 밥을 챙겨주던 중국집 사장님은 “내가 없는 고양이 불러다 밥 먹인 것도 아니고 원래 있던 앤데.”라고 하소연한다. 불이익이라면 조금도 견딜 생각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항상 그곳에 존재했던'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중국집 사장님이 문제인가. 아니면 귀엽다고 입양했다가 잠깐 키우고 버리는 인간들, 동물판 N번방으로 불리는, 고양이 학대 오픈채팅방을 운영하는 범죄자들과 추종자들이 문제인가. 답이 뻔한 질문을 하게 된다.

<고양이 집사> 출연진. 레드는 맨 왼쪽.

이희섭 감독은 <고양이 집사>에서 고양이라는 작은 생명체와 공존하지 못하는 세상은 그 누구와도 공존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공존의 방식은 다양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길고양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그들과 공존한다. 나는 고양이 앞에 넙죽 엎드려 낚시대 장난감을 흔들어 대며 공존한다. 입양할 형편이 안 된다면, 동물보호단체에 소액을 기부하는 것도 공존의 방법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내 옆을 지나가는 고양이에게 조용히 미소라도 날려보자. 종국에 고양이는 더 큰 기쁨으로 보은할 것이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