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라, 동학개미들이여!

주식투자 평가손익 -30%에 주식앱 삭제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주식은 장투다' 마음속으로 되뇌며, 바닥을 모르는 하방 곡선에 '주식? 그게 뭔가요? 제 주식은 쌀밥입니다만' 어차피 손에 쥐어 본 적 없는 돈 없어도 잘 살아낼 수 있다 모른 척도 해보지만, 오늘도 힐끗힐끗 코스닥, 코스피를 넘어 나스닥까지 기웃거려보는, 그렇다 나는 개미다. 그것도 타다 타다 재가 되어 아스러진.

동학개미운동 존봉준 '존리'와 개미들의 롤 모델 '강방천'의 불법 투자 소식에 '개미는 이용당했다. 역시 우리는 타도록 운명 지어진 미물들인가' 한숨만 나오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요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개미가 타고 있어요>가 타이밍 좋게 공개됐다. 그동안 주식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꽤 있었다. <작전>, <돈> 그리고 최근의 <클리닝업>까지. 하지만 내부거래니, 작전 세력이니 조금은 거리를 두고 즐겼던 이야기들이 <개미가 타고 있어요>를 통해 '찐현실 모멘트'로 다가온다. 이번 주 공개된 첫 두 화를 본 뒤의 감상 한 줄: '슬픈 건 아닌데 왜 눈물이 나지?'


그때 주식 살걸, 그때 집 살걸, 그때 코인 할걸. 후회만 하며 '직장인 버뮤다 삼각지대'에 착륙 한 번 안 하는 것은 '일신우일신'의 인생 책무를 저버리는 일. 셋 중 가장 만만한(?) 주식에라도 연착륙해 보려 몸부림치는 청년, 중년, 노년의 군상을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개미가 타고 있어요>는 짠하게 때론 유쾌하게 그린다.

난가? 내 눈에서 흐르는 것은 눈물이 아니다.

<개미가 타고 있어요>에는 다섯 명의 개미들이 등장한다. 그 중심에 유미서(한지은)가 있다. 유미서는 남다른 입담과 센스를 자랑하며 백화점 판매왕 자리를 꿰찬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로 결혼을 앞두고 집값 마련을 위해 주식 열차에 탑승한다. 주식에 입문한 미서는 초반 '떡상'의 달콤한 순간을 맛보고는 겁도 없이 풀매수를 실행한다. 결과는 대실패. 그렇게 전세 계약금을 날릴 위기에 처하며 남친에게 이별 통보까지 받게 된다.

전작 <멜로가 체질> '황한주' 캐릭터를 오마주한 애교 연기와 주식 등락의 순간에 이리저리 휘청이는 삶의 희로애락을 찰떡같이 표현하는 한지은을 보니 <개미가 타고 있어요>를 통해 그녀, '떡상'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최선우 역의 홍종현

3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 홍종현은 최선우로 분했다. 극 중 최선우는 덥수룩한 머리카락, 수염과 함께 쓰레기로 덮인 방 한가운데서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 시간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최선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하는 인물. 명문대 출신의 여의도 증권맨이었다는 이력과 주식에 대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모습이 그려지며 과거에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최선우는 주식 때문에 쓰디쓴 소주를 들이켜는 '미서'를 만나 우연히 주식 모임에 합류하게 되면서 과거에 대한 상처를 조금씩 극복할 예정이다.

왼쪽부터 강산(정문성), 김진배(장광), 정행자(김선영), 유미서(한지은)

두 사람 외에도 개성 강한 인물들이 셋 더 등장한다. 먼저, 정문성은 앞날 따위 생각하지 않고 세상 즐겁게 춤판을 벌이던 욜로 개미 '강산'으로 출연한다. 욜로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세계 오지를 떠돌며 돈 안 되는 예술적 잡기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생활을 반복하던 강산은 어머니의 임종을 계기로 자기 객관화를 하게 된다. '불혹 거지'가 된 자신의 모습에 현타 세게 맞고 주식의 세계에 입문하는 '강산'을 정문성은 능청스럽게 그려낸다.

최종 수익률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정행자, 김진배

내 주변의 주식투자 유형도 대략 이렇게 나뉜다. '정행자'형과 '김진배'형.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긴 오래된 종이 증권을 발견하고 주식에 입문하는 '정행자'는 소문난 족발집 사장님으로 투자에 있어 지식보다는 본인의 감을 따르는 촉개미다. 매수도 매도도 모르지만 '장사'를 통해 터득한 실생활 감각에 의지해 던지는 1차원적인 투자가 자꾸 성공하며 장광이 연기하는 '김진배'와 대조를 이룬다.

김진배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주식을 탐구하며 공부하는 개미다. 공부 없이 촉에 의지하는 행자의 투자 방식을 보며 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며 오지랖을 떨기도 하지만, 정작 수익률은 늘 행자보다 낮다. 글로 배운 주식이 치열한 주식 세계에서 통할 수 있을지, 감으로 하는 투자의 행운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수익률의 여신은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끝까지 지켜보자.

경제 유튜버 슈카

드라마는 실용적인 메시지도 전달한다. 1, 2화 에필로그에서는 경제 전문 스타 유튜버 슈카가 등장해 초보 투자자가 주식을 해도 괜찮을지, 주식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짚어주는 주식 특강을 선보인다. 앞으로도 매회 주식 꿀팁을 나누며 다섯 개미의 크고 작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하니, 드라마의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예정이다.


'너만 알고 있어' 주식투자의 악수, 패착

직장에서 인정받고 적지 않은 금액의 결혼자금을 모은 유미서, 유명 족발집 사장 정행자, 생활비 걱정 없는 퇴직 영어교사 김진배, 돈이 많이 필요치 않은 삶을 살아온 강산까지. 금전적으로, 심적으로 꽤 여유로워 보이는 이들에게조차 왜 주식은 최후의 보루가 되었을까? 비극을 유쾌하게 그렸지만 드라마는 어쩔 수 없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6년. 새 정부는 출범 후 보유세 감면과 공공임대 축소를 주도하더니 최근 폭우 피해로 여론이 안 좋아지자 지하·반지하 주택을 전면 불허하겠다는 엇박자 행보를 보였다.

이런 촌극을 보고 있자니 전세금 마련을 위해 주식에 도전했다가 큰 손실을 본 유미서의 비극이 남일 같지 않다. 좁은 취업 문, 낮은 은행 금리, 치솟는 물가로 묵묵히 일해서는 '벼락 거지'가 된다는 집단 노이로제에 휩쓸려 많은 이들이 주식 투자를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이렇게 <개미가 타고 있어요> 1, 2화는 주식에 대한 시대적 관심과 공감을 등에 엎고 주식에 입문하는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을 설득력있게 펼쳐 놓았다. 개성 강한 5인의 개미들이 직조할 인생, 우정, 사랑의 휴머니즘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지난 주 금요일 공개된 3, 4화도 놓칠 수 없는 이유다.


내 주식엔 언제쯤 빨간불 들어오려나.

<개미가 타고 있어요>에서의 동사 ‘타다’는 다양한 부사, 명사, 형용사와 결합하면 서로 전혀 다른 뜻이 되기도 한다. 1, 2화에서 유미서는 떡락으로 속이 시커멓게 ‘탔지만’, 복을 '타고'나, 시류를 잘 '타고', 양봉에 올라 '타', 떡상 열차를 '타는' 날이 그녀에게도, 아니 우리에게도 언젠간 오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제 눈물은 거두고 <개미가 타고 있어요>와 웃으며 존버하자.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