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뉴스를 접하다보면 드문드문 튀어나오는 단어, '오마주'(hommage). 이제는 제법 친숙할 법합니다. 최근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가 개봉하면서, 영화 속에 '스타워즈'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가 그득그득하다는 식의 글들이 많이 보였죠.

글자로만 보면 언뜻 한국어 같기도 한 '오마주'는 프랑스어입니다. '존경' 혹은 '경의'를 뜻합니다. 영어로 옮기면 respect 정도가 되겠군요. 이러한 의미를 따라, 영화인이 자신이 존경하고 영향받은 작가와 작품에 보내는 헌사로 특정 장면을 그대로 가져오는 걸 지칭합니다. 사랑하는 그 장면의 요소들을 그대로 자기 작품에 녹여내는 게 일반적이고, 해당 감독의 스타일을 모방하기도, 장면 자체를 화면에 내걸어 그 영화를 보고 있는 인물들을 비추기도 합니다.

사진가 산드로 밀러와 배우 존 말코비치가 협업한 'A Homage To Photographic Masters' 연작 중에서

'미장센'(mise-en-scéne),'페르소나'(persona) 같은 영화용어가 연극이나 문학에서도 쓰였던 개념이 옮겨온 데에 반해, 오마주는 영화에서 비롯돼 꾸준히 사용되고 있는 낱말입니다. 헌데 요즘엔 음악, 문학에서 오마주라는 말이 자주 들리곤 합니다. 현아의 노래 '어디부터 어디까지',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처럼, 발표 당시에는 별 언급을 하지 않다가 뒤늦게 표절 의혹이 피어나면 그때서야 "오마주였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사례가 속속 생겼죠. 기본적으로 인용의 개념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일 텐데요. 영화든 음악이든 소설이든, 시비에 휘말리고 나서 오마주라고 해명하는 사례가 있다면 눈초리를 바짝 세워봐야겠습니다. 왠지 캠페인스럽네요.

살짝 이야기가 옆길로 샜습니다. 아무쪼록! 오마주는 기본적으로 존경의 뜻이 담겨야 하고, 그 인용을 통해 (그저 러닝타임 채우기만이 아닌) 자기 작품 세계에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쯤에서 개념 소개는 마치고, 오마주의 의미가 잘 살아 있는 사례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무라이 픽션>
<킬 빌>

쿠엔틴 타란티노는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1994)에서 오우삼의 <첩혈쌍웅>(1989)의 권총 액션을 각색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영화에서 자신이 사랑한 영화의 장면을 옮겨와 존경을 바쳤습니다. 세상의 모든 액션영화는 다 때려넣을 기세로 만든 <킬 빌>(2003)은 그야말로 오마주 천국입니다. 우선 클라이막스인 청엽정 액션 시퀀스에서 주인공 브라이드가 입고 있는 바디수트가 <사망유희>(1978) 속 이소룡의 그걸 대번에 떠올리게 하죠.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레퍼런스들이 영화에 넘실대고 있는 가운데, <사무라이 픽션>(2000) 속 빨간 격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을 인용한 대목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흑백으로 펼쳐지던 살육의 아비규환이 갑자기 새파란 격자로 옮겨갈 때의 쾌감이 대단했습니다. 이 오마주는 <킬 빌 2> 속 브라이드와 페이 메이가 수련하는 장면에서 아주 짤막하게 등장합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매트릭스 레볼루션>

한국을 사랑하는 대표적인 할리우드 감독 워쇼스키 자매. 배두나, 정지훈을 주연으로 기용하고, 드라마 <센스 8>을 한국에서 촬영하는 등, 남다른 한국 편애를 자랑하고 있죠. 그들은 일찍이 <매트릭스 레볼루션>(2003)에서, 우 형사(박중훈)와 범인(안성기)이 빗속에서 서로를 향해 주먹을 던지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의 장면을 가져왔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개봉한 1999년 당시에도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액션으로 자리매김할 만큼 유명했지만, 이때 시대를 대표하는 시리즈 영화였던 '매트릭스'가 인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가치는 더 높게 치솟았습니다. 더군다나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스미스 요원(휴고 위빙) 클론들이 뒤엉키는 대규모 액션 시퀀스는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목이었으니 반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앞서 보여준 사례가 그 장면의 형식을 그대로 구현한 결과라면,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의 오마주는 조금 다릅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영화의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모래폭풍 시퀀스가 앨프레드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의 벌판 추격신을 향한 오마주라고 말합니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옥수수밭에서 경비행기에게 추격 당하는 신이라면, <고스트 프로토콜>은 빌딩이 들어찬 두바이 한복판에서 갑자기 모래폭풍이 불어닥치면서 벌어지는 시퀀스라는 점에서 별로 유사점이 없어 보이죠. 하지만 이 대목이 대낮의 열린 공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쫓겨 당대 최고의 배우가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라는 점을 상기시켜본다면 오마주의 의의는 충분합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인터스텔라>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라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하 <오디세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미 스탠리 큐브릭이 <오디세이>에서 다 만들어놓았"기 때문이죠. 21세기 가장 거대한 감독으로 추앙 받는 크리스토퍼 놀란 역시 야심작 <인터스텔라>(2014)를 내놓으며 <오디세이>의 영향을 고백했습니다. 사실적인 비주얼을 구현하기 위해서 당대의 기술력을 총동원한다는 점에서, 두 거장의 접점은 차라리 당연해 보입니다. 놀란은 "무의식적인 오마주가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실제로 영화 속에서는 <오디세이>를 인식하고 찍은 듯한 숏이 속속 발견됩니다. 지구를 옆에 끼고 우주선이 유영하는 장면이나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압도 당한 클로즈업은 명백한 <오디세이>의 인용이었죠. 케이스와 타스가 <오디세이> 속 모노리스의 미니멀리즘과 닮았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싸이코>
<싸이코>

네, 또 다시 히치콕입니다. 영화의 온갖 문법을 떡 주무르듯 구사했던 히치콕은 후대의 감독들이 가장 열렬하게 오마주를 바친 대상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히치콕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며 스릴러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개척한 브라이언 드 팔마를 비롯한 장르 불문 수많은 감독들이 히치콕의 장면을 빌려와 자신의 영화에 광을 냈습니다. 히치콕의 <싸이코>(1962)를 거스 밴 샌트가 리메이크한 <싸이코>(1998)는 당연하게도 히치콕에 대한 오마주 그 자체입니다. <굿 윌 헌팅>(1997)으로 큰 성공을 거둔 거스 밴 샌트는, 원전 <싸이코>의 거의 모든 장면의 구도와 액션까지 아예 똑같이 찍어버리는 파격을 감행했습니다. 물론 러닝타임도 109분 똑같습니다. 하지만 히치콕의 원전에 담긴 힘은 이어지지 않았고, 역사상 과감한 오마주는 무모한 실패라는 낙인으로 남았습니다.


<라붐>
<써니>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의 추억을 건드리는 기획으로 제작된 <써니>(2011). 당시를 수놓은 아이템들이 곳곳을 채우고 있는 영화는, 소피 마르소의 청초한 매력이 80년대 중고등학생들의 마음을 뒤흔든 프랑스 영화 <라붐>(1980)의 명장면을 재현합니다. 멍하니 서 있는 여자에게 가만히 헤드폰으로 리처드 샌더슨의 'Reality'를 들려주는 바로 그 장면. 사실 세심하게 연출되지도 않고, 그저 '80년대를 그린 청춘영화'라는 기획을 강조하기 위해 배치된 대목이긴 하지만,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처럼 직접적으로 오마주를 드러낸 케이스도 드물기에 넣어봤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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