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이라던 태풍, 다행히 서울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가”
역대급 태풍일 것이라던 태풍 힌남노는, 예상보다 낮은 수온의 남해안 해역을 지나면서 그 위력이 다소 줄어들었다. 긴장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던 수도권 시민들은 아침에 일어나 생각보다 화창한 날씨를 확인하곤 내심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하는 한 유력 중앙일간지 기사의 부제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영 복잡해졌다. 물론 나도 서울 사는 사람이라 아침에 일어나보니 창 밖이 환하고 하늘이 맑게 개인 걸 보니 반갑긴 했다. 당장 내가 사는 동네에 피해가 생각처럼 없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지. 서울 900만, 경기도 1100만. 도합 2000만 명이 넘게 거주하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 인근이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지나간 건 불행 중 다행인 일이긴 하다.
그런데 세상을 나 혼자만 사는 건 아니어서, 나에겐 울산에 사는 지인도, 부산에 사는 친구도, 제주에 사는 동료도 있다.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는 엄청난 양의 물 폭탄을 맞았고, 옛 철도청 건물 지붕이 뜯어져 나가 인근 도로를 덮쳤다. 포항에서는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풀빌라 한 채가 통째로 떠내려가는가 하면,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간 시민 8명이 실종되었고, 도로가 물에 잠겨 시민들이 고립됐다. 포항제철소 공장도 침수되어 스물 두 명이 고립되었다. 고립된 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해병대가 수륙장갑차와 고무보트를 타고 수색구조작전을 펼치는 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여러 차례 리트윗되었다. 울산에선 20대 남성 한 명이 물에 빠져 실종되었고, 강풍에 건물 외벽이 뜯어져 나갔다. 밤 사이 힌남노가 훑고 지나간 루트에 살고 있는 친구들 생각을 하니, 난 차마 ‘불행 중’이라는 단서 없이는 ‘다행’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서울은 종종 그렇게 둔했다. 올 초 전국에 가뭄이 들었을 때, 강원의 농민들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하늘을 원망하며 다 말라 비틀어져 가는 채소들을 바라보고 한숨을 쉴 때, 서울 시민들이 쓸 물을 확보해야 한다고 한강 상류에 있는 사람들이 주 4일 제한된 양의 물만 허락받을 때, 서울 사람들은 워터밤 축제를 기획하고 있었다. 한참 논란이 진행되던 차에 폭우가 내리자 서울 사람들은 “이것 봐라. 비가 오지 않았느냐”라고 말하며 워터밤을 비판했던 목소리를 유난이라고 핀잔을 줬다. 하지만 농사엔 때가 있는 법이다. 비가 와야 할 때 안 와서 모든 게 시들시들한 땅 위에, 뒤늦게 폭우가 쏟아지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단기간에 몰아서 와서 많아 보였을 뿐, 농사를 짓기에 충분한 양의 비가 온 것도 아니었다.)
안다. 서울 사는 우리에게 이렇다 할 악의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우리는 잘 모를 뿐이다. 세상이 얼마나 서울 중심인지, 서울 사람들이 얼마나 타지에 별 관심이 없는지, 서울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런 걸 모르고 살아도 된다는 게 특권인지도 잘 모른다. 쓰레기는 인천에 가져다 버리고, 전기는 충청도에서 가져다 쓰고, 물은 경기 북부에서 받아서 먹고, 영호남이 기른 쌀과 강원이 재배한 채소를 먹으면서, 돈 지불했으니까 따로 고마워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그냥 잘 모를 뿐이다. 서울이, 우리가 지역을 얼마나 집요하게 착취하는지. 문화와 경제와 정치와 교육의 인프라는 서울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혼신의 힘을 다 해 틀어막는 우리는, 그냥 잘 모른다. 그냥 몰라도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까 모를 뿐. 악의 같은 게 있을 쏘냐.
‘다행히 서울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가’라는 부제를 보고, 나는 문득 영화 〈기생충〉(2019)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밤 내내 내린 폭우로 김기택씨(송강호)와 그의 가족이 살아가는 저지대 마을 반지하 집은 온통 물에 잠겼다. 하수도가 역류해서 목까지 차올랐고, 집안의 세간살이들이 온통 물에 잠겼다. 급한 대로 닥치는 대로 집안의 물건들을 빼 옮기는 기택씨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처럼 그렁그렁했다. 기택씨는 배우자 충숙씨(장혜진)가 해머던지기 선수이던 시절 전국체전에서 딴 메달을 급하게 수습해보지만, 액자 안은 이미 1/3 정도 오수가 차올라 찰랑찰랑하다. 삽시간에 집도 절도 없어져서 실내체육관에 급하게 마련된 수재민 임시 숙소에서 잠을 청하는 밤, 기택씨는 계획을 묻는 아들 기우(최우식)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창피하다. 어차피 무슨 계획을 세워도 그대로 안 되니까 그냥 무계획으로 무책임하게 살라는 말을 던지면서, 기택씨는 팔로 눈을 가린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겠지. 아들에게 이 따위 말을 교훈이랍시고 해야 한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겠지.
서울 평창동 어디쯤으로 보이는 고지대 초호화 단독주택에 살아가는 박동익씨(이선균)네 부부는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이 부부에게도 이렇다 할 악의 같은 건 없다. 그냥 잘 모른다. 해가 잘 안 드는 곳에서 빨래를 말리면 필연적으로 희미하게 곰팡이 냄새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같은 거, 비가 많이 오면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피할 도리도 없이 수해의 피해를 입는다는 거, 자기들이 교양 있는 말투로 노동을 구매하는 가사도우미가, 운전기사가, 과외 선생이, 그렇게 지척에 사는 사람들이 그 저지대에 살고 있다는 거, 잘 모른다. 그러니까 간밤에 폭우가 쏟아졌어도 “비 피해는 없느냐” 같은 질문을 던질 줄도 모른다. 동익씨의 배우자인 연교씨(조여정)는 말한다. 간밤에 비가 와서 미세먼지 제로의 맑은 하늘이라고. 정말 비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냐고. 바로 앞자리에서 제 차를 몰고 있는 운전기사 기택씨가 수재민이 된 줄도 모르고. 그래, 모르니까 함부로 말할 수 있지. 몰라도 되는 특권이 있으니까 그럴 뿐. 악의 같은 게 있을 쏘냐.
난 가끔 지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 하나 없는 나의 삶을 생각한다. 지방 사는 몇몇 친구들과 친지들의 안부만 확인하고 나면, 말로만 쉽게 “걱정이네~”라고 내뱉고 넘어갈 수 있는 나의 특권을 생각한다. 〈기생충〉의 결말부, 별 악의 없이 그저 모르고 살아가던 박동익씨는 김기택씨의 손으로 가슴에 식칼이 박혀 죽는다. 폭우가 쏟아진 다음 날, 누군가는 집을 잃고 누군가는 미세 먼지 없는 하늘에 감사하던 날 오후였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