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에게 가까운 것을 외부인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 재밌다. 해외 매체의 한국 영화 리스트를 보는 것도 그래서 재밌는 게 아닐까 싶다. 한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와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는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새삼 느낄 수 있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해외 매체 '덴 오브 긱'(Den of geek)에서 선정한 한국 액션 영화 베스트를 가져왔다. 리스트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리스트를 바로 나열하고 나름의 카테고리별로 영화들을 소개한다.

악녀

검객

도둑들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무사

아라한 장풍 대작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최종병기 활

군도: 민란의 시대

아저씨

베테랑

리벤져

악인전

감기

극한직업

이상 16편. 리스트는 '덴 오브 긱'에서 나열한 순서를 그대로 반영했다.


2관왕

류승완 <아라한 장풍 대작전> <베테랑>

김한민 <최종병기 활> <명량>

김성수 <무사> <감기>

(왼쪽부터) 류승완 감독과 <아라한 장풍 대작전>, <베테랑>

(왼쪽부터) 김한민 감독과 <최종병기 활>, <명량>

(왼쪽부터) 김성수 감독과 <무사>, <감기>

액션하는 감독. 지금은 류승완 감독에게 '흥행 감독' '천만 감독'이란 수식어가 더 자주 붙지만, 데뷔 초부터 그를 사랑한 팬들은 류승완 감독의 액션에 대한 진심을 기억하고 있다. 그 자신이 연출과 주연을 겸한 <짝패>에서 여실하게 드러나듯, 그는 과거 홍콩 무술 영화를 특히 사랑했다. 그 순수한 애정을 표현한 것이 <짝패>라면, 그보다 2년 전에 만든 <아라한 장풍대작전>은 각종 무협영화에서 느낀 즐거움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작품이었다.

우연히 기공을 얻은 순경 상환(류승범)이 의진(윤소이)과 함께 악인 흑운(정두홍)을 막는다는 이야기는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전형적인 무협지 전개. 하지만 여기에 재치 있는 코미디(류승범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와 혼신의 힘을 갈아넣은 듯한 액션 연출이 더해져 (지금이었다면 K-무협이라 부를 만한) 한국식 무협 코미디의 진일보를 이뤘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덴 오브 긱'의 필자가 지적하듯 단점이 없는 영화가 아니다. 때로는 유치하고 때로는 와이어 액션이 과하다. 그러나 그 단점을 덮어두고 사랑할 만한 쾌함이 빛나는 건 분명하다.

<아라한 장풍대작전>과 <짝패>가 '감독 류승완의 제1장'을 마감했다면, <베테랑>은 '제2장'의 절정에 해당한다.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를 마지막으로 복고에 안녕를 고한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 <베를린>에서 연이어 만들며 동시대 배경으로도 탁월한 연출력을 뽐냈다. 이어진 차기작 <베테랑>은 앞선 두 편의 비관적인 사회상을 이어받되 이를 주인공의 역전이 돋보이는 액션 활극으로 풀어냈다. 명백한 악에 맞서는 정의로운 인물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보는 사람까지 아픈 타격감에 순간적으로 코미디를 빚는 센스. 액션 장인 류승범의 노하우가 영화 전체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액션 장인이란 점에서 류승완 감독을 특히 자세히 설명했지만, 김한민 감독과 김성수 감독 또한 각각 <최종병기 활>과 <명량>, <무사>와 <감기> 두 편씩 이름을 올렸다. 개개인의 추격을 다룬 <최종병기 활>과 대규모 해상전을 묘사한 <명량>은 사극이라는 큰 틀을 제외하면 판이하게 달라 김한민 감독의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다(비록 <최종병기 활>은 표절 논란이 있었지만). 반면 김성수 감독의 <무사>와 <감기>는 장르부터 시대까지 공통점 하나 없는데, 둘 다 고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무사>는 합작과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쉽지 않아 상당히 고생하며 완성한 작품인데도 아직까지 회자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이젠 '고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의외상

감기

<감기>

16편의 이름 속에서 '액션 영화인가...?' 이질감이 드는 영화가 있다. 아무래도 <감기>는 액션 영화보다 재난 영화라고 보는 편이 맞으니까. '덴 오브 긱' 필자도 <감기> 부분만큼은 다소 묘하게 서술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액션보다 재난이 퍼져나가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봉쇄 조치 묘사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하기사 <감기>가 신파니, 고구마니 혹평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재난 상황에서의 혼란과 군중 묘사만큼은 그 어느 영화보다도 탁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액션 영화로서도 손색이 없어 선정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니 축복받은 해? 2014년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군도: 민란의 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총 16편이 선정된 이번 리스트에서 단연 돋보이는 숫자는 '2014'이다. <명량>, <해적: 바다로 산 산적>, <군도: 민란의 시대>까지 3편이나 2014년에 개봉한 영화들이다. 그것도 여름시장을 겨냥해 7~8월 개봉한 영화들이란 것도 특이하다. 세 작품 모두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영화들인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세 작품이 모두 사극의 형태를 빌리되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액션의 쾌감을 이끌어내는 것을 눈여겨 볼만하다. <명량>은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전쟁의 스펙터클을 구현해 임진왜란 말기 이순신 장군(최민식)의 뛰어난 지략과 용맹함을 부각시킨다. <해적: 바다로 산 산적>은 보물을 찾아야만 하는 다양한 인물과 집단을 그리며 액션 어드벤처로서의 속도감과 청량감을 획득한다. <군도: 민란의 시대>는 농민봉기라는 사극적인 소재를 비장함과 인간 군상을 의도적으로 과장시켜 서부극을 새롭게 비틀었다('덴 오브 긱' 필자는 로빈 후드의 또다른 버전이라고 칭했다).


재조명이 필요하다

<검객>

<리벤져>

장혁 주연의 <검객>

브루스 칸 주연의 <리벤져>

꽤 쟁쟁한 리스트에서 유독 낯선 제목 두 편이 보인다. <리벤져>(2018)와 <검객>(2020)이다. <리벤져>는 박희순, 윤진서, 김인권이란 알려진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주인공은 브루스 칸이기 때문에 꼭 해외 진행 프로젝트처럼 느껴진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브루스 칸 또한 해외에서 활동했을 뿐이지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김우석이란 것. 이 영화는 각종 무술을 섭렵한 브루스 칸의 액션 연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영화의 완성도는 결코 좋게 평가할 수 없지만 궁지에 몰린 주인공을 맡아 종횡무진하는 브루스 칸의 액션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리벤져>에 브루스 칸이 있다면 <검객>의 핵심은 장혁이다. <검객>은 '딸이 납치당한 아버지'라는, 액션영화에선 클리셰에 가까운 소재를 조선 시대에 녹였다. 덕분에 현대 밤거리를 배회하는 남성 같은 평범한 이미지 대신 검 한 자루로 창호문과 숲을 헤쳐나가는 검객이란 독창성을 챙겼다. <추노>를 시작으로 대역 없는 액션 연기를 보여준 장혁이 검객 태율을 맡았고, <레이드: 첫번째 습격>에서 두각을 드러내 할리우드에까지 진출한 조 타슬림이 청나라 구루타이를 연기했다. 액션 좀 좋아한다 하는 분이라면 심장이 웅장해지는 투샷을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장혁의 2022년 신작 <더 킬러: 죽어도 되는 아이>에 앞서 설명한 <리벤져>의 브루스 칸이 출연했다.

장혁과 브루스 칸은 이후 <더 킬러: 죽어도 되는 아이>에서 만났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