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웨인 존슨이 블랙 아담 역으로 캐스팅 확정된 것은 무려 8년 전이다. 세계관 내에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캐릭터일 뿐만 아니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실제 개봉까지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새삼 애석한 일이다. 가족영화에 가까웠던 <샤잠>(2019) 의 스핀오프로 기획되었으나 팬데믹으로 인해 이래저래 일정이 늦어진 작품 중 하나였다.

2021년에 공개된, 컨셉 아트 기반의 티저 영상에서는 5천 년 전 칸다크의 영웅으로 등장한 블랙 아담이 봉인에서 풀려나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으로, 기원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다룰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지난 9일, 드디어 공개된 메인 예고편을 보면 ‘저주와 분노’에서 태어난 힘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며 5천 년 만에 봉인에서 깨어난 블랙 아담, 그리고 이에 맞설 히어로 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대결이 주요 골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너브러더스의 합병과 더불어 DC 유니버스의 향방이 그리 밝지는 않지만(물론 기우일 수 있지만..), 걸출한 예고편을 공개한 바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블랙 아담 유니버스를 구성한다는 등 다채롭고 장대한 계획의 시작이 될지도 모를 이 영화,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이모저모를 다시금 돌아본다.


블랙 아담과 샤잠,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연

무려 1945년에 처음 등장한 블랙 아담은 DC의 빌런 캐릭터 중에서도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불사신으로 본명은 테스 아담, 수천 년 전의 고대인이다. 샤잠의 숙적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캐릭터를 둘러싼 법적 분쟁에 함께 휩싸여 이래저래 풍파를 겪었고, 이로 인해 최초 등장 시점과 비교해 캐릭터의 기원과 설정이 여러 번 바뀌었다. 하지만 공통적인 점은 샤잠과 기원이 유사하고 관련이 깊으며, 힘을 발휘하는 방식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즉 여러 가지 면에서 샤잠과 닮은 듯 정반대인 캐릭터가 바로 '블랙 아담'이다.

때문에 블랙 아담과 샤잠은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솔로몬/헤라클레스/아틀라스/제우스/아킬레스/머큐리까지 6명의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여섯 가지 능력을 소유한 샤잠과 마찬가지로 블랙 아담 역시 슈/호루스/아몬/토트/아톤/메헨의 6명의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즉 샤잠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면, 블랙 아담은 이집트 신화의 신들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이 신들의 첫 글자를 따서 주문인 샤잠(SHAZAM)이 완성되며, 샤잠이라고 외치면 신들의 축복을 받은 히어로로 변신할 수 있게 된다.

이집트 신들의 축복을 받은 블랙 아담, 그리스 신들의 축복을 받은 샤잠

빌리 뱃슨은 고아원과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문제아 취급을 받던 소년이었는데, 새로운 위탁 가정에서 프레디를 비롯한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만나게 되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7명의 마법사들로 구성된 의회 '서클 오브 이터니티'가 잠들어 있는 영원의 바위에 도착하게 되는데, 마침 블랙 아담의 부활로 인해 그를 막아낼 영웅 후보를 찾고 있던 마법사 샤잠을 만나게 된다. 그와의 대화 끝에 축복을 받은 빌리 뱃슨은 신의 능력을 가진 히어로 '샤잠'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고, 같은 위탁가정에 있는 프레디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린아이답게 소소한 복수와 더불어 범죄자를 처단하기도 하면서 '샤잠'의 능력에 익숙해져 간다.

닮은꼴이자 대척점인 샤잠과 블랙 아담

영화에서는 블랙 아담이 아닌 닥터 시바나가 빌런으로 등장해 샤잠을 상대했지만, 코믹스에서는 애초에 블랙 아담의 부활에 대응하기 위해 샤잠이 탄생한 것이기에 블랙 아담과의 결전을 치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빌리 뱃슨이 위탁 가정에서 함께 살던 아이들을 새로운 가족으로 인정하고 샤잠의 힘을 나누어 주어 모두가 샤잠과 같은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어찌 보면, 상처받고 삐뚤어져 있었으나 순수하고 고결한 내면을 갖고 있었던 어린 소년 빌리 뱃슨이 샤잠의 힘을 얻고 가족들을 받아들이면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룬 성장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기원은 유사하나 전혀 다른 성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 어쩌면 그래서 '샤잠' 빌리 뱃슨의 숙적으로 활약해 올 수 있었던 캐릭터가 바로 블랙 아담이다.


빼앗은 샤잠의 힘, 블랙 아담의 기원

리부트 이후의 설정에 기준하자면, 칸다크라는 국가에 살고 있던 마법사 테스 아담은 독재자의 폭정 때문에 가족을 잃고 조카 아만과 함께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혹독한 생활 속에서 아만과 함께 목숨을 걸고 탈출한 테스 아담은 죽음의 목전에 도달했고, 순수하고 고결한 심성의 소유자로 마법사들의 축복을 받았던 아만은 그를 살리기 위해 테스 아담에게 샤잠의 힘을 나누어준다. 이 설정에 의하면 1대 샤잠이 바로 블랙 아담의 조카인 아만이었던 것.

테스 아담과 그의 조카 아만

하지만 블랙 아담은 힘을 얻자마자 가족을 잃은 복수심에 불타올라 칸다크의 독재자 아이박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악한 지배자들을 모조리 몰살하려 했다. 그를 저지하려던 아만조차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목숨을 빼앗았다. 결국 마법사들은 그를 봉인시켰고, 이후 장장 5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목숨을 걸고 아만을 구출했음에도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 것을 보면, 블랙 아담이 힘을 얻은 후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원작에서는 빌리 뱃슨이 샤잠의 힘을 얻고 나서 블랙 아담과 전투를 벌이게 되지만, 2019년 영화 <샤잠!>에서는 블랙 아담이 아닌 닥터 시바나가 메인 빌런으로 등장했다. 때문에 블랙 아담에 대해서는 마법사 샤잠에 의해 짧게 언급되기만 했는데 '마법사들이 자신들의 후계자로 선택했던 사람이 타락해 세상을 파괴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인물이 테스 아담, 즉 DC 실사화 유니버스의 블랙 아담이다.

원작 스토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블랙 아담은 샤잠의 대표적인 아치 에너미이지만, 빌런이라기보다는 가차없이 자신만의 정의를 지키려 하는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캐릭터다. 문제는 그 본인의 정의가 늘 객관적으로 정의롭지는 않다는 것인데.. 잔혹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행적들도 꽤 있었고 자신의 목적에 방해된다면 그게 누구든 없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상당히 위험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좋게 말해 추진력이 좋고, 얄짤없이 말하면 융통성 없는 불도저인 셈이다.


질풍노도의 히어로 ‘샤잠’, 혼돈의 안티 히어로 ‘블랙 아담’

히어로 무비라는 장르에 있어서 안티 히어로의 개념이 아직 대중적으로 익숙한 느낌은 아니기는 하나, 영웅이지만 악당이기도 하고 악당이지만 영웅이기도 한 복잡한 선상 위에 있는 캐릭터를 안티 히어로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안티 히어로의 정의는 선악을 기준으로 재단하기 어려우며 어떤 경우에는 선하고 어떤 경우에서는 악하기 그지없기도 하다. 블랙 아담은 이 안티 히어로의 개념에 딱 맞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관점에서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고 악을 처단하는 것이니 일견 정의롭고 선한 일이겠으나 객관적 대다수의 관점에서는 잔혹무도한 살인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잘못된 신념을 가진’ 존재가 ‘강력한 힘’을 얻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라고도 할 수 있는데, 블랙 아담의 경우 그가 지닌 힘이 DC 세계관 최강자 순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바로 그 슈퍼맨과 비등할 만큼의 강력한 존재다. 거기에 세부 설정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봉인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전투 경험이나 능력 발휘 측면에서 보자면 아직 어리고 서툰 히어로인 '샤잠' 빌리 뱃슨이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숙적’에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샤잠에게 정신 공격을 시전 중인 블랙 아담

물론 이번 영화 <블랙 아담>은 샤잠과의 전면전이라기보다는 영화 <샤잠!>의 스핀오프로서 블랙 아담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솔로 무비이므로 그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복잡한 내면에 대해 소개할 것으로 보인다. <샤잠!>이 가족영화에 가까운 내용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사뭇 다른 분위기일 듯하며, 블랙 아담과 샤잠의 결전은 이다음 영화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드웨인 존슨이 연기하는 ‘힘센 마법사’?

블랙 아담 역할을 맡은 배우는 프로레슬러 '더 락'으로 시작해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미이라 2>, <웰컴 투 정글>등으로 할리우드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착실히 다져 온 바로 그 드웨인 존슨이다. DC 실사화 유니버스가 다른 건 몰라도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웅장한 액션씬만큼은 대부분 호평받아 왔기에, 드웨인 존슨의 뛰어난 액션 연기와 어우러져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올지도 기대해 볼 만하다.

드웨인 존슨이 블랙 아담 역으로 캐스팅된 것이 <맨 오브 스틸> 직후 시점이니 벌써 근 10년이 흘러 상당히 늦게 나오는 편이기는 하나, 드웨인 존슨은 캐스팅 확정 이래 <샤잠!>의 제작 총괄로도 참여하는 등 DC 실사화 프로젝트와 계속 함께해 왔다. 보통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당초 캐스팅이 변경될 법도 한데 배우 본인이 블랙 아담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에 꽤나 열정을 갖고 있어 성사된 것 같아 보인다.

예고편에 등장한 드웨인 존슨

실제로 드웨인 존슨은 히어로 무비 출연이 자신의 오랜 꿈이었다고 말한 적도 있는데, 꽤나 히어로 무비라는 장르에 잘 어울리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단단한 피지컬은 물론이고 압도적인 비주얼 측면에서도…) <블랙 아담>이 첫 히어로 무비 참여다. 공개된 캐릭터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면 왜 이제까지 빌런이든 히어로든 간에 히어로 무비에 등장하지 않았는지 안타까울(?) 정도로 강력한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저스티스 리그 이후 실로 오랜만에 새로운 히어로 팀인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등장할 예정이다. 007 시리즈의 5대 제임스 본드 역할로 명연기를 펼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닥터 페이트'를 맡았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비견될 만큼 DC 세계관 내 최강의 마법사이자 전능한 존재에 가까운 캐릭터인지라 코믹스 팬들의 호기심을 사고 있다. 이외에도 팀원으로 호크맨, 사이클론, 아톰 스매셔가 등장할 예정.

<블랙 아담> 컨셉 아트 중 일부

10월 21일 개봉으로 이제 개봉일을 약 한 달 남짓 남겨둔 <블랙 아담>은 LA 램스 스타디움 경기장 지붕에 예고편을 송출시킨다는 제법 창의적인 프로모션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드웨인 존슨 역시 최근 진행된 스크린 테스트와 더불어 여러 가지 관련 정보를 자신의 SNS에 업로드하면서 영화에 대한 애정과 홍보에 힘쓰는 중.

DC 실사화 유니버스의 작품으로서 오랜만에 선보이게 된 영화이자, <조커>에 이어 빌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독 영화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블랙 아담>은 드웨인 존슨의 등장과 파워풀한 액션을 담아낸 예고편 덕분에 올해 하반기를 달굴 기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뽀대나는 예고편에 수없이 속아 왔던 지난날을 뒤로 한 채, 예고편 그 이상의 재미와 비주얼을 보여 주는 영화 <블랙 아담>이 되어주기를. 그리하여 그 성공을 토대로 DC 실사화 유니버스가 다시금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