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마담 언니가 돌아왔다!

호모 사피엔스가 고생 인류 생존자 된 이유

지구상에 존재하는 현생 인류를 일컬어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유인원의 종류에 고릴라, 오랑우탄등이 있는 것 처럼, 인류라고 부를 수 있는 집합 중에서도 호모 사피엔스 이외에 다른 종 또한 존재했다. 네안데르탈인이라 불리던 종족은 호모 사피엔스와 약 20만년동안 공존하다가 약 2만년전 쯤 멸종했다. 그 둘은 완연한 협력관계까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제거하려고 기를 쓰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 남아서 현생 인류가 되었을까?

실은 현생 인류 중에 네안데르탈인의 피와 믹스된 경우가 3% 정도는 있다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큰 키와 강한 힘 등, 압도적인 신체 스펙을 내세워 맹수를 사냥하는 데 유리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여기에 붙어 고기 부스러기를 빌어 먹으며 겨우 살아남았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런데 무리가 형성되고 집단 생활을 하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뇌의 용량이 더 커서 협력하는 전략을 세워 수렵하는덴 유리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그들보다 뇌의 전두엽이 훨씬 발달되어 있었다. 그래서 네안데르탈인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 고도로 조직된 능력, 도덕심과 윤리적 판단 능력이 뛰어났다. 점점 더 큰 집단 생활을 해가면서 중요해지는 것은 육체적 강인함도, 개별 지능 수준도 아닌 높은 공감 능력을 토대로 한 연대였다.

자신의 소멸만을 바라는 냉소적 악당이 찾아가는 사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에 등장하는 빌런 조부 투바키 (스테파니 수 분)는 세상에 있는 모든 멀티버스 내 존재하는 자신(조이)이 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흡수한 상태다. 즉, 모든 저력을 다 관철해 버렸기 때문에 극단적 염세주의에 휩싸여 냉소적 태도만 남아 자신의 소멸만을 바랄 뿐이다. 그녀에게 열정 가득한 뜨거운 삶이란 조소의 대상이다. 그런 그녀가 찾아가는 것은 현 유니버스의 엄마인 에블린(양자경 분)이다. 에블린은 모든 유니버스를 통털어 가장 별로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서 절명을 택하려는 자신을 잘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보잘것 없는 삶이 증명된 에블린은 현재 자기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딸인 조이(스터파니 수 분)는 점점 살이 찌는 데다 레즈비언 애인을 데려온다. 아빠(제임스 홍 분)는 에블린을 인정하지 않으며, 남편인 웨이먼드 (조너선 케 콴)와 앙상블도 맞지 않는데다 이혼 서류를 받는다. 운영하는 세탁소도 맘에 안 든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세탁소 운영이 아닌 배우의 길을 걸었다면, 아빠와 좀 덜 싸웠다면, 미국으로 오지 않았다면...그녀는 그렇게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딸인 조이의 알파버스 버전인 조부 투바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조이야, 너네 엄마가 어떤 사람이냐면..

붕붕 돌아가는 거대한 베이글, 원형이 주는 부정과 긍정

원circle 하면 연상되는 것에 숫자 0이 있다. 이것이 가진 어떤 부정적 이미지는 조부 투바키가 무기처럼 활용하는 거대한 베이글로 투사된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인 알파버스의 에블린 뿐 아니라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에블린 마저도 베이글에 밀어 넣어 소멸시켜 버렸다. 현 세계의 에블린이 워낙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인지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의 에블린은 꽤 흡족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부 투바키가 보기엔 그저 따분한 야유 거리일 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에블린들을 제거해 왔을 것이다.

거대한 베이글은 공중에 떠서 붕붕 돌아가며 에블린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에블린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은 단지 소멸의 무서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매일같이 진상 손님들이 찾아오는 세탁소에서 돌아가는 드럼 세탁기의 전면, 그것은 에블린에겐 쳇바퀴같은 지긋지긋한 일상을 대변하는 어떤 모형이다. 게다가 국세청 직원인 디어드리 (제이미 리 커티스)가 잘못된 영수증이라며 강조하기 위해 그리는 원형의 펜 선 또한 에블린의 삶의 증빙이 틀렸음을 강조해주는 틀이 된다.

에블린 남편 웨이먼드는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보기엔 각종 멀티버스의 존재들이 이곳에 모여 싸움의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힘겨운 상황 속에서 해야 할 행동에 관하여 아주 심플한 답을 내놓는다.

상대에게 더 다정하게 굴면 되잖아

웨이먼드가 장난스레 붙여놓은 인형 눈깔은 이후에 베이글에 대항하는 어떤 긍정적 의미의 원circle 형이 된다. 그리고 에블린은 모든 경험을 하고 돌아온 후, 자신의 이마에 인형눈깔을 붙이고 각성한다. 거기에 웨이먼드가 던진 말과 더불어 스스로의 내부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조부 투바키처럼 외부 환경만 탓하던 에블린은 세상에 대한 다정함을 인생의 법칙으로 복구하는데 성공한다.

이마에 인형눈깔 붙이고 각성한 에블린(양자경 분)

포스터 디자인이 왜 이런가 했지

가장 강력한 힘은 애틋하고 살가운 공감과 다정함

이제, 클라이막스가 되어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의 부하들을 물리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알파버스의 에블린 아버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세상의 안녕을 위하여 조부 투바키를 그저 제거하려고 했다. 공동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포옹이 아니라 원인제공자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성세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마에 인형눈깔을 붙인 에블린은 격퇴가 아니라 포합을 택한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홀아비 빌런이 들고 있던 수류탄은 생전에 아내가 사용하던 향수로 바꿔 버린다. 덤비던 두 남녀 빌런에겐 두 사람이 결혼하도록 해서 행복하게 만들어 버리고, 매저키스트 회사원에겐 채찍 어택을 제공하면서 그들이 심연 깊숙히 원하던 것을 제공하며 해방시켜 버린다. 시크하고 쿨한데서 오는 심드렁한 정서가 멋있다고 생각한 세대와 그것을 정겨움으로 거두는 존재의 완벽한 화합이 펼쳐진다.

다정함이 힘이라고 했던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는 결국 애틋하고 살갑게 배려하고 공감하는, 다정함이었던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을 밀어내고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것을 보면 이것은 이미 2만 년 전에 공고해진 진리였다.

돌멩이를 보고 울게 될 줄이야 ㅜㅠ

때론 비를 같이 맞는 게 위로, 차가운 우주는 멋지지 않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우주의 수많은 '나'를 보여준다. 그 중엔 엄마와 딸이 돌멩이로 치환된 차원이 있다. 조이로 대변되는 작은 돌멩이 곁에는 엄마인 큰 돌맹이 에블린이 있다. 작은 돌멩이는 예상치 못한 호의에 당황하며 절벽에 몸을 던진다. 엄마돌은 딸돌을 잡아낸다. 하지만 손을 놔달라는 딸의 요구에 손을 놓고 함께 몸을 던져 데굴데굴 구른다. 누구나 비 맞는 상대방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저 함께 하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때론 함께 비를 맞아주자. 함께하는 시간만큼이나 마음도 담뿍 젖을 것이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