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리부트, 시퀄과 프리퀄 같은 용어들이 업계를 넘어 대중에 보급된 건 사실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리즈물이었다는 사실이 애초에 공표되지 않았다면, 제 아무리 활짝 열린 결말을 자랑하는 작품이더라도 관객들은 그 마무리를 속편을 위한 단서로 여기지 않았다. 시리즈물 역시 대부분 1편의 성공을 2편이 담보하지 못했다. 소포모어 징크스 같은 용어나 '형 만한 아우 없다'라는 속담들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오래 통용되는 배경에는 수많은 '망한 속편'들이 있었다.

오리지널보다 더 나은 속편이 나오기는 매우 힘들다. 일단 속편의 제작 근거는 오리지널의 흥행이다. 오리지널이 돈을 벌지 못한다면 이미 기획된 속편이라도 엎어지고 만다. 하지만 흥행과 함께 얻은 수익과 팬은 매우 많은 경우 의무로 변해 속편의 발목을 잡는다. 팬들에게는 이미 그들이 원작을 통해 얻은 만족감을 충족시켜 줘야 하며, 수익을 보고 달려든 투자자들의 참견을 죄 들어 줘야 하는 탓이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세계적으로 취향의 다품종화 및 다각화에 가속이 붙고, 소규모 소량생산으로도 어느 정도의 수익 확보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업계의 생산 방식이 기획 생산에서 반응 생산으로 바뀌는 이유다. 시장 진입 전 수요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 나온 '싹수 있는' 수요를 공략한다. 더 이상 새로우면서도 '팔리는' 것이 탄생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하나의 IP(지식재산)로 '원 소스 멀티 유즈'가 가능한 환경은 조성됐다. 검증된 IP의 재활용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건 그 때문이다. 여전히 속편은 오리지널 팬과 신규 투자 자본을 만족시켜야 하지만, 상황은 훨씬 나아진 셈이다.

영화 <콘스탄틴>

그럼에도 위대한 작품의 속편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국면에서 <탑건: 매버릭>의 엄청난 월드와이드 흥행은 시장에 고양감을 불어 넣기 충분했다. 지난해 팬데믹 여파를 겨우 빠져나온 극장가엔 유독 속편의 성적이 좋았다. 그간 속편 제작 소문만 무성했던 작품들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2005년 개봉된 이래 무려 17년 동안 속편 이야기가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한 영화 <콘스탄틴>은 그 중 하나다. DC코믹스 레이블 DC블랙(舊 버티고) 만화 <헬블레이저>가 원작이지만 현재의 DC 확장 유니버스와는 관계 없는 작품이다. 주인공 존 콘스탄틴 캐릭터를 맡은 배우 키아누 리브스 자체가 <매트릭스>나 <존 윅> 시리즈 등 유독 컬트적 인기를 얻은 작품을 이끌어 온 터라 <콘스탄틴> 역시 주연 교체 없이 그가 계속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애연가라는 점 말고는 원작과 전혀 다른 존 콘스탄틴을 지금도 회자되는 캐릭터로 만든 건 키아누 리브스의 영향이 크다.

영화 <콘스탄틴>

속편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된 건 2020년 여름부터. <콘스탄틴>의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이 그 해 코믹콘에서 영화 개봉 15주년을 언급하며 속편 제작 이야기를 꺼냈다. 만일 속편을 만든다면 '청소년 관람불가'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 2020년 11월 피터 스토메어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이었다. 영화에서 루시퍼 모닝스타를 연기했던 그는 "<콘스탄틴> 속편 제작 중"이라는 글을 남겼고, 모두가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막상 워너브라더스가 확실한 답을 내놓지 않으며 다시 기대감이 가라앉기도 했다. <콘스탄틴> 개봉 당시에도 이미 40대였던 키아누 리브스가 환갑에 가까워진 시점에서, 리부트가 아닌 속편 영화 제작이 곤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존 콘스탄틴 등장이 유력했던 <저스티스 리그 다크> 감독 하차나 <콘스탄틴> 드라마 흥행 참패 등의 사건들도 기대를 저해하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키아누 리브스는 줄곧 <콘스탄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2022년 9월, <콘스탄틴>의 속편 제작이 드디어 공식 확정됐다. 키아누 리브스와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은 그대로 함께 하기로 했다. 아직 개발 단계지만 어쨌든 아예 기약 없는 기다림은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기까지 오면 궁금해질 법도 하다. 어째서 <콘스탄틴>은 '(본 사람에 한해) 모두가 속편을 기다리는 영화'의 대명사가 됐을까?

<콘스탄틴>의 주인공은 여느 히어로물처럼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졌고, 스토리도 몹시 단순하다. 하지만 존 콘스탄틴은 다른 영웅들과 달리 이 세상에 없는 것을 갈구한다. 같은 DC 코믹스의 히어로로 예를 들면, 배트맨과 슈퍼맨은 이 세상의 정의가 행동의 기본 원칙이다. 정의로운 행동 이후를 탐구하기 보다는 다만 악의 반대편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콘스탄틴은 다르다. 이미 어릴 적부터 삶에 큰 미련이 없던 그가 인간계로 내려온 악마 혼혈종들을 때려 잡는 까닭은 구원받기 위해서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신의 구원을 받는다는 건 천국에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단순히 돈이나 명예, 공명심을 충족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훨씬 애처롭고 가련한 소망이다. 아예 세상 바깥의 막연한 가치를 갈구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승의 삶에 일말의 희망도 품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존 콘스탄틴이 '시종일관 폼만 잡는 중2병 환자'라는 오해를 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영화 <콘스탄틴>

<콘스탄틴>은 '세속적 삶을 끝내고', '천국으로 간다'라는 주인공의 소원이 반 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출발한다. 히어로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과거가 그리 별난 건 아니지만, 여기에 담배를 많이 피워서 폐암 선고까지 받은 히어로는 전무후무하다. 이 같은 설정은 존 콘스탄틴과 <콘스탄틴>을 관객의 뇌리에 분명히 각인시킨다. 더불어 키아누 리브스를 만나 더 빛을 발한 깔끔한 수트, 중국 담배와 라이터, 혼혈 악마와의 대결을 위해 마련된 특수 무기들은 그 자체로 컬트적이다.

특히 십자가로 만든 권총은 오타쿠들을 미치게 하는 요소를 전부 갖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에서 태어난 이 총은 청동과 금으로 만들어진 바디에 온갖 종교적 의미를 담은 라틴어 멘트들이 각인돼 있는데, 현대식으로 연발까지 된다. 이 총에서 성수가 담긴 특수 총알이 발사되면 악마들은 인간계에서 지옥으로 가야 한다. 화려한 무기의 향연과 종교 의식 같은 전투들이 지나가고, 극적으로 수명이 연장된 존 콘스탄틴은 LA 시내를 내려다보며 담배 대신 (금연을 위한) 껌을 꺼내 씹는다. 그 마지막 모습에 정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영화 <콘스탄틴>

언급했듯 <콘스탄틴>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지만, 주제 의식은 무슬림의 '인샬라'에 가깝다. 모든 건 신의 뜻대로지만, 그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뜻을 이룬다. 이 명제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야 삶이 덜 괴롭다. 그래서 <콘스탄틴>에는 설정이 많을 지언정 어떠한 복잡함도 없다. 남녀 주인공이 키스 한 번 하지 않는 해피엔딩도 신의 뜻대로, 무지성으로 받아 들이기만 하면 되는 쿨한 히어로가 17년 동안 기다림의 대상이었던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존 콘스탄틴은, 결국 담배를 끊는 데 성공했을까?


칼럼니스트 라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