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95회를 맞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3월 13일 오전 (한국시간 기준) 열리기 앞서, 후보작을 공개했다. 후보들을 둘러싼 주요 이슈들을 짚어봤다.
최다 부문 후보작
올해 최다 부문 후보작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등 총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후보에 오른 수가 많다고 수상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파란을 일으킨 3년 전 시상식에 <조커>가 11개 부문 노미네이트 됐지만 남우주연상(와킨 피닉스)과 음악상(힐두르 구드나도티르) 두 부문에서만 수상한 바 있다. 평단이나 대중의 지지가 쏟아진 작품이지만 키치적인 연출과 유머러스한 전개, 아시안 중심의 인물 설정 등이 아카데미 회원들의 보수적인 성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아시아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성사될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을 둘러싼 수상 결과 중 가장 기대가 쏠리는 부문은 단연 여우주연상일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홍콩영화계와 할리우드에서 활약해온 배우 양자경은 100년에 육박하는 오스카 역사상 아시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더욱이 양자경은 1997년 <007 네버 다이>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배우라 더욱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2005년 <에비에이터>로 받은 조연상과 2014년 <블루 재스민>으로 받은 주연상에 이어 세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노리는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과 케이트 윈슬렛, 제니퍼 애니스톤, 기네스 펠트로 등 여러 여성 배우들이 공개 지지한 <투 레슬리>의 안드레아 라이즈보로가 강력한 대항마로 손꼽힌다.
모두 처음입니다
남우주연상 후보로 손꼽힌 다섯 배우는 모두 올해로 처음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7회 시상식 이후 88년 만에 처음 있는 일. 73세의 빌 나이(<리빙>)도, 26세의 폴 메스칼(<애프터 썬>)도 마찬가지다. 베니스 영화제와 골든 글로브를 비롯한 유수의 시상식을 휩쓸고 있는 <이니셰린의 밴시>의 콜린 파렐이 유력한 후보로 손꼽히고 있는데, 지난 20년간 60%가 넘는 빈도로 실존인물을 연기한 배우에게 상을 준 오스카가 <엘비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기한 오스틴 버틀러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농후하다. 270kg의 남자가 딸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더 웨일>의 브랜든 프레이저의 수상도 기대해봄 직하다.
한 부문, 두 배우
조연상 후보도 흥미롭다. 여자와 남자 조연상 후보 모두 특정 한 영화의 두 배우가 동시에 노미네이트 됐다. 여우조연상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제이미 리 커티스와 스테파니 수, 남우조연상은 <이니셰린의 밴시>의 브렌든 글리슨과 배리 키오건이 후보에 올랐다. 이처럼 같은 부문에 두 배우가 후보가 된 건 1960년 이후 처음인데, 당시엔 그 배우들이 모두 조연상 수상엔 실패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와 같은 결과가 재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최초로 오스카 연기상 후보에 오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안젤라 바셋이 여우조연상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키 호이 콴이 남우조연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50년째 현역으로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이 사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자전적인 영화 <더 파벨만스>로 다시 한번 오스카 감독상 후보가 됐다. 1978년 <미지와의 조우> 이후 <레이더스>(1981), <E.T>(1982), <쉰들러 리스트>(1993),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뮌헨>(2005), <링컨>(2012),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 이번 <더 파벨만스>까지 통산 9번째 노미네이트인데, 이로서 스필버그는 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6개의 10년대에 모두 감독상 후보에 오른 기록을 세우게 됐다. 70년대 초 데뷔해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또 다른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는 1981년 <분노의 주먹>으로 처음 감독상 후보에 올라 스필버그의 기록엔 못 미친다.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이어 세 번째 감독상을 받게 된다면 프랭크 카프라와 윌리엄 와일러의 뒤를 잇게 되는 셈이다. 한편 스필버그를 비롯한 이번 후보에 오른 감독들은 모두 각본상 후보에도 노미네이트 됐다.
의외의 복병
이번 후보군에서 유독 눈에 띄는, 낯선 작품이 있다. 독일의 전쟁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다. 작품상을 비롯해 각색상, 외국어영화상, 음악상, 음향상, 미술상, 촬영상 등 9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학교 친구들과 징병된 17세 소년이 경험하는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작품으로, 작년 9월 토론토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돼 10월 넷플릭스를 통해 널리 서비스 되고 있다. 전쟁의 허무함에 초점을 맞춘 반전영화라는 호평이 많다.
음악상/주제가상 단골 후보 둘
음악 관련 두 부문엔 반가운(?) 후보가 눈에 띈다. 음악상의 존 윌리엄스와 주제가상의 다이앤 워렌이다. 윌리엄스는 오랜 파트너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파벨만스>로 무려 53번째 후보로 지명되면서 재작년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로 세운 제 기록을 경신했다. 그가 음악상을 받은 건 <지붕 위의 바이올린>(1971), <죠스>(1975), <스타워즈>(1977), <E.T>(1982), <쉰들러 리스트>(1993) 등 총 5번이다. <텔 잇 라이크 어 우먼>의 주제가를 작곡한 ‘Applause’를 작곡한 다이앤 워렌은 1987년 <마네퀸>으로 처음 후보에 오른 이래 올해까지 14번째로 지명됐다. 특히 2017년부터는 6년 연속 지명됐는데, 안타깝게도 단 한번도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한 적이 없다. 올해 공로상을 받기로 예정된 워렌이 주제가상까지 거머쥐게 될까.
<헤어질 결심> 외국어영화상 후보 불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할 것인가. 한국 대중이 올해 오스카에서 가장 기대한 것일 터. 박찬욱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올드보이>부터 꾸준히 해외에 소개됐고, 직접 할리우드에서 <스토커>(2013)를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해 칸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 역시 지난 10월 북미에 개봉돼 좋은 반응을 얻었기에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의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다. 허나 다섯 작품의 후보 중 <헤어질 결심>은 없었다. 영미권 평자들은 올해 오스카의 중대한 실수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헤어질 결심>을 배제시킨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올해 후보에 오른 5편 중 아르헨티나의 <아르헨티나, 1985>를 제외한 작품들이 모두 유럽 국가들로 구성됐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