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토르: 러브 앤 썬더> <로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15일, 약 5년 만에 시리즈 3편으로 돌아온 앤트맨의 반응이 뜨겁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2023년 포문을 활짝 연 <앤트맨과 와스프 : 퀸텀매니아>는 무자비한 최강의 빌런 정복자 캉을 막으려는 앤트맨과 동료들의 고군분투를 담았으며,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를 자랑한다. 캉과 같은 강인한 악당을 스캇 랭(앤트맨)이 혼자 당해내긴 쉽지 않다. 호프(와스프)와 호프의 부모인 재닛, 행크가 그의 곁에서 힘을 싣지만 스캇을 가장 굳세게 지지해 주는 파트너는 따로 있으니, 그의 딸 캐시 랭이다. 1, 2편에 이어 딸바보의 극치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스캇과 아빠 덕후 캐시의 케미는 <앤트맨> 3편의 인기몰이에 큰 힘을 싣고 있다는 반응이다.
이처럼 다수의 히어로들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뿌리 같은 힘이 바로 가족의 사랑이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서사는 단골손님처럼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앤트맨처럼 재미는 물론 감동까지, 다양한 감정을 견인하는 부녀 케미 (혹은 실제 부녀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모습)를 선보인 ‘딸바보’ 히어로는 누가 있는지 살펴보자.
‘개과천선 아빠파워’ 스캇 랭과 캐시 랭
앞서 언급된 귀여운 이 부녀 케미의 시작은 스캇의 출소 직후이자 캐시의 6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별 볼일 없던 이혼남이자 전과자인 스캇에겐 캐시가 세상 전부였다. 세상 간지러운 애칭인 피넛으로 캐시를 부르는가 하면, 자택연금 중에도 그와 놀아주기 위해 DIY 키즈카페(?)를 만드는 등 지극한 딸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은 러닝타임 내내 셀 수 없이 쏟아진다. 이런 아빠의 지대한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 캐시 역시 엄마와 새아빠인 팩스터가 탐탁지 않아 하는 스캇을 자신의 영웅으로 생각하며 따랐다.
거짓말처럼 <앤트맨>에서 스캇은 캐시가 그리던 영웅이 된다. 더 이상 범죄에 손대지 않고 캐시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스캇이 행크의 요청을 받아들여 2대 앤트맨이 되면서, 세상을 구하는 진짜 영웅으로 거듭난 것이다. 영웅으로서 첫 사투는 역시 딸을 위한 것으로,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원자보다 작은 크기로 몸을 줄이며 악당을 막아낸 이른바 장난감방 전투이다. 이 싸움을 시작으로 첫술을 뜬 스캇이 어벤져스에 합류해 세상을 구하게 된 것은 사랑하는 캐시를 위한 희생이 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캐시는 스캇을 살게 하고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캐시는 멋진 아빠와 아빠의 콤비 호프를 보며 자신이 아빠의 파트너가 되고 싶다는 깜찍한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위기에 처한 아빠를 위해 착한 거짓말을 하는 뛰어난 임기응변과 아빠를 세계 최고의 할머니라고 칭찬하는 엉뚱함을 갖춘 그가 아빠의 파트너가 되겠다는 바람을 과연 이룰 수 있을지 팬들의 궁금증이 증폭되기도 했다.
스캇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귀염둥이 피넛이였던 캐시는 '블립' 사건 후 성숙한 소녀로 재등장했다. 무해하고 고운 아빠의 심성을 닮아 올바르게 자란 캐시가 스캇과 함께 어떤 활약을 펼칠지, 과연 두 부녀는 훌륭한 파트너가 됐을지 그 정답은 <앤트맨과 와스프 : 퀸텀 매니아>를 통해 살펴보자.
‘3000만큼 사랑해’ 토니 스타크와 모건 스타크
블립 사건 이후 실의에 빠진 토니를 일으켜 세운 새로운 존재가 생긴다. 바로 토니의 딸 모건 스타크이다. <어벤져스 : 앤드게임>에 등장한 모건은 토니가 도심을 떠나 오직 가족을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그를 찾아와 현 사태를 바로잡자는 어벤져스 멤버들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한 이유도 사랑하는 딸 때문이다. 늘 바쁜 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랐던 토니는 모건에게 그런 결핍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시간 여행이라는 위험한 작전으로 자신이 세상을 떠난다면 모건이 견뎌야 할 슬픔의 무게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든 모건은 토니에게 꼭 지켜야 할 대상으로 자리 잡으며 아버지가 된 그를 변화시킨다.
모건 역시 그런 토니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잘 따른다. 깊은 고민에 빠진 아빠 곁에 몰래 다가와 어른스러운 멘트로 아빠를 웃음 짓게 한다. 엄마는 고작 9~300만큼 사랑한다고 했겠지만, 아빠는 무려 3000만큼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이렇듯 여느 평범한 부녀처럼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두 사람. 매사 까탈스러워 보이던 아이언맨을 무장해제 시킨 모건과 아빠가 된 아이언맨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어벤져스 : 앤드 게임>을 복습해 보자.
천둥과 사랑이 힘을 합친다면? 토르와 러브
타노스를 막아내고 평화가 찾아온 세상도 잠시, 신들을 도살하려는 고르가 등장한다. 고르는 죽어가는 자신의 딸을 위해 신에게 기도하지만 외면당하고 딸은 그렇게 죽게 된다. 토르는 제인과 재회한 기쁨을 누리자마자, 자신을 위협하는 고르와 맞서게 된다. 모든 신을 없애달라는 소원을 빌려는 고르를 설득하여 그의 죽은 딸을 살리게 한다. 그리하여 불치병에 걸린 제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공허한 그의 옆자리를 되살아난 고르의 딸이 채우게 된다. 토르는 적이었던 남자의 딸을 자신의 딸로 기르게 되는 기막힌 인연을 맞는다.
이들은 앞서 등장한 스캇과 캐시, 토니와 모건처럼 실제 부녀는 아니기에 서로 합을 맞춰가며 서서히 가족이 되어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여럿 잃은 토르 곁에 새로운 가족이자 파트너가 생긴 것이다. 러브는 토르의 첫사랑인 망치 묠니르에 귀여운 낙서를 하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분풀이를 하는 등 심통을 부리곤 한다. 러브가 토르를 얼마나 편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토르 역시 그에게 스톰 브레이커를 들러주고 우주 곳곳을 함께하는 등 최선을 다한다. 함께 약자를 위해 전투에 나서며 러브와 썬더라는 닉네임이 붙은 이들이 앞으로 어떤 케미를 보여줄지 기대가 증폭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로건과 로라
로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딸을 갖게 된다. 그의 DNA가 허락 없이 개발되어 탄생한 인공 뮤턴트이자 무기인 로라가 그 딸이다. 이들의 만남은 강렬하다. 겉보기에 작고 소중한 로라는 자신을 해치러 온 용병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용병의 잘린 머리를 들고 나타난다. 그의 손과 발에서 뻗어 나오는 아다만티움 클로를 보며 로건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 어떤 접촉 없이 자신의 DNA로 탄생한 생물학적 딸에게 로건은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하지만 뮤턴트로서의 삶, 그리고 힐링팩터로 인해 죽을 수 없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떠안은 로라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악 지르며 로건에게 대들던 로라도 성치 않은 몸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보호하는 로건을 천천히 아빠로 인정하게 된다.
사실 이 둘은 능력뿐만 아니라 성질머리마저 똑같아 누가 봐도 부녀 관계로 인식된다. 아무에게나 으르렁거리는 로라를 보며 로건은 골머리를 앓았겠지만, 관객들이 옛날의 로건을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을 쫓는 일당들을 자비 없이 썰어버리는 화끈함마저 똑 닮았다. 불같은 성격에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가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지하는 모습은 먹먹한 감동을 자아낸다. 관계의 다각화를 보여주는 이 부녀가 끝내 어떤 엔딩을 맞을지 궁금하다면 <로건>을 시청해 보자. 물론 손수건과 함께 말이다.
(물론 증오가 더 크지만) 애증이라는 이름의 가족 - 타노스와 가모라, 네뷸라
세상에 훈훈하기만 한 부녀관계만 있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타노스와 가모라, 네뷸라 자매처럼 도대체 왜 가족인 건지 이해하기 힘든, 부녀 관계 절망 버전도 있다. 타노스는 오직 무기로 쓰기 위해 이들을 입양했다. 아니 그들의 가족에게서 뺏어왔다. 가모라와 네뷸라는 그를 사랑하진 않지만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타노스식 육아법은 그런 그들을 서로를 경쟁하게 만들어 자매 관계에 크고 작은 분열을 가득하게 만들었다. 타노스는 가모라와의 경쟁에서 뒤처지던 네뷸라의 신체를 개조해버리는 인정사정없는 양아버지다. 그러니 가모라와 네뷸라가 타노스의 양녀가 됐을 때부터 싹트던 원한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난 것도 이상하지 않다. 네뷸라와 달리 가모라는 타노스의 총애를 받긴 했지만, 자신의 고향을 파괴하고 시민들을 학살한 타노스를 달갑게 생각할리 만무하다.
여기까지 보면 이들은 증오하는 관계 같지만, 소위 말하는 정이 아주아주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복잡한 양상을 가진다. 소울 스톤의 행방을 취조하기 위해 가모라를 잡아온 타노스가 그의 밥을 챙겨준다거나, 타노스를 죽였다고 생각한 가모라가 펑펑 우는 장면이 그 이유를 뒷받침한다.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물건을 바쳐야 할 때 가모라를 희생시켰던 타노스를 보면 이들은 가족으로서 서로를 생각하긴 하지만, 증오가 그 위에 높게 쌓여있는 평범하지 않은 관계라고 감히 정의해 본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