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시민 케인>을 안 볼 수 있죠?"

"그러는 당신은 <사운드 오브 뮤직> 봤어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가 나눈 대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적이 없고, 마고 로비도 <시민 케인>을 안 봤다며 놀림을 당했다. '고전'이나 '명작'이라는 수식을 단 채 오래도록 칭송되는 영화들은 많지만, "그 영화 봤어?"라는 질문에 이들처럼 우물쭈물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묻는다. 혹시 당신에게도 안 봤다기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고, 봤냐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영화들이 있는가? 그런 고전 혹은 명작들을 소개하는 '솔아안 시네마'로 안내한다.


*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수였든 고의든, 법에 저촉되든 그렇지 않든,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대상이 자신이든 타인이든 마찬가지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는 일생에 걸쳐 반드시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다만 '인간다움'은 잘못 이후에 결정된다. 인간의 DNA를 갖고 있지만 잘못을 범하고도 후회와 반성을 하지 못하는 존재를 인간답다고 할 수는 없다. 이 후회와 반성을 만든 '죄책감'은 인간으로 하여금 '보다 옳은'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무단횡단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이때 무단횡단을 하는 이는 그것이 잘못인 줄 알고 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타당한 이유를 만든다. 무단횡단이라는 잘못을 쓰레기 줍기라는 선행으로 상쇄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죄책감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 가운데 하나라면, 그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합리화도 인간이 보유한 보호 능력이다.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떨까. 술에 잔뜩 취한 친구를 대신해 친구 차 운전대를 잡았는데, 뒷좌석 주정에 한눈을 팔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차라리 산짐승이길 바랐지만 차로 들이받은 것은 사람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사람 앞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당장 경찰 등 당국에 신고를 하고, 응급처치나 병원 이송 등 피해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노력을 해야 한다. 이후엔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지 않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조사를 받아 죗값이 있다면 치러야 한다. 이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쓰러진 피해자를 보면서 자신이 범죄자가 된 후의 미래부터 상상하는 가해자가 적지 않다. 그건 죄책감을 이기는 두려움이며, 여전히 뺑소니 사고가 벌어지는 배경이다. 또 가해 차량에 탄 인원이 많을수록 두려움의 크기는 더 크고 농도는 더 짙어, 죄책감은 더 빠르고 간단히 희석될 것이다.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네 명의 남녀가 한밤중 드라이브를 하다가 행인을 차로 들이받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사람이 지나다녀선 안될 길이었지만, 어쨌든 운전자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였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피해자를 두고 줄리(제니퍼 러브 휴잇)와 헬렌(사라 미셸 겔러)은 경찰에 사실대로 말하면 정상참작이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 만취한 베리(라이언 필립) 대신 운전을 한 레이(프레디 프린즈 주니어)는 죄책감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세 사람 앞에서, 베리는 시체를 유기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끝까지 자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줄리에게 곧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는 대학교 이야기를 꺼낸다. 줄리를 잠식하고 있던 죄책감은 두려움으로 바뀌고, 결국 이들은 공범이 된다. 피해자를 바다에 던지려던 찰나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오히려 네 사람은 피해자의 숨통을 끊어놓다시피 한 후 고향을 떠난다.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그 후 1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내던 네 사람. 타지로 대학을 다니는 줄리 외에는 모두 어촌인 고향에서 지내고 있었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줄리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 한 통을 받는데, 내용은 이 영화의 제목인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라는 짧은 문장뿐이었다. 지난 여름 그에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줄리의 죄의식이 되살린 건 7월 4일 벌어진 사건이었다. 당시의 죽음이 사고사로 처리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신문으로 지켜본 유일한 인물 줄리는 공범들을 모아 사태에 대해 상담한다. 그러나 이미 피해자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생각하는 세 사람은 편지가 산 사람의 복수일 것이라고 믿으며 애먼 사람들을 잡고 다닌다.

이때 가장 먼저 시체를 버리자고 했던 베리가 우비를 입고 갈고리를 든 남자(일명 피셔맨)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줄리와 헬렌은 본격적으로 편지의 발신인을 찾아 나선다. 이들은 뉴스를 통해 확인했던 사망자의 이름 '데이빗 이간'의 가족과 친구들을 쫓던 중, 2년 전 같은 날 데이빗의 약혼녀 수지가 차에 탄 채로 익사했던 사망사고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단서들을 접하기 위해선 데이빗이 죽은 후 유족들의 삶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도 목도해야만 했다. 고개를 든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줄리에게, 헬렌은 "그건 사고였고 우리에겐 그를 죽일 힘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데이빗이 수지의 죽음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펼친다. 그런 헬렌을 경멸하듯 바라보는 줄리였지만, 줄리가 1년 전 외면한 사건을 다시 추적하는 이유 역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사건이 앗아간 자신의 인생을 되찾고 싶다고 태연히 부르짖는다. 이미 연루된 네 사람 모두가 자신들을 사망 사건의 피해자로 여기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죄책감과 이를 정당한 방법으로 반성하지 않고 회피했다는 수치심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시작한 합리화는 결국 가해자인 네 사람이 피해자인 가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사건이 이미 종료된 후에도 이들은 피셔맨의 정체를 집요하게 추적하지만, 그건 억지로 축조한 가상 세계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불과하다. 피셔맨을 찾는다고 뺑소니 범죄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날 데이빗을 죽인 것이 피셔맨이었고, 피셔맨은 데이빗의 약혼자 수지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살아남은 줄리와 레이의 안도를 비춘다. 두 사람은 그저 자신들이 살인사건의 공범이 아니었음에 만족하며 다음 1년을 행복하게 살아간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가 인간이 두려움 앞에서 어디까지 인간다움을 저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 준 극한의 사회 실험으로 읽히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라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