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MBTI가 유행하면서 편해진 것이 하나 있다. 우리 부부의 성격을 단박에 정의할 단어가 나온 것이다. 우리는 무계획으로 대표되는 P형 인간이다. 신혼여행 숙소를 예약하지 않아 여관에서 잘 뻔한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럴 때면 할 수 있는 변명거리도 생겼다. “아, 우리 P라서 그래”

그런 우리가 결혼이라고 제대로 준비했겠는가. 결혼식장만 잡아놓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다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필두로 긴급회의까지 소집됐었다. 유부녀 친구들과 웨딩플래너 동창이 아니었다면 <부부 명화>에서 부부는 빠졌을 수도 있겠다.


결혼 5일 남겨두고 준비 안 된 커플도 있다구

영화 <웨딩위크>는 결혼을 5일 앞둔 예비신부 사라와 예비신랑 타일러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웃기게도 이들의 결혼식은 사라의 아버지 러스틱이 진두지휘한다. 미국 문화가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딸의 결혼식을 아빠가 준비한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의 주인공도 단연 러스틱이다.

하지만 러스틱의 결혼 준비는 순탄치 못하다. 결혼식장으로 정한 호텔부터 말썽이다. 최고급 스위트룸이라는 광고를 보고 예약을 했는데 내부는 구닥다리 그 자체다. 화려한 샹들리에도 없고 최신식 기계도 없다. 오래된 가죽 의자 한 개만 초라하게 세워져 있다. 특별한 것이 없냐는 러스틱의 질문에 호텔 지배인은 빵을 바삭바삭하게 구워내는 토스터기가 있다며 자랑스레 말한다. 거기에다 화룡점정, 호텔은 물까지 새기 시작한다.

축가는 초등학생 조카에게 맡겼다. 그런데 그 조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쪽이'다. 리코더 연주라도 기깔나게 하나 했더니 조카의 주 종목은 다름 아닌 디제잉. 신성한 결혼식이 그야말로 춤판이 되게 생겼다. 거기에다 조카는 축가를 하기 싫다고 생떼까지 쓴다. 러스틱은 정말 진땀이 난다. 하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고용한 마술사도 문제다. 재미없는 농담만 하고 철 지난 비둘기 마술만 잔뜩 준비했다. 딸의 결혼식을 5일 앞두고 러스틱은 모든 일이 꼬였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마냥 웃지 못한다. 러스틱 못지않게 우리의 결혼 준비도 꽤 우스꽝스러웠다. 웨딩드레스 피팅을 하는데 속바지를 챙겨가지 않아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안구 테러를 가했고, 웨딩사진을 찍는데 네일아트를 하고 가지 않아 그 유명한 반지 사진도 못 찍었다. 청첩장 문구는 미루고 미루다 결국 인터넷에서 복붙해서 제출했고, 삐까뻔쩍 해야 할 웨딩카는 운전 연습용으로 구매한 20년 된 중고차가 대신했다.


결혼식 주인공은 하객 아닌가요?

이런 우리 부부도 최선을 다했던 부분이 있다. 우리 결혼식의 1순위는 하객이었다. 결혼식장을 선택할 때에 주차와 음식을 가장 신경 썼다. 신부가 예뻐보이는 홀보다 하객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홀을 선택한 것이다. 결혼식을 왔다가 혹여 주차 딱지를 떼일까 넓은 주차장을 고려했고, 제대로 된 한 끼를 대접하고자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곳으로 선별했다. 남들 다 하는 신부 관리는 번거롭다는 핑계로 안 받았다. 하지만 결혼 답례품을 고를 때에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러스틱도 딸 사라의 결혼식에 올 친척들을 한 명 한 명씩 챙긴다. 다만 코미디 영화의 특성상 그것이 조금 과할 뿐. 우선 사라의 증조부를 데리러 공항으로 가는데, 증조부의 다리가 없다. 아버지에게 급히 전화를 하니 당뇨 때문에 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그런 증조부를 보살필 간병인도 없다. 휠체어도 고장 났는지 접히지도 않는다. 결혼식까지 증조부의 시중은 러스틱의 몫이 됐다.

마약 중독 사촌도 있다. 치료받는 중인 사촌을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술도 마시면 안 되고 음악도 틀면 안 된다. 이대로라면 사라의 결혼식은 묵언수행하는 절간이 되게 생겼다. 하지만 러스틱은 그런 사촌을 살뜰히 챙긴다. 여러 사람들에게 사라의 결혼식을 알리다 보니 러스틱의 집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버린다. 이웃사촌들까지 다 불러 모아 사라의 결혼식에 대해 의논한다.


너무 다른 집안이 만났다. 대환장 파티!

가족이 몰리는 사라네 집과 달리 예비 신랑 타일러의 집은 조용하다. 심지어 타일러의 부모님은 결혼에 크게 관심 없는 눈치. 러스틱은 사돈에게 이것저것 물으려 전화를 걸지만 사돈은 영 귀찮아한다. 재력도 크게 차이 난다. 비가 새는 호텔임에도 결혼식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러스틱과는 달리 사돈은 돈이 많은 외과의사다. 그런 둘이 만나니 통할 리가 없다.

사돈은 결국 아들 타일러를 설득한다. “(사라가) 괜찮은 얘이긴 하지만, 주변을 봐. 전부 가난뱅이뿐이잖아” 이런 진지한 말을 하는 와중에도 사라네 가족들은 사돈에게 도움만 받으려고 한다. 비뇨기과 의사도 아닌데 팬티를 벗으면서 진료를 부탁하는 추태까지 보인다. 사돈의 말대로 사라네 집은 정말 엉망진창이다.

자식이 좋다는데 결혼을 무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돈은 마음이 답답하다. 참다 참다 결국 러스틱에게 소리친다. “여기서 멈춥시다. 99퍼센트 싸구려 결혼식.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내가 준비할게요. 비서한테 연락하면 다 알아서 해줄 거예요. 제발 그만해요. 제가 돈으로 해결할게요”

한국이었다면, 아니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면 이 결혼은 파투가 나도 진작에 파투 났다.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라고 하지 않는가. 러스틱과 사돈이 큰 소리 내며 싸우는 마당에 결혼은 무슨 결혼인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부에게 상견례는 매우 조심스러운 자리였다. 술 좋아하는 시아버지는 상견례 때 반주도 곁들지 않으셨고, 말하기 좋아하는 우리 아빠는 말을 최대한 아끼려 노력했다. 시어머니는 생전에 안 입는 꽉 끼는 정장 바지를 입고 등장하셨고, 우리 엄마는 질문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했다. 그 모든 조심성이 모여 상견례는 아주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그날 먹은 코스 요리의 맛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만큼 우리 모두는 초긴장 상태였다.


결혼식은 과연 잘 치뤄졌을까

결국 물 새는 호텔에서 결혼식이 시작된다. 이쯤 되면 러스틱의 고집이 민폐스럽기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결혼식장에 있는 모두가 웃고 있다. 호텔 천장에서 물이 새고, 그 물을 받으려 물통까지 동원됐으며 그 물통은 하객들의 동선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하객들은 허허 웃는다. 구두가 부러져서 다리를 절며 신부 입장을 하는 사라마저 웃는다. 하객 한 명이 크게 말한다. “아주 그냥 빈민가 결혼식 같네요”

나도 아빠와 입장할 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구두에 웨딩드레스가 걸려 정말 대참사가 날 뻔했다. 하지만 그저 웃음이 났다. 결혼식장 측의 실수로 노래를 너무 크게 틀어 축사하는 친구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얼굴에는 빨갛고 큰 뾰루지가 나서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머리를 제대로 묶어 주지 않았는지 결혼식 말미에는 고무줄이 터져 사자머리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웃고 있었다.


축하하는 이들만 곁에 있다면 문제없지

결혼식 내내 사돈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잠시 후 사돈은 러스틱에게 울분을 토로한다. “당신은 가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네요. 우리 애들도 그렇고, 친척들까지. 당신을 다 좋아해요. 결혼식이 이 꼴인데도 말이에요.”

외과의사 사돈은 부유하다. 자식들에게 뭐든 턱턱 사줄 재력이 있다. 하지만 그의 집은 행복하지 못했다. 아내와 이혼을 했고, 아들과는 데면데면하고, 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채식주의자 딸에게 고기를 권하는 장면에서 무관심으로 보낸 세월이 극적으로 비친다.

결혼식을 망쳐서 미안하다는 러스틱의 사과에 딸 사라는 이렇게 답한다. “열심히 준비한 거 알아요. 저는 아빠 마음 다 알아요. 어떤 좋은 곳도 아빠의 품보다는 못할 거에요” 결혼식을 망쳤어도 결국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얼마 전 웨딩플래너 동창과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결혼식을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러스틱과는 비교할 수 없는 1등 플래너다. 정말. 그리고 그 동창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결혼식은 대부분 처음 해보는 거잖아. 그러니까 어찌 됐던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어. ‘화장을 다르게 할걸’ ‘노래는 이걸 고를걸’ ‘드레스를 저걸 입을걸’. 모든 신부는 후회를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네가 참 신기해. 결혼 준비에 있어서나 본식 당일이나, 실수나 안 좋았던 일들이 분명 있었거든. 그런데 너는 결혼식에 모두가 널 축하하는 그것만 기억하는 것 같더라고. 결혼식의 가치를 어떤 것에 두느냐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고. 네가 항상 하는 그 말이 나는 참 신기해.”

내 결혼식은 진짜 너무 완벽했어!


매일신문 임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