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를 숭배한다. 이승의 필체가 아닌 듯한, 초현실적인 문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의 성실함이다. 나는 하루키처럼 부지런히, 부단히도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는 작가를 보지 못했다. 하루키의 대서사극도 좋지만 난 특히 그의 단편이나 의외의 것을 주제로 한 소품집을 더 좋아하는데 최근에 그가 썼던 작품 중에서는 「무라카미 T: 내가 사랑한 티셔츠」라는 책을 꽤 재미있게 읽었다. 「무라카미 T: 내가 사랑한 티셔츠」는 하루키가 잡지 「뽀빠이」에 1년간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이다.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티셔츠에 얽힌 이야기를 짧은 단문으로 써낸 것인데, 컨셉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하루키의 귀여운 ‘글투’가 읽는 내내 미소를 띠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미국에 오랜만에 간 하루키가 세관을 빠져나오자마자 가까운 펍에 들어가 치즈버거를 주문한다. 버거가 나오기 전 쿠어스 라이트 한 잔을 차분하게 마신다. 그러고는 “이국의 공기를 주의 깊게 마시면서 치즈버거 접시가 나오길 기다린다…. 눈을 감고 정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입속에 건전한 침이 가득 고이지 않습니까.” 난 이 대목에서 박장대소를 했다. 치즈버거를 기다리는 하루키를 상상만 해도 귀여운 마당에, 입속에 “건전한 침”이라니… 침을 가지고 이렇게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며 의미심장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자가 하루키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의 취향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주목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하루키는 맥주를 좋아한다(사실 맥주 뿐 아니라 모든 술을 두루 즐기는 듯하다). 그의 맥주(를 포함한 다양한 주류) 열정에 대한 책,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조승원 지음)를 읽다 보면 하루키가 얼마나 많은 종류의 맥주를 간파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둘째, 하루키는 서핑을 즐‘겼’던 멋진 노인네다. 「무라카미 T」에서도 그가 서핑을 했을 때 입었던 티셔츠가 몇 장이나 등장할 정도로 그는 서핑에 몰두한 듯하다. 그의 단편, 「하나레이 베이」는 아마도 그가 서핑을 했던 시절에 착안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은 하나레이 베이에서 서핑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가 매년 같은 날 그곳을 방문하다가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을 그린 이야기다.
마츠나가 다이시 연출의 <하나레이 베이>는 성공한 비즈니스 우먼, ‘사치’(요시다 요)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마약 중독자였던 남편의 사망 후 사치는 혼자 어렵게 아들을 보살핀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아들과는 점점 사이가 멀어지는데 이를 만회하고 싶은 사치는 아들에게 서핑 보드를 선물한다. 어느 날 하와이로 서핑 여행을 떠난 아들은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사치는 하나레이 베이로 떠난 아들이 서핑 중 상어의 습격으로 한 다리를 잃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갑작스러운 비보에도 사치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초연하기만 하다. 아들의 죽음 이후 사치의 시점으로 보여지는 플래시백에서도 그녀와 아들은 늘 싸우는 중이거나 서로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사치는 담담하게 장례를 치르고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아들의 물건을 모두 내다 버린다. 경찰이 건네 주려는 아들의 핸드 프린트도, 아들의 유일한 잔재인 부서진 서핑 보드도 그녀는 가져가길 거부한다. 그럼에도 사치는 아들이 죽은 후 십 년 동안 매년 아들이 죽은 시기에 하나레이 베이를 찾는다.
하나레이 베이에서 사치가 하는 일이라고는 푸른 바다 앞에 간이 의자를 펴고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는 것뿐이다. 어느 날 사치는 일본에서 서핑 여행을 온 두 소년과 만나게 되고, 가까워진다. 소년들은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그녀에게 외다리 일본인 서퍼를 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 그들이 읊조리는 서퍼의 인상착의는 사치의 아들과 일치한다. 그 순간부터 한 번도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던 사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넋이 나간 듯 섬 곳곳을 뒤지며 아들을 찾아 헤맨다.
하루키 소설의 대다수가 영화화되었지만 그가 보유한 문장력과 이야기의 힘을 고스란히 대물림한 영화 버전은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중 <하나레이 베이>는 소설의 수준을 기대해도 좋을 하루키 영화다. 원작이 품고 있는 미묘하고도 서글픈 미스터리를 영화에서도 그대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의 죽음을 겪는 것이 아닌, 바라만 보고 있는 사치(이는 그녀가 아들이 죽은 바닷가 앞에 앉아 늘 책만 읽는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상징화된다) 캐릭터는 ‘애도’라는 행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면, 난 꼭 그/녀의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가.
영화는 ‘죽음’과 ‘관계’에 있어 꽤 심오한 명제를 지어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스피노자 식으로 마주할 필요는 없다(고 하루키는 말할 것이다). 아마도 하루키는 독자들이(혹은 관객들이) 자신이 그럴 듯 무언가 즐길 만한 것을 손에 쥐거나, 입에 머금고 작품을 즐겨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하루키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서퍼들에게 맞춤인 낮은 도수의 골든 에일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골든 에일은 하와이의 서퍼들이 가장 자주 찾는 맥주라고 한다. 서핑 중간에 마시는 맥주인 만큼 도수가 낮고 탄산이 많아 청량하다. 골든 에일은 알코올 함량이 낮은 반면 향긋한 과일향은 진한 편이라 온도만 차게 해서 마시면 훌륭한 여름 음료가 되기 때문이다. 맥주의 청량함에 매료될 때 즈음, 우리는 ‘외다리 서퍼’의 정체가 궁금해질 것이다. 그는 정말 사치의 아들인 것일까? 혹은 아들이 섬의 정령이라도 돼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것일까? 사치가 아들을 찾아다니는 동안에도 그녀의 플래시백은 멈추지 않는다. 아직도 사치의 기억은 아들과의 지난한 싸움들과 그를 향한 원망이 대부분이지만 여정이 계속될수록 원망은 그리움으로, 그리움은 애절함으로 변모하고, 진화한다. 결국 섬 전체를 뒤졌지만 사치는 외다리 서퍼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그를 찾는 여정의 끝에서 그녀는 마침내 아들의 핸드 프린트를 받아온다. 그리고는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낸다. 이제야 사치는 아들(의 죽음)과 마주한 것이다.
한 서퍼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하나레이 베이>는 서퍼들을 향한 연가(戀歌)로 영화의 끝을 맺는다. 영화의 말미에는 서핑 보드를 자전거에 싣고 신나게 달리는 아들의 생전의 모습과 함께 이기 팝의 ‘I am a Passenger’가 흘러나온다. 역시 모던하고 경쾌한, 그리고 지극히 하루키적인 ‘애도’다. 이쯤에서 다시금 소환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서퍼들의 넥타르(nectar), 골든 에일이다. 특정 종류의 맥주를 주장하지 않는 하루키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그 역시 이 맥주에게 파인트를 내줄 것이다. 한 컵 가득 담긴 골든 에일의 정경을 보는 순간 입안에 ‘건전한 침’이 가득 고이겠지.
※본 글은 저자의 책,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의 일부를 취지에 맞게 인용, 편집하였습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