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운드> 장항 감독(가운데 회색 티)과 주연 배우들

한국 극장가에 때아닌 농구 열풍이 일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을 시작으로, 나이키의 마이클 조던 영입 실화를 다룬 <에어>와 한국 고교 농구 대회 실화를 다룬 <리바운드>가 4월 5일 개봉했다. 일부러 개봉 시기를 맞췄다고 해도 믿기 어려울 적절한 타이밍이다. 더 재미있는 건 이 영화들이 농구라는 공통의 소재를 갖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장르와 색깔을 지닌 작품이라는 것. 특히 장항준 감독의 신작 <리바운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농구를 제대로 다룬 적이 드물었고, 십 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더 드물었다. 한국 스포츠 영화의 계보에서도 괄목할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리바운드>는 왜 의미 있는 영화가 되었는지 살펴보자.


꿈을 좇는 아이들의 이야기

한때는 농주 유망주들을 배출했고 전국 대회 우승까지 했던 농구 명문 부산중앙고의 농구팀이 해체 위기에 빠진다. 선생님들은 농구부 해체만은 막아보겠다며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고 있던 선수 출신 초짜 코치 강양현(안재홍)을 영입한다. 말이 영입이지, 농구부의 명맥만 유지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강양현 코치는 농구부를 제대로 이끌어보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선수들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농구 명문에서 꼴찌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몰락했던 농구명문 부산중앙고가 구사일생으로 파란을 일으키게 되는 스토리는 그 자체로 힘이 있는 이야기다. 즉, 오합지졸들이 모여서 기적을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언더독 스토리인 것. <리바운드>는 제대로 된 꿈을 찾기도 전에 일찍 포기해버리고 마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사연 속에서 빛나는 보석을 발굴해내는 강양현 코치와 부산중앙고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본업으로 돌아온 장항준 감독

이제는 방송인이란 타이틀도 어색하지 않은 장항준 감독.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팟캐스트 등에서 ‘김은희 작가 남편’으로 본인을 소개하곤 하던 장항준 감독이 오랜만에 연출작을 발표했다. 방송에서 여러 차례 기획했던 작품이 무산되는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던 장항준 감독은 권성휘 작가가 쓴 초기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영화화를 원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누군가 “실패한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장항준 감독은 방송 작가, 시나리오 작가 등을 거쳐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기억의 밤> 등을 연출했다. 본인 스스로 감독으로서 여러 실패의 경험을 했었기에 <리바운드>의 이야기가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왔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시종일관 진지함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유명 배우들의 입간판을 가져다 훈련 상대로 삼는 입간판 개그 같은 장면이 장항준 감독만의 재기발랄함이 빛나는 장면이다.


젊은 배우들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부산중앙고 농구부 6인을 맡은 배우들

오직 6명의 선수들만으로 협회장기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한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영화로 옮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배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주목받던 천재 선수였지만 슬럼프에 빠진 가드 ‘기범’ 역은 이신영이, 부상으로 꿈을 접은 올라운더 스몰 포워드 ‘규혁’ 역은 정진운이, 점프력만 좋은 축구선수 출신의 괴력 센터 ‘순규’ 역은 김택이, 길거리농구만 해온 파워 포워드 ‘강호’ 역은 정건주가, 농구 경력 7년 차지만 만년 벤치 식스맨 ‘재윤’ 역은 김민이, 농구 열정만 만렙인 자칭 마이클 조던 ‘진욱’ 역은 안지호가 연기한다. 이 어린 친구들을 인피니티 스톤 모으듯이 불러 모아 전국구 강팀으로 만들어내는 강양현 코치 역은 안재홍 배우가 맡았다. 안재홍은 <족구왕> 이후 독특한 스포츠 영화에 출연해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탄탄하게 구축해 나가는 중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 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다.


시대를 재현한 디테일

<리바운드> 현장 사진

<리바운드>의 주요 배경은 부산이다. 괜히 이 영화를 두고 ‘부산판 슬램덩크’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영화의 촬영에 많은 도움을 준 부산영상위원회에 따르면, <리바운드> 제작진은 2022년 4월부터 부산의 20여 곳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극 중 부원들의 훈련 장면을 촬영한 부산중앙고 체육관을 비롯해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영도대교, 해돋이 전망대, 충무동 새벽시장, 대연동 공원 등의 명소가 등장한다. 실제로 보기 어려운 장소 설정도 등장하는데 고층 아파트와 바다를 배경 삼아서 수영만 요트경기장의 코트가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리바운드> 영화 곳곳에서 시대를 구현하는 디테일이 돋보인다.

공간 배경뿐만 아니라 경기 고증에도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다. 2012년 당시 경기에 실제로 쓰였던 선수들의 붕대 낙서, 유니폼, 농구화 등의 소품은 거의 실제와 흡사하다. 장항준 감독이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강양현 코치는 어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짝퉁 명품까지 구비해서 착용했고 정진운이 연기하는 배규혁 선수가 당시 경기에 신었던 신발은 단종되어 구할 수가 없었는데 정진운이 직접 밑창이 떨어진 신발을 구해와서 본드로 접합해 신고 연기했다고 한다. 제작진이 실제 경기 영상을 수십 번씩 보면서 그대로 재현해서 찍으려고 노력했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경기 심판들도 모두 KBL 현역 심판들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서 2012년 당시 협회장기 결승전 경기 장면을 볼 수가 있는데 영화와 비교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진감 넘치던 추억의

농구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다

<리바운드>

한국에서 농구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웠던 때는 1990년대가 아니었을까. 특히 그 시절에는 대학 농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갑자기 왜 수십 년 전 이야기를 꺼내느냐면, <리바운드>의 마지막 엔딩 경기를 보며 1992년 대통령배 남자 고등부 농구 결승전 휘문고 대 부산중앙고의 경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휘문고에는 몇 년 후 한국 농구 최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될 현주과 서장훈 학생이 뛰고 있었다. 부산중앙고 선수들은 이 무시무시한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상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부산중앙고에는 훗날 감독, 해설 위원으로도 활약한 추승균, 박훈근 선수 등이 뛰었는데 이때 부산중앙고 선수들이 드림팀이었다. 부산중앙고는 1992년 5월 협회장기 우승을 하면서 부산중앙고 농구부 사상 첫 전국 대회 우승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12년 <리바운드>의 멤버들은 다시 한번 5월에 열린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고교부 농구 대회에서 우승에 도전하게 된다. 경기 결과는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김현수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