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각자가 품은 추억과 공명할 수 있는 영화가 얼마나 있을까. 4월 19일 개봉하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그런 영화다. 감독 개인의 경험이 녹아든 자전적 영화임과 동시에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추억까지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는 그런.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소영과 아들 동현의 이야기를 다룬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한국계 캐나다인 앤소니 심이 연출, 각본, 편집, 연기 등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한껏 담아 완성한 영화다. 한국 개봉을 앞두고 한국에 찾은 앤소님 심 감독, 씨네플레이는 그와 함께 <라이스보이 슬립스>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영화계에 자전적인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라이스보이 슬립스>도 그런 흐름의 하나인데, 지금 이 영화를 해야겠다 싶었던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이 영화를 만든 타이밍이 그냥 우연치 않게 <미나리> 바로 이후, 또 (한국 영화의 관심도가 높아진) <기생충> 바로 이후 이렇게 된 건데 이렇게 뭐 특별히 계획하고 그런 건 없고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꽤 오래됐죠. 연기자로 활동을 시작했고, 그리고 연극 제작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때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만약 영화를 만들면 첫 영화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내 어렸을 때 경험을 넣은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20대 동안 계속 연극만 하다 보니까 영화 만든다는 거에 투자를 못한 거예요. 저 자신에게 서른 되기 전에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약속했는데, 29살 됐는데 영화를 만들 기회가 하나도 없고 길이 없어서요. 어떻게 방법을 찾아야겠다 했는데 제가 연극으로 썼던 걸 독립 영화(<도터>)로 만들게 되고, 그것 때문에 이 기회가 생겨서 드디어 만들게 됐어요. 딱 만들어야겠다 같은 건 없었어요. 영화 만든다는 게 투자도 많이 필요하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야 되고 하니까요. 그 타이밍이 딱 지금이어서 만들게 됐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오프닝이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영의 전사와 한국의 이미지가 결합된, 신기한 풍경이었어요. 어떻게 구상을 하게 되셨나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나레이션으로 오프닝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이미지가 뭔지는 잘 몰랐어요. 이런 아이디어, 저런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시나리오에는 사진을 보여주는 식이었어요. 소영의 어린 모습, 원식과 있는 사진을 쭉 보여주는 식이었는데 강원도 와서 로케이션 헌팅을 해보니까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자연이. 한국적인 느낌도 나고. 제가 강원도 와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도 많이 찍었거든요, 로케이션 찾을 때. 그걸 촬영팀이랑 사람들한테 보여줬는데 그림만 봐도 감동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강원도에서 촬영하면서 나레이션이랑 같이 오프닝으로 보여줄 거니까 이거 찍자, 저거 찍자 (했어요). 사진을 보여주는 거보다 더 시적이고 이 영화의 톤을 잘 보여주는 느낌인 것 같아서요.
소영 역 최승윤 배우는 첫 작품이었고, 감독님 본인도 리스크가 없지 않았다고 말하셨었는데 그럼에도 최승윤 배우의 어떤 부분에서 소영을 발견했는지요.
캐스팅하기까지 되게 오래 걸렸어요. 제가 생각하는 소영에 맞는 배우를 찾기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고요. 제일 어려운 건 한국말을 완벽하게 하고 영어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영어 하는 배우는 많은데, 영어를 적당히 어려워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고, 자기 생각이랑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건 또 다르거든요. 한창 오디션을 보다가 한국에 있는 캐스팅 감독님이 승윤씨가 나온 비디오, 다큐멘터리 이런 걸 보내주셨어요. 배우가 아니고 연기 경험도 많지 않은데, 뭔가 독특한 게 있다면서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시더라고요. (영상을) 보자마자 보통 연기자와는 다른 느낌이 있었어요. 저는 특히 주인공을 캐스팅할 때 흥미로운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승윤씨는 사람으로서 특이하고 다르고 눈빛이 깊은 느낌이 있고 생각이랑 감정이 되게 풍부한 사람 같아서 오디션을 봤어요. 첫 오디션부터 상상했던 거랑 똑같이, 너무 완벽하게 잘 맞고 그런데… 당연히 연기 경험이 없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걱정을 많이 했죠. 아무리 (배역에) 맞다 싶어도 제일 중요한 역할인데 어떻게 경험이 없는 사람을 캐스팅하냐,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다 보여줬어요. 제 작품 아는 사람들한테 다 보내고 '진짜 솔직히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어요. 다들 잘 어울린다고 그랬죠. 아무리 다른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이 사람이랑 같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게 너무 궁금해서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그냥 이렇게 하자 했어요. 다행히 투자자들도 다 저를 믿어주셨고요.
여러 감독님들 인터뷰를 보면 확실히 배우를 찾는 건 사람을 보는 눈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그럼 동현 역을 맡은 황도현과 황이든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감독으로서 일의 반은 캐스팅이다. 어떤 사람들은 90%가 캐스팅이라고 하는데, 50%든 90%든 그게 크게 중요한 것 같아요. 캐스팅을 잘 할 줄 알고 사람을 잘 고르는 거. 그렇게 하면 진짜 촬영할 때 일이 쉬워요. 승윤씨 캐스팅할 때처럼 동현 역할을 할 두 아이들을 찾는데 똑같이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캐나다에선 차라리 영어를 더 잘하고 한국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서요. 한국말을 잘할 줄 아는 아이들을 찾기가 엄청 힘들었는데 다행히 우리가 운 좋게 우리 도현이를 만나게 됐어요. 캐스팅 감독이 에이전트한테 통해서 조건이 맞는 배우를 찾는데, 전국에 두세 명밖에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한국 교포들이 보는 신문이 있어요. 거기에 광고를 냈죠. 이런 나이대의 아이를 찾고 있다, 연기 경험 없어도 되고 한국말만 할 줄 알면 비디오를 보내달라. 그렇게 도현이 비디오를 받았는데 그때 제작진 다 뿅갔죠(웃음). 너무 귀엽고 말도 너무 잘하고 에너지도 너무 넘치고. 그래서 도현이랑 도현이 아버님을 만났는데 아버님도 사람이 너무 좋으시고 편하게 해주셔갖고, 도현이 캐스팅하는 게 제일 쉬웠어요.
이든은 토론토 살거든요. 저희는 밴쿠버 촬영이고. 이때도 배우 찾기가 힘들어서 토론토에 배우하는 한인 친구가 있어요. 걔한테 연기자 아녀도 이 역할에 잘 어울릴 만한 아이를 아냐 물어봤어요. 그 친구가 이든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여줬는데 '이 사람이다' 싶어서 연락하고 오디션을 봤죠. 승윤씨까지 같이 만나봤는데, 승윤씨도 이 아이 캐스팅하자고 너무 느낌 좋다고. 저희 세 배우들이 어떻게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에 딱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캐릭터들에 다른 사람들을 캐스팅할 수가 없었을 것 같아요.
소소한 호기심인데 동현을 맡은 두 사람이 황도현, 황이든이잖아요. 형제인가 싶더라고요.
완전히 우연이에요. 저희도 생각했죠, 사람들이 형제를 캐스팅한 줄 알겠다고(웃음). 그런데 솔직히 그거보다 훨씬 더 어려웠어요. 형제였다면 얼마나 쉬웠겠어요(웃음). 이든한테 실제로 남동생이 있긴 있어요. 나이도 (도현이와) 비슷하게.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만나봐도 되냐고 해서 만났는데…. 연기할 생각은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도현이를 만났는데 또 황씨고.
이 영화는 16mm 필름으로 촬영했는데요, 16mm로 찍어서 영화의 감성이 정말 많이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16mm 필름으로 찍으면서 느낀 장점과 단점 혹시 있을까요?
저는 필름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사진 찍을 때도 필름으로 많이 찍고. 요즘에 10년, 15년 사이에 16mm로 찍은 영화들도 더 많아졌어요. 대런 아로노프스키도 16mm로 찍었고(<마더!>). 그 영화들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얼마 전에 <행복한 라짜로>를 봤는데, 느낌이 너무 좋고 제가 이 영화 생각했을 때 상상했던 거랑 느낌이 비슷해서, 그걸 보고서 '이 카메라랑 이 렌즈들을 어떻게 구해해서 찍어야겠다' 그랬죠. 장점은 우리 영화가 1990년대 배경인데 그 느낌을 주기 위해서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 이런 거 다 해야 되는데 그런 거에 투자할 제작비가 많지는 않았어요. 저희는 그림 자체에 90년대 느낌을 줄 수 있으면 그런 부분에서 부담이 적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카메라 테스트 하고 나서 처음 딱 봤을 때, 그 그림 자체가 예쁘고 좋아서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 그림 자체가 스토리텔링에 도움되는 게 정말 많아서 이게 맞는 것 같다고 확실히 느껴졌고요. 그러다 보니까 촬영할 때 감독으로서 불안감이라죠, 걱정도 많고 '별로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랬는데 그림 자체가 예쁘니까 이걸 믿고 무리하지 않아도 되겠다 느꼈어요. 그래서 장점들은 너무 많았어요.
단점들? 한국에서는 필름으로 촬영을 거의 안 하잖아요. 그래서 로케이션 와서는 카메라를 구하거나 필름을 현상하는 게 힘들었죠. 여기서 프로세싱 하는 데가 없는 거예요. 캐나다에서 촬영한 건 몬트리올에 현상소가 있어서 그쪽으로 다 보냈는데, 한국에서 거기까지 보내는 건 어려우니까 가까운 데를 찾아봐야겠다. 촬영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도쿄였는데, 촬영한 양이 적어서 어렵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좀 곤란했죠. 카메라도 직접 가져와서 테스트 촬영을 했는데, 그걸 현상해봐야 그림이 어떤지 보고 촬영 들어갈 수 있겠다 할 수 있는데 또 추석이 온 거죠. 필름을 보낼 수가 없는 거예요, 촬영 시작하기 전까지 날짜가 안 맞아서. 그래서 EP(총괄제작)가 필름 들고서 LA까지 직접 가서 현상을 한 걸 보고 OK 받고 왔죠. 그 복잡했던 게 너무 힘들었어요. 찍고 나면 필름이 이렇게 있는데 그걸 가지고 가야 되잖아요. 혹시 잘못되거나 잊어버리면 저는 그냥 끝장인데요(웃음). 그래서 가방에 넣어서 꼭 안고 비행기 타고. 그런 게 단점인데 그래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진짜 뭘 만든다는 느낌이 나는 거예요. 필름을 카메라 넣어서 딱 촬영하면 후두두두두 소리가 들리고, 촬영 끝나고 필름을 또 꺼내서 그걸 만질 수 있다는 게… 우리는 오늘 뭘 만들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제 작품들은 계속 필름으로 촬영하고 싶어요.
전체 촬영 회차는 어떻게 되나요?
캐나다에서는 15일 촬영, 한국에서는 4일 촬영했어요.
한국에선 정말 타이트하게 촬영했네요.
투자는 다 캐나다에서 받았어요. 캐나다 영화면 4분의 1만 해외에서 촬영할 수 있어요. 그리고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제작비의 25%? 어쨌든 해외에서 쓸 수 있는 돈이 한계가 있어요. 만약 돈이 있었어도 그렇게 오래 촬영할 수가 없는 거였어요. 15일이었으니까, 5일이면 4분의 1이 되니까 그건 안 된다, 그래서 4일 안에 끝냈죠.
영화에 롱테이크 장면이 많은데요, 준비 기간이 부족하진 않으셨나요?
준비할 시간은 많았어요. 필름이 비싸고 그렇게 많지도 않고, 촬영은 되게 빨리 해야 되니까 '우리 준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캐스팅 끝나고 저희 배우들 특히 승윤씨가 한국에 있고 제가 밴쿠버에 있을 때, 두세 달 동안 줌으로 만나면서 캐릭터랑 영화에 대해서 많이 얘기하고. 그렇게 하다가 촬영 한 달 전에 배우들이 다 캐나다에 와서 리허설에 들어왔어요. 제가 원래 10년 동안 연기를 가르쳤었거든요. 그래서 (배우들에게) 우리는 일주일동안 연기 수업을 하자 하고 매일 아침 사무실에 모여서 연기 수업하고, 일주일 뒤부터 리허설 하고 동선을 짜고. 카메라 감독도 같이 와서 배우들이 움직이면 카메라 이렇게 하고 하면서, 카메라 렌즈 효과를 낼 수 있는 어플로 영화 전체를 거의 다 찍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조명팀도, 프로덕션팀도 필요한 것들만 하게 (준비했어요). 촬영하는 날은 그래서 빨리 움직였어요. 찍어야 할 것도 많으니까요. 다들 준비되면 바로…(웃음). 그렇게 두 번, 세 번 촬영하면 그 장면 끝.
장면마다 테이크 수를 정하고 촬영하셨나봐요.
정했다기보다 카메라팀이 저한테 하루에 필름 4롤만 쓸 수 있다 얘기했거든요. 촬영 첫날이었나, 어떤 장면이 너무 어려워서 아홉 테이크를 갔어요. 그랬더니 카메라팀에서 '이렇게 하면 영화 못 만든다' 그러고. 하루는 필름을 5롤, 6롤인가 썼더니 다음날 와서 '오늘은 두 롤만 가지고 찍어야 한다' 하고(웃음). 저도 힘들었는데 그래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요, 필름을 다 쓰면 진짜 끝이니까요.
이번 영화에서 연출도 했지만 사이먼으로도 출연하셨잖아요. 배우로 활동하셨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자전적인 영화에 출연한 거라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싶었어요.
이유는 있는데요, 그런 이유는 아니고요. 할 수밖에 없어서 그랬어요. 밴쿠버에서 촬영할 건데 승윤씨는 한국에서 캐스팅하고 이든은 토론토에서 캐스팅했고, 이렇게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서 초대하면 되게 비싸잖아요. 그 두 배우들이 이제 다른 데서 오니까 나머지 역은 밴쿠버에서 캐스팅을 해야만 하는 거예요. 원래 사이먼은 시나리오에 인도 남자로 썼다가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한국계로) 바꾸게 됐어요, 그게 더 맞는 것 같아서. 그렇게 바꾸고 나니까 밴쿠버엔 한인 배우가 너무 적었고, 캐스팅 감독들이 '이건 네가 해야 된다' 했죠. 제가 나이대도 맞고, 리허설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까 '감독으로 이렇게 일하다가 같이 연기도 하고 되게 자연스럽게 될 수 있겠다' 싶어서 했어요. 하고 싶진 않았어요. 저는 이제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고요, 그리고 또 필름을 촬영하니까 제가 연기하면 다시 볼 수가 없잖아요. 우리 프로듀서가 저랑 연극 같이하던 친구거든요. 제 연기에 익숙하고 잘 아니까, 연기할 때 대신 봐주고 어떠냐고 물어보면서 많이 의지했죠(웃음). 그런데도 걱정이 많았죠. 이 영화가 내 안 좋은 연기 때문에 망하면 어떻게 하나.
그럼 다 완성하고 직접 출연한 장면들을 봤을 때 어떠셨어요?
저는 연기자로서 작품을 하면 되게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잘하고 싶고, 화면에 나오면 어떻게 막 튀고 싶잖아요. 내가 연기를 잘 한다는 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런데 이 작품은 제 자신이 연기자로서 아마 한 다섯 번째로 중요했을 것 같아요. 제가 더 신경 쓰는 건 승윤씨, 스토리, 카메라, 사운드 이런 거였어요. 그냥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들, 승윤씨와 이든, 엄마 소영과 아들의 여정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걸 잘 받춰주나, 그래서 그렇게만 봤고요. 제가 완성된 거 봤을 때도 '그냥 괜찮구나' (싶었고). 제가 또 걱정한 건 제가 튈려고 하는 모습을 보일까봐. 사이먼이 나오는 부분은 편집을 못하니까. 순간 순간 연기를 되게 심플하게 했어요. 이 소영이란 캐릭터를 그냥 웃게 만들어라. 그냥 그렇게 되게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사이먼 캐릭터가 참 잘 어울리셨어요. 다정하고 사려 깊고, 영화에서 참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묘사되는데 그런 캐릭터가 잘 보였어요.
실제로도 그래야 되는데(웃음). 근데 재미있는 게 한국에서는 이 사이먼을 사람들이 되게 좋게 보더라고요. 외국에서는 조금 널디(Nerdy)하다고 보죠. 절대로 사이먼이 멋있는 남자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거든요(웃음).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성분들이 이런 남자가 더 마음에 드시는 건지…. 외국에서는 작은 아버지 캐릭터(강인성이 연기한 인식)가 더 멋있다고 하거든요. 근데 한국에서는 멋있다고는 안 보이잖아요. 외국에서는 막 근육질에 너무 멋있는 시골 삼촌 누구냐 묻고(웃음).
욘시&알렉스의 앨범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영화 제목을 가져오셨는데요. 그래서인지 영화 음악도 전체적으로 엠비언스풍이더라고요. 음악을 맡은 앤드류 영훈 리는 원래 영화음악감독이 아니고 현대미술 아티스트에 가깝던데, 어떻게 같이 작업하게 되셨나요?
제가 제일 중요하다 여긴 부분이 카메라랑 음악이었어요. 그 두 가지에 되게 많이 의지를 할 걸 알고 제일 처음으로 연락했던 사람이 저희 카메라 감독 크리스(크리스토퍼 류)였고. 이번 영화 사운드 디자인을 해준 친구(Matt Drake)가 이전에 북한 하키팀 다큐멘터리(<클로징 더 갭>)를 작업했었어요. 그래서 그 영화를 봤는데, OST를 앤드류 영훈 리라는 음악가가 한 거예요. 앤드류가 영화 음악을 맡은 건 그거 하나뿐이었는데, 들어보니까 정말 느낌이 좋은 거예요. 제가 원하는 느낌이랑도 잘 맞고. 그래서 사운드디자이너에게 이메일 주소를 받아서 '밴쿠버에 있는 영화 감독인데 이런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고 영화 정보를 보냈죠. 마음에 든다고 해서 브루클린에 사는 앤드류하고 화상으로 만났어요. 음악에 대한 얘기는 별로 안했어요. 우리가 캐나다에서 자란 한국 사람으로서, 교포로서, 남자로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로 대화를 나누고 한국 음악, 전통 악기 이런 걸 많이 얘기했어요. 잘 맞아서 '이런 음악 해볼 마음 있냐' '하겠다'. 정말 쉽게 재밌는 과정이었어요.
영화 편집을 제가 했는데, 한 10분 정도 편집한 거를 '이 부분에 음악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해서 보내면 일주일이나 2주 후 음악을 잔뜩 와요. 그러면 다 들어보고 막 신나갖고(웃음). 음악이 다 잘 어울리면서도 또 잘 만든 거예요. 그래서 음악은 하나도 안 고치고 그냥 듣기만 했어요. 딱 한 곡만 조금 변화시킨 거고요. 소영과 동현이 캐나다에서 한국 넘어갈 때 그 음악이 되게 길거든요. 그 음악이 한 11분인가 그래요. 한 곡이 아닌 것처럼 들리는데, 쭉 한곡으로 지나가는 거거든요. 조금 독특해야 해서 딱 이 부분만 이렇게 가자 의견을 줬어요. 다른 건 다 그냥 딱 맞게 잘해줬어요.
시나리오를 쓰실 때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한다셨는데, 요즘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있을까요?
아 이건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되는 것들인데(웃음). 제가 지금 작품을 세 개 쓰고 있거든요. 하나는 미국 차이나타운 배경으로 쓰고 있는데, <버닝> OST를 많이 듣고 있고요. OST가 너무 독특하고 사운드가 악기도 뭔지 모르겠고 음악은 음악인데 많이 들어본 음악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모그, 그분이 하시는 음악 거의 다 들어본 것 같아요. 그중 <버닝> OST가 특히 좋고. 또 다른 거는 한국 4월이 배경이거든요. 그거는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듣고 있고요. 세 번째는 아직 얘기하지 좀 힘들어요(웃음).
영화 제목에 맞춰서 소소한 질문을 하나 드리자면, '라이스'보이잖아요. 볶음밥과 비빔밥 중 어느 게 더 좋으신가요?
이런 재미있는 질문을 하시면 저는 너무 곤란해지더라고요(웃음). 볶음밥은 더 자주 먹는데, 캐나다에서 혼자 있으면 찬밥 남으면 볶음밥 해먹는 게 제일 편해서 자주 먹는데, 이제 좋아하는 거는 비빔밥.
극중 동현이가 겉절이를 좋아한다고 나오는데, 본인도 겉절이를 좋아하시나요?
네, 저도 똑같습니다(웃음). 저도 이제 오랜만에 어머니 만나러 가면, 몇 달 동안 한식 못 먹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어머니께서) 뭐 먹고 싶냐, 그러면 겉절이만 있으면 됩니다(웃음).
인생 영화를 뽑자면?
몇 편 있어요. 그런데 한 편으로 얘기할까 세 편으로 얘기할까 지금 고민 중에...
세 편이 어떨까요? 궁금하거든요(웃음).
한 편만이라면 아마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 세 편까지 간다면, 이창동 감독님의 <박하사탕>. 그리고 세 번째는 허우 샤오시엔의 <연연풍진>. 중국의 산속 작은 마을에 있는 남자와 여자의… 어떻게 보면 로맨스죠. 그 영화는 진짜 100번 천번은 볼 수도 있어요. 우리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되게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예요.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관객들에게 소개해주세요.
제가 <라이스보이 슬립스>에서 제일 좋아하고, 계속 봐도 매번 자랑스러운 장면은요. 소영과 동현이 강원도로 들어가서 식구들이랑 같이 점심을 먹는 장면인데요. 그 장면이 큰일 없이 그냥 점심 먹으면서 사소한 대화하는 참 심플한 장면인데, 저는 그게 포근하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제 자신이 한 건데도 볼 때마다 자랑스럽고 재미있게 보고. 우리 영화의 의미나 포인트가 그 장면에 다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우리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고 각기 다른 세대들의 차이점이랑 공통점, 그거에 대한 영화여서 그 장면은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