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복잡하다. 사전에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라고 풀이된 이 단어는 현실에서 단순한 감정의 표출을 넘어 협상, 호소, 변명, 폭로 등의 기능을 너르게 수행한다. 말 한마디로 별 게 다 드러나고 또 바뀐다. 더구나 말은 화자의 성격과 상황은 물론 표층 아래 숨겨진 진실까지 알려준다. 누군가의 말은 때로 그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짐작하게 한다. 그러니 창작자에게 말이란 다루기 까다로운 요소이자 제대로 요리해 보고 싶은 재료일 것이다. 여섯 연출자가 참여하고 서울독립영화제가 기획, 제작, 배급을 맡은 옴니버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관객을 말의 난장 속으로 데려간다. 여섯 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두 명의 화자, 하나의 장소라는 제한적 조건을 공유한다. 그런데 말의 묘미와 아이러니가 생생히 피어나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그 조건이 제약이 아니라 창작을 자극하는 힘으로 작용했으리라고 납득하게 된다. 게다가 영화는 한 무더기의 말들 끝에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며 비릿하고 씁쓸한 뒷맛까지 선사한다.

<프롤로그>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 무언가 호소한다. 거주의 불안, 지역감정의 폐해, 마케팅의 까다로움, 직장의 부조리함 등.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들어보면 전부 ‘이 각박한 세상, 사는 게 너무나 엉망진창이다!’는 외침이다. 하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그들의 입을 빌려 ‘바른말’을 하려 들지 않는다. 영화는 말의 구멍을 파고든다. 어떤 말은 너무 쉽게 남의 고통을 가리고 또 어떤 말은 편리하게 나의 곤란만 부각한다. 총괄 프로듀서이자 첫 번째 에피소드 <프롤로그>를 연출한 윤성호 감독의 언급처럼 그러한 말의 기술을 “힘이 센 사람들만 즐겨 쓰는 것도 아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가 보여주는 건 “시민이 또 다른 시민을 세련되게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광경”이다. 나를 보호하려는 말이 세상을 좀 더 나쁘게 바꿔놓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 영화, ‘하이브리드 소셜 코미디’를 표방한다. 사회적 의제를 다루면서도 정색하고 호통치거나 설교하지 않는다. 웃음이야말로 우리의 창과 방패라는 듯 환장할 만한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서 날렵하게 유머를 건져낸다.

<프롤로그>는 대기업 김과장(김경일)과 하청업체 양사장(양현민)의 대화로 이뤄진다. 외주용역 계약서를 앞에 두고 “애들 갈아 넣는” 노하우 얘기를 하는 두 사람. 어째 을의 입장인 양사장이 더 파렴치해 보인다. “싸울 생각을 안 하도록” 그러니까, 회사에 맞서지 않도록 노동자들을 아이러니한 상황에 밀어 넣어야 한다는 양사장의 말은 앞으로 펼쳐질 다섯 에피소드에 대한 일종의 미리 듣기다. 네 번째 에피소드 <진정성 실천편>이 보여주는 건 어쩌면 그러한 아이러니의 극단이다. 최하나 감독(<애비규환>)은 특정 제스처와 단어를 중심으로 확산됐던 남성 혐오 논란을 소재로 택했다. ‘반려동물 수제 간식 브랜드 멍냥짭짭’은 지금 커다란 위기에 빠져있다. 마케팅 부서 직원이 강아지가 밥 먹는 모습을 ‘허버버법’이라고 표현한 탓에 남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팀장 남희(신사랑)와 부하직원 덕윤(오경화)은 사과문 작성을 두고 골머리를 앓는다. 우리의 진정성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아무리 찾아도 답은 없다. 급기야 이것도 저것도 다 남성 혐오 아니냐며 불매 운동이 일어날 기세다. 남희는 막무가내 낙인과 추궁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상황을 모면하려 말의 허울에 기댄다.

<진정성 실천편>

<새로운 마음>

마지막 에피소드 <새로운 마음> 또한 일터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상황을 다룬다. 화자는 김팀장(김준석)과 정대리(이태경). 김팀장은 신년 목표로 ‘새로운 마음’을 내걸었고 정대리는 업무조정을 요청했다. 끝없는 야근과 과도한 업무량은 물론이고 김팀장의 고압적 태도와 조롱까지 정대리를 괴롭힌다. 그 와중에 워킹맘인 동료는 아이 때문에 먼저 가봐야 한단다. 한인미 감독(<만인의 연인>)은 주변의 직장인 친구들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새로운 마음>에는 워킹맘이든 싱글이든 여성들이 직장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충이 서늘하게 녹아있다.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대화의 무서운 맛 또한 에피소드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의 주인공 윤서(조윤서)는 곧 아이를 낳을 예정이다. 그런데 어디서 출산할지를 두고 아버지 승길(정승길)과 언쟁에 빠진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중학교까지 나왔다는 승길은 손주를 서울 출생으로 만들자며 성화다. 지역감정의 역사와 시대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아버지를 조리 있게 설득하는 윤서. 그런 그녀가 ‘임대주택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 된다. 박동훈 감독(<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은 유년 시절 공기처럼 들었던 지역 혐오 발언부터 지금 시대에 새롭게 생성되는 차별 문제까지 그려 보고 싶었다며 뒷이야기를 전한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하리보>

<말이야 바른 말이지>가 의식하는 타자에 인간만 있는 건 아니다. <하리보>는 고양이의 시점으로 문을 연다. 동거하다 헤어지게 된 커플 하리(김소형)와 보현(김우겸)은 짐을 나누는 문제로 다툰다. 둘은 서로 시시콜콜한 불만을 늘어놓다가 함께 키우던 고양이 하리보의 미래를 두고도 갈등을 빚는다. “네가 데려가기로 했잖아.” “나는 아버지가 알레르기 있어.” “나는 새로 들어가는 원룸이 반려동물 금지야.” 각자의 상황을 항변하려는 것 같지만 듣고 있자면 유치하고 무책임한 말들의 향연이다. 김소형 감독(<우리의 낮과 밤>)은 그런 말들이 고양이에게 상처가 된다며, <말이야 바른 말이지>를 ‘을들이 바른말이라고 뱉은 언어들로 병을 소외시키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로 소개한다.

<손에 손잡고>

다섯 번째 에피소드 <손에 손잡고>는 무려 지구에 대한 미안함을 절감케 한다. 송현주 감독(<어제 내린 비>)이 “손에 손잡고 지구를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자책”에서 시작해 쓴 이야기는 이렇다. 쭌(서벽준)과 람람(윤가이)은 사귄 지 5년 된 커플이다. 카페를 휘황찬란하게 꾸며놓고 프러포즈하는 쭌. 람람은 시원하게 답을 주지 않는다. 독실한 신자인 쭌과 달리 하나님을 못 믿겠다는 게 이유다. 종교적 문제가 화두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람람의 입장은 행복을 유예하지 말자는 거다. 그런데 그걸 설명하다 보니 사랑이 차오른다. 지금 내 행복은 너야! 엎치락뒤치락 서로에게 사랑을 증명하는 동안 카페는 온통 쓰레기장으로 변해간다. 말은 이토록 번지르르하고도 못났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그 못난 구석을 외면하지 말고 같이 좀 보자고, 그래서 같이 좀 살아보자고 말한다.


리버스 reversemedia.co.kr

손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