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이> 시리즈
당시 최고의 가수이자 배우였던 전영록을 주연으로 한 액션 영화, <돌아이>(감독 이두용)는 1985년에 개봉해서 1988년까지 매년 한 편씩 속편을 배출하며 1980년대 한국 최고의 액션 시리즈로 등극했다. 다만 이두용 감독이 연출했던 앞의 두 편의 영화에 비해 후속작들은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아류로 호평보다는 혹평을 받았고 4편을 마지막으로 시리즈의 막을 내리게 된다.
<돌아이>의 메인 캐릭터는 밤무대를 전전하는 '드릴러'라는 여성 5인조 밴드의 매니저이자 그들의 뒤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석’(전영록)이다. 순진한 전직 경찰관의 아들로 석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나이다. 특유의 착실함과 순수함으로 석은 ‘드릴러’를 잘 보전하고자 하지만 그룹의 멤버들은 늘 사고뭉치에 모험을 즐기는 아가씨들이라 석이 숨 돌릴 틈이 없다. 결국 리더를 포함한 멤버 세 명이 마약을 하는 재벌집 아들과 엮이게 되고 그들에게 성폭행까지 당하게 된다. 석은 일당을 찾아 일망타진하고 필사적인 노력으로 밴드의 위기를 극복한다.
국내 최초의 차량 추적 액션, 오토바이 액션, 전영록이라는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 등 <돌아이>에는 성공을 담보하는 요소가 많았다. 특히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3), <최후의 증인>(1980) 등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걸작을 연출했던 이두용 감독의 뛰어난 액션 연출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혁신적이고 새로운 시도였다. <돌아이> 1편은 서울에서 (명동 중앙극장 개봉) 관객수 9만을 기록하며 전국에서 흥행을 이어 나갔다.
<돌아이> 성공 신화의 주역이었던 전영록은 가수로도 이름을 알렸지만 27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영화배우이기도 하다. 사실상 그는 가수로 데뷔하기 전인 1976년 김수용 감독의 <내 마음은 풍차>를 통해 배우로 먼저 데뷔했다. 첫 영화는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곧이어 출연한 일련의 하이틴 영화들, <너무 너무 좋은거야>(이형표, 1976), <소녀의 기도>(김응천, 1976), <푸른 교실>(김응천, 1976) 등에 힘입어 그는 당대의 하이틴 스타로 부상했다.
초반의 하이틴 영화들이 흥행에 모두 성공하면서 관습에 클리셰를 더한 비슷한 영화들이 우후죽순 제작되고 곧 인기를 잃게 된다. 배우 전영록으로서는 하이틴 영화가 아닌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통한 이미지 변신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이> 시리즈(1~3편은 전영록 주연, 4편은 최재성 주연)는 전영록의 배우 커리어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액션 히어로서의 ‘돌아이’, 즉 전영록의 성공은 당시 대중을 어필했던 남성성의 변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1960년대, 70년대 한국영화의 간판스타였던 김진규, 신성일, 김희라 등의 마초적 남성 배우들과는 달리 전영록은 가냘프고 여린 소년의 이미지를 가졌다. 그럼에도 그는 당시 당랑권 유단자로서의 탄탄한 몸과 무술 실력을 살려 액션 영화 <돌아이> 시리즈에서 사실적인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루어진 최근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는 스턴트 없이 모든 액션 장면을 직접 연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80년대 액션 장르를 장악했던 ‘돌아이 시리즈’의 성공 이후, 한국의 액션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다양한 캐릭터와 배경을 가진 액션 영화들이 시리즈로 대거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심형래가 연출, 주연한 슈퍼 히어로 영화 <우뢰매> 시리즈(1986~1993), 임권택 감독의 사극 액션 <장군의 아들> 시리즈(1990~1992), 박중훈·안성기 배우 콤보의 코믹 액션 <투캅스>(강우석, 김상진, 1993~1998) 등 다양한 하위 액션 장르의 영화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류승완의 등장
그러나 이 시리즈의 감독 중 그 누구도 액션 장르에 특화되어 있거나 액션 장르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 후반, 류승완의 등장은 한국의 액션 영화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곽경택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1998년, 본인이 연출부로 참여했던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의 남은 필름과 380만 원의 예산으로 단편 〈패싸움〉을 제작, 부산 단편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또한 이 영화로 인디포럼에서 실시한 차기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장편 영화로 확장할 기회를 얻었고, 그렇게 해서 만든 단편 〈현대인〉으로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결국 2000년, 류승완은 〈패싸움〉을 1부, 〈현대인〉을 3부로 하고, 〈악몽〉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에피소드를 추가해 장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발표하게 된다. 작품의 총 제작비는 약 6,500만 원에 불과했는데, 전국 관객 8만 명을 기록하며 그는 순식간에 한국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배우이자 감독으로 부상한다. 동생 류승범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으니 감독 류승완은 한국 영화의 걸출한 재목까지도 배출해 낸 셈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공고 졸업생, ‘석환’(류승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공고 졸업생인 석환과 성빈(박성빈)은 당구장에서 예고생들과 시비가 붙는다. 당구장 문이 잠기고 시작된 패싸움에서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던 성빈이 실수로 예고생 현수를 살해한다. 이후 살인죄로 7년간 감옥에 있던 성빈이 출소하지만 사회와 가족, 친구의 냉대 속에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 그는 우연히 폭력조직의 중간보스 태훈(배중식)을 구하게 되면서 조직의 일원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폭력 조직의 중간보스 태훈과 강력계 형사가 된 석환은 지하주차장에서 마주치고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운다. 결국 석환은 태훈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지만 뒤늦게 그의 동생 상환(류승범)이 조폭이 되고자 형 몰래 성빈의 수하가 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석환은 동생을 찾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가고 성빈과 회한에 찬 둘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후기 작품 <짝패>에서도 반복되듯, 류승완의 영화에서 친구와 형제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된다. 주인공에게 이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로 시작하지만 작은 오해와 작은 타이밍과 같은, “가늘고 붉은 선(thin red line)”으로 희대의 원수가 되는, 허망하고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류승완의 액션은 처절하다. 피를 나눴거나 나눈 것과 마찬가지인 벗을 마주하는 액션은 늘, 간절하고 애잔하다. (2부에서 계속)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