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9살 때, 어린이날을 앞두고였다. 바비인형을 사달라고 몇 날 며칠을 시위를 하는데, 도통 통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마침 한국에 잠깐 들어와 있던 일본에 사는 고모는 나의 기구한 사연을 듣고 동네 문방구에 데리고 갔다. 형형색색의 인형 더미 속에서 고모는 ‘미리’라는 마루인형을 하나 집어 선물로 주었다. 미리는 ‘바비’의 12촌쯤 돼 보이는 유사성(금발, 늘씬한 다리 등)을 지녔지만 그녀는 역시 바비가 아니었다. 난 이후로도 늘 미리를 보며 바비를 갈망했다. 나와는 닮은 구석이 1도 없는 바비에게 난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 왜 전 세계의 모든 소녀들이 그랬을까.

바비는 1959년 한 가정주부, 루스 핸들러에 의해 태어난 성인 여자 인형이다. 3등신의 갓난 아기 인형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그리고 여자 어린이들이 이 아기 인형들을 통해서 때이른 엄마 연습을 강요받아야 했던 시절, 눈부신 금발 머리에 비현실적인 비율의 몸을 가진 ‘바비’의 등장은 일대 혁명이자, 반역이었다.

소녀들의 신화가 된 ‘바비’지만 그는 탄생 이래로 줄곧 페미니스트들의 타깃이 되었다. 바비의 가슴과 엉덩이 사이즈를 둘러싼 성 상품화 비판, 바비가 금발과 흰 피부 등 남성 중심의 미적 이상을 강요한다는 고정관념화에 대한 비판 등 바비는 다양한 논쟁거리를 불러왔다. 결국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바비의 가슴과 엉덩이 사이즈는 하향 조정되었고. '바비가 인간이었다면 거식증이 분명하다'라는 한 단체의 연구결과를 수렴해 허리 사이즈도 늘어났다. 그렇기에 이번 그레타 거윅의 <바비>(2023)는 더더욱 의외의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늘 여성 주체성 (<작은 아씨들>(2019), <레이디 버드>(2017))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어온 그가 ‘백치 인형’으로 비판받아왔던 ‘바비’에게 목소리를 준 이유가 무엇일까.


※아래부터는 영화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바비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바비>

일단 영화 <바비>의 주인공은 수 백 명의 '바비' 중에서도 고정관념적(stereotypical) 바비, 즉 금발 머리, 9등신에 가까운 몸을 가진 '완벽한 바비'(마고 로비)다. 바비랜드에 사는 그는 어느 날 '죽음'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이후로 평온했던 일상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완벽했던 바비에게 셀룰라이트가 생기고 점점 못생겨지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현실세계로 넘어가서 바비의 주인을 찾아 그녀의 불행을 해소해 주는 일뿐이다. 바비는 그녀의 사이드킥, '켄'(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현실 세계로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난다.

하이힐에 최적화된 바비의 발이 땅에 닿는 이변이 생긴다.

줄거리로만 보면 바비가 주인을 만나 갈등을 해소하고 일종의 연대를 하는 단순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레타 거윅의 <바비>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지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페미니즘 101'(기초) 수업 같은 영화다. (남성중심적) 미적 이상의 수호자 같았던 바비 인형의 존재를 생각하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윅은 핀업 걸 같은 외모로 소녀들에게 편향된 젠더 관념을 심어주었다는 바비의 반페미니즘적 비판의 이면, 즉, 갓난 아기 인형의 노예로 살았던 소녀들에게 '예쁘고,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라는 새로운 여성 모델을 제시했던 바비의 전복적 역할에 주목한다. 실제로 메텔(바비의 제조사)은 바비 대통령, 바비 소방관, 바비 법관 등 다양한 직업군의 바비를 제작했다. 거윅이 재현한 바비랜드는 이러한 다양한 직업군의 바비들이 포진해 있는 세상으로 이 공간에서는 그 어떤 바비도 직업이나 출신으로 차별을 받지 않는다.

메텔이 제작했던 다양한 인종의 '법관 바비'

늘 그렇지만 역시 문제는 인간 세상이다. 바비와 켄이 바비의 현실세계 주인을 찾으러 당도하게 되는 곳은 미국 LA다. LA의 '켄'(Ken, 즉 모든 남자)들은 예쁘게 차려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바비에게 서슴없이 손을 갖다 대고 성적인 농담을 하는 등, 바비는 켄들의 도발이 당황스럽다. 더 놀라운 것은 어느 회사든 (바비의 제조사인 메텔을 포함하여) 중역과 대표들은 모두 남자라는 사실이다. 바비는 예상치 못했던 차이점에 큰 혼란을 겪지만 이에 감화(?) 되어 감동하는 것은 켄이다. 켄은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가부장제(patriarchy)에 격하게 동화되고, 곧바로 바비랜드로 돌아가 바비들의 세상을 개조하기 시작한다.

LA 거리를 활보하는 바비와 켄

영화 <바비>의 중심부는 켄이 현실세계로부터 들여온 가부장제를 바비들이 힘을 모아 해체하는 과정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비랜드를 탈환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바비들은 완벽한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그들의 '본연'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윅은 투쟁을 위해 바비가 가진 과한 여성성을 덜어내거나 거세하지 않는다. 이들의 여성성은 세상을 (또다시) 바꾸기 위한 무기가 된다.

이쯤 되면 왜 내가 혹은 전 세계의 소녀들이 바비에게 열광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정말 그녀가 나와는 하나도 닮지 않았고, (평론가들이 비판했듯) 그녀의 미모가 나로 하여금 자괴감만을 들게 한다면 애초에 난 바비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풍성한 머리, 짙은 화장에 형형색색의 옷, 하이힐, 서류가방, 액세서리 등 난 바비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 걸치고 있는 (성인 버전의) 나를 갈망했던 것 같다. 그것들이 상징하는 여성의 화려한 삶과 함께 말이다.

영화 <바비>는 20여 년 전 화제가 되었던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저서, 「이갈리아의 딸들」을 연상시킨다. 이갈리아는 '움'(wom; 우먼, 여성) 이 지배하는 세상. 그리고 '맨움'(man-wom; 남성)이 움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갈리아가 현 세상의 모든 시스템을 반대로 뒤바꿔 놓았다면, 바비랜드 역시 현실세계의 반대를 상징하는 공간일 것이다. 다만 거윅의 <바비랜드>는 궁극적으로 '리버스(reverse)'가 아닌 모두의 공존으로 끝을 맺는다. 한바탕의 진통을 겪은 바비랜드는 이제 바비들과 켄들, 그리고 알랜(게이)과 이상한 바비(레즈비언 바비), 인어공주 바비 (트렌스젠더 바비)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이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LGBTQ를 대표하는 배우 케이트 맥키넌의 '이상한 바비'

그레타 거윅은 어쩌면 가장 세속적인 '바비'라는 아이콘을 통해 현시대를 구성하는 가장 첨예한 주제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성과 정체성을 넘어 인권과 공생의 문제이고, 그렇기에 모두의 삶에 직결한 문제다. 바비랜드는 원대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이자 일상이 되어야 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