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위기를 직감한 듯 새들이 프레임 저편으로 푸드덕 날아간다. 검푸른 새벽, 인기척 없는 공터, 바짝 긴장한 카메라가 조심히 주시하는 건 한 동의 비닐하우스. 오래도록 버려진 폐가처럼 음침해 보이는가 하면, 낯선 곳에 불시착한 비행선마냥 위태로운 인상이다. 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비닐하우스 내부로 이동한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건 한 여자의 뒷모습이다. 비쩍 마른 등, 늘어진 어깨, 땅에 처박듯이 아래로 떨군 고개. 카메라는 밖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느리게 다가간다. 일순 여자가 제 뺨을 내리친다. 망설임 없이, 울음도 신음도 내뱉지 않고서. 이유를 파악하기 어려운 행위가 중단되고 나서야 카메라는 문정(김서형)의 얼굴을 비춘다. 뺨은 붉어졌으나 표정은 차분하다.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은 사람처럼 꽉 다문 입가엔 체념이 역력하다. 영화는 그렇게 처음부터 공간과 인물을 하나로 엮어 소개한다. 비닐하우스는 문정의 집이자 동시에 감옥이다. 달리 말하면 문정은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 시달리는 중년 여성이자 죄수처럼 숨죽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물이다.

집을 포함해서 <비닐하우스>에 등장하는 모든 공간은 취약성을 드러낸다. 가로등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위치한 비닐하우스는 특히 안전하지 않다. 누군가를 마주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연인은 문정의 집 앞에 차를 대놓은 채 스릴과 쾌락을 즐기고, 문정을 발견한 다음에는 도리어 화를 낸다. 문정이 간병인으로 일하는 노부부의 집도 불안 요소를 껴안고 있다. 치매에 걸린 화옥(신연숙)은 걸핏하면 문정을 의심하며 이 집에 들어온 꿍꿍이가 뭐냐고 다그친다. 갑작스레 시력을 잃은 태강(양재성)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상황을 숨기는데, 최근 자신마저 치매를 진단 받자 심란함에 빠진다. 문정의 노모 춘화(원미원) 역시 치매 환자다. 춘화는 집이 아닌 병원에서 산다. 문정에겐 어머니를 부양할 능력도, 여력도 없다. 병실을 지키는 여느 보호자처럼 어머니에게 오래 살라고 간청하지 못하는 이유다. 문정의 십 대 아들 정우(김건)는 남의 집을 털다가 소년원에 들어갔다. 면회장에서 문정은 정우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잘못을 저지른 건 아들인데 죄책감은 모조리 문정의 몫으로 돌아온다. 아들은 유일하게 의미 있는, 희망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여서다. 문정은 아들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려고 안간힘 쓴다. 비닐하우스, 노부부의 집, 춘화가 누워 있는 병원과는 아주 다른, 안전하고 견고해서 미래를 꿈꿔볼 수도 있는 공간.

영화는 사회 드라마와 스릴러를 결합한 플롯의 줄기를 능숙한 솜씨로 따라간다. 어느 날 목욕하던 화옥이 난동을 부리고 문정은 이를 저지하다가 욕실에서 사고가 벌어진다. 119에 신고하려는 찰나, 아들의 전화가 걸려 온다. 소년원 퇴소 후 엄마와 살고 싶다고 울먹이는 목소리에 문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욕실을 사고 현장이 아니라 사건 현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와중에 자해 치료 교실에서 우연히 만난 순남(안소요)은 문정의 영역을 멋대로 침범하며 불안을 자극한다. <비닐하우스>는 인물과 공간이 맞물린다는 명확한 콘셉트를 토대로 극을 전개한다. 고립된 인물을 위험에 빠뜨리고 취약한 공간에 비밀을 덧씌우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식이다. 사회적 약자를 중심인물로 데려오지만 침착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미덕이다. 문정의 불행을 전시하며 동정을 요구하거나 교훈을 전달하려는 기색은 전혀 없다. 영화는 파국을 향해 차근히 걸음을 옮기면서 무게감과 서스펜스를 동시에 획득한다. 인물이 속한 공간을 도망칠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는 사각지대로 구현하는 촬영 또한 설득력을 갖춘다.

<비닐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은 선한 의도와 악한 결과가 빚어내는 아이러니다. 영화는 그 인물이 무슨 경로를 거쳐 현재에 도달했는지,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고야 마는지 구구절절 사연을 읊지 않는다. 대신에 인물의 욕망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발현하는지 지켜보는 과정에 집중한다. 짜임새 있는 구성을 바탕으로 사회의 비정한 단면을 들추는 시선이 날카롭지만, 한편으로는 감정을 견인하며 빈틈없이 연속하는 사건이 오히려 감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는 점을 짚어야 할 것 같다. 영화의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정은 코 앞까지 와 있는 비극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양새이고 그 과정에서 모든 일은 ‘때마침’ 일어난다. 엄마를 냉대하던 아들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전화함으로써 문정이 신고할 타이밍을 놓치게 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태강은 이제 정신 상태마저 확신할 수 없고, 문정에게는 시신을 숨겨둘 장소뿐만 아니라 화옥인 척 노부부의 집에 데려다 놓을 춘화도 있다. 하필이면 태강의 제자(남연우)가 순남을 성폭행하는데, 그는 오래전부터 문정의 주변을 맴돌며 잠자리와 동거를 요구해 왔다. 영화는 위기와 비극을 예고하며 기승전결에 필요한 논리를 만들어 나간다.

<비닐하우스>는 감독 이솔희의 데뷔작으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한 바 있다. 짜맞춘 것처럼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사이, 자칫 지루할 뻔한 틈을 메우는 건 문정의 얼굴이다. 카메라는 얼마간 배우 김서형에게 매혹된 듯 보인다. 널찍한 화면비를 사용하면서도 클로즈업을 반복하는데, 이는 프레임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도록 부추기기보단 인물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제스처로 작동한다. 그 속에서 배우는 제 역할을 정확히 파악한다. 김서형은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에 오물을 뒤집어쓰며 모욕의 순간을 담고, 웃음과 눈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면서 시선을 붙든다. 그간 대중에게 보여준 단호하고 또렷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문정은 시종일관 기어드는 목소리로 눈치를 살피며, 부끄럽다는 듯 실실 웃음을 흘리다가도 금세 눈을 내리깔고 숨어버린다. 신경 쇠약을 짐작할 수밖에 없는 여러 증상을 그려 내면서 “멍청하고 가엾은 여자”가 얼마나 대담해질 수 있는지 표현하는 능력은 결정적 순간마다 화면을 압도한다. 배우 안소요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이한 에너지를 부여하며 주목할 만한 연기를 선보인다. 아이처럼 조르고 소리 지르는 순남은 언뜻 문정과 대조적으로 보이지만, 그의 연민과 공포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문정을 뒷받침하는 주요 인물이다. 영화는 배우들의 생생한 힘을 원동력 삼아 방향을 잃지 않고 끝까지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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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비